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카니발리제이션과 양자역학
인공지능 시대는 속도와 압축의 시대이다.
과거라면 다섯 해 걸릴 학습이 이제는 한 달이면 가능해졌다.
양자역학에서 입자(Particle)는 관측되기 전에는
무한한 가능성의 파동(Wave) 상태라고 한다.
즉, 우리는 스스로를 어떻게 관측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는 말이다.
이는 “내가 35살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선언하는 순간,
인생의 파동 함수는 새로운 형태로 정립되는 것이다.
물리학에서는 “측정이 실체를 만든다.”고 한다.
이를 우리의 삶에 대립해 보면,
“내가 내린 결정이 내 인생을 만든다.”는 의미이다.
우리 모두는 이전 세대의 마지막 세대이다.
성장이 교과서적 축적이 아니라, 어제의 나를 먹어치우며
나아가는 방식, 예컨대 ‘카니발리제이션 ( Cannibalization:경제학에서 말하는 ‘자기 잠식’)학습’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어제를 폐기하고 오늘로 덮어쓰는 잔혹하면서도 기묘하게 아름다운 자기 진화의 과정이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요즘 인류는 ‘수명 혁명(Longevity Revolution)’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있다.
인간의 평균 수명이 100세, 110세에 이른다는 말이 더 이상 과장이 아니다.
그렇다면 나이의 정의도 다시 정립해야 하지 않을까.
모든 시대에도 나이는 문화적 합의에 의해 매번 다시
규정되어 왔다.
올해 발표된 한국의 중위 나이 46.7세라는 숫자가 증거이다. 인구를 정확히 반으로 나누는 지점,
즉 ‘나이의 중심’이라는 개념이다.
80년대 후반에 대학생이었던 나는
어느덧 50대 중반을 넘겼다.
돌이켜보니 내가 결혼을 하던 무렵,
나의 어머니가 지금의 내 나이쯤이셨다.
당시 나는 어머니를 진정한 ‘시니어’라고 생각했다.
이미 인생의 속도에서 한 발 비켜섰고,
천천히 주변을 관조하는 연배라 여겼다. 그런데 이상하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떡볶이를 즐겨 먹으며,
힙합 비트에 어깨를 들썩이고,
새로 나온 계절 한정 음료에 진심 호기심을 느끼고,
새로운 트렌드의 옷을 고르면 ‘오늘 스타일 괜찮다’라는
자신감을 은근히 즐기며 살아간다.
놀라운 일은, 내 주변의 친구들 역시 그렇다는 사실이다.
그 누구도 과거의 우리 어머니처럼 보이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평균적으로 족히, 열 살은 어려 보이고,
조금 촘촘하게 계산해도 스무 살은 젊어 보이는 시대에
살고 있다.
결국 나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문화·기술·세대감각이
합쳐져 만든 집단적 환상에 가깝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 내 일기장 첫 페이지에 이렇게 적었다.
“오늘부로 나의 공식 나이는 35살이다.”
그리고 그에 맞는 인생 설계를 다시 쓰기로 했다.
이 한 줄을 쓰고 나니 마음이 이상하게 분주해졌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고, 하고 싶은 일은 더욱 많다.
“What a wonderful life, ind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