지금 한국에는 에겐 테토 붐이 왔다. 이제 MBTI보다도 에겐녀, 테토녀, 에겐남, 테토남으로 본인을 설명하는 게 트렌드다. 나 또한 스스로가 에겐녀 혹은 테토녀인지 고민하고, 각종 릴스에서 다양한 밈으로 변형되는 모습을 보며 이 모든 게 재미있기도 했다. 그런데 마음 한켠에서는 이 '에겐과 테토가 결국 우리의 스테레오타입을 고착화하고 있지는 않은가'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고 있는 트렌드인 만큼, 그 파급력과 영향에 대해 고민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트렌드를 즐겁게 소비하기 전에,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콘텐츠가 어떤 건지 생각해 볼 필요성을 보다 많은 이들이 느꼈으면 한다.
여성스러운 여자(에겐녀), 남성스러운 여자(테토녀), 여성스러운 남자(에겐남), 남성스러운 남자(테토남). 이제 우리에게는 이 네 가지에 서로를 범주화하는 게 당연해졌다. 그런데 우리는 늘 ‘에겐’스럽거나, ‘테토’스럽지 않을 수 있다. 나의 성향을 쉽게 규정해버리는 행위는 너무나도 안일하다. 유쾌하게 소비되는 밈과 트렌드는 단면적이지만, 그 속의 오히려 기존의 젠더 고정관념을 되풀이하는 잠재력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이 에겐 VS 테토는 결국 우리가 정의하고 있는 보편적인 '여성성'과 '남성성'을 강화하고 있으며,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채 결국은 성 역할 스테레오타입을 고착화할 수 있다는 게 우려된다. 우리는 그럴 듯한 언어의 옷을 입혀 새롭게 '이래야 한다'는 또 다른 무언의 기준을 만들어내고 있지는 않은가.
누군가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이라는 호르몬에서 파생됐고, 재미있자고 하는 건데 뭘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라고 한다면 핀트를 잘못 잡았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내가 짚고 넘어가려는 것은 '스테레오타입'이지, '호르몬'이 아니다. 에겐+녀(女) 또는 테토+남(男)과 같이 어떠한 성별과 함께 묶이게 되면 결국 또 프레임을 씌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한편으로는 이 현상의 순기능도 분명 있다고 믿는다. 이전에는 '여성스러운' 여자 또는 '남자다운' 남자 이 둘만이 이상적인 여성상 그리고 남성상으로 그려지던 때가 있었지 않나. 사회가 만들어낸 이분법적인 프레임에 여성과 남성을 억지로 끼워 맞추기만 하던 때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여전하다) 그런데, 이제는 그 범주가 조금은 확장되었다. 다시 말해, '남자다운' 여자 그리고 '여성스러운' 남자도 존재하며 그들의 고유성을 인정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여성스럽거나 남자다움이 특정 성별의 디폴트값으로 여겨지던 시대에서 미미한 발전을 이루지 않았는가. 이 트렌드는 결국 '무결한 척하지만 편견이 내재되어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거울처럼 여실히 비추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이 최선이라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분명 이 트렌드는 조금은 달라진 우리 사회의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먼 훗날 이 에겐 테토 논쟁이 '그땐 그랬지' 하며 역사의 일부로 기억될 날을 기다린다. 내 말은, 언젠가는 이러한 논쟁도 다 우스워질 정도로 놀랍도록 젠더 스테레오타입이 소멸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