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75세, 한자자격증 8급에 도전하다

뭐가 이렇게 어려워

by 이춘식

75세, 나는 처음으로 한자 자격증 8급 시험에 도전했다. 사실 처음에는 나 자신도 믿지 못했다. 평생 한자와는 큰 연관이 없었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한 번도 제대로 공부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저 언제나 ‘아, 한자란 것도 있구나’ 정도로 넘겨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퇴직 이후의 무료하고 답답한 일상이 나를 변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매일 시간을 흘려보내기만 할 순 없잖아?'라는 생각이 들면서 뭔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여러 가지가 떠올랐지만, 그중에서 한자 자격증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나이가 많다고 못할 게 뭐가 있어?”라는 긍정적인 마음을 품고, 나는 공부를 시작했다. 막상 시작하자니 여러 가지 어려운 점들이 있었다. 한자라는 분야는 생각보다 훨씬 깊고 방대한 세계였고, 매일 공부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몇 년을 해온 일이 아니니, 책을 펼쳐도 머릿속에 들어오는 게 없었다. 그래도 한 자 한 자씩, 조금씩,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해보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시험을 준비하면서 가장 큰 난관은 바로 '혼자 공부하는 외로움'이었다. 예전에는 회사에서 사람들이랑 함께 일하며 활기차게 시간을 보냈지만, 퇴직 후에는 그런 소통이 사라지고 내 삶은 한층 조용해졌다. 처음에는 그 조용함이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그 고요함이 부담스러워졌다. 주위에 같이 공부할 사람도 없고, 공부하는 데서 느껴지는 고독은 때때로 너무 컸다. ‘이걸 내가 정말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하루하루 조금씩 조금씩 쌓아가는 게 내 힘이었고, 한 글자씩 공부하면서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고받았다.

그러던 중, 시험 날이 다가왔다. 아침부터 긴장이 돼서 손에 땀이 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시험장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건 다름 아닌 시험을 보는 사람들의 나이였다. 내가 서른 살, 마흔 살이었다면 모르겠지만, 그날 시험을 보러 간 교실에는 온통 유치원생들뿐이었다. 그 모습에 순간 당혹감이 밀려왔다. '이 아이들이 내 자식뻘인데...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이 너무 낯설고, 어쩌면 부끄러워서 약간의 자책감도 들었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어차피 나는 내가 도전하는 거니까.' 그 생각에 조금은 위로가 됐다.




그날 아침, 딸은 내가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함께 공부할 수 있도록 문제집을 사다 주었다. 딸의 정성 어린 배려가 고마웠다. 아들은 시험에 필요한 수험표를 직접 신청해 줘서 편하게 준비할 수 있었고, 아내는 내가 긴장할까 봐 차로 운전해 주며 시험장까지 함께 갔다. 아내의 마음 씀씀이도 큰 힘이 되었다. 그 작은 배려들이 나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나이가 들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더욱 느낀다. 그들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시작조차 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침내, 시험 결과가 나왔다. 합격! 75세의 나이에, 한자 자격증 8급을 합격한 내가 믿기지 않았다.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그렇게 힘들게 보낸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나보다 더 기뻐한 건 자식들이었다. “아빠, 정말 대단해요!”라며 기뻐하는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다시 한번 가슴이 따뜻해졌다. 내가 이 나이에 이런 도전을 할 수 있었던 건, 그들의 응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KakaoTalk_20250329_175739772.jpg

합격 소식이 전해진 후, 나는 다시 한번 각오를 다졌다.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8급을 합격했다고 끝이 아니다. 지금의 나는 더 나아가 6급과 7급에도 도전할 생각이다. 그저 한 번에 끝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도전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새로운 시도나 도전이 멈춰야 한다는 법은 없다. 오히려 나이가 많을수록 새로운 경험을 쌓고, 배우는 것의 즐거움이 더 커진다고 믿는다.



이제 나는 75세라는 나이를, 새로운 도전의 시작으로 삼았다. 물론 나이가 많다고 해서 모든 게 쉬운 것은 아니다. 나도 가끔은 ‘정말 내가 해낼 수 있을까?’라는 의심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생각한다. ‘왜 안 될까?’ 도전은 나이를 따지지 않는다. 내가 그 길을 걷고 싶다면,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하면 된다.

앞으로의 삶에서 나는 계속해서 한 걸음씩 나아갈 것이다. 이제 나에게 늦었다는 말은 없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한자 공부를 하며, 6급, 7급 자격증을 목표로 더 큰 도전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자식들 앞에서, 나 자신에게도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내일도, 나는 계속해서 나아갈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또 한 번의 새로운 도전을 향해 가고 있다. 나이가 많다고 도전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도전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언제든지 시작하면 된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그 길을 걸어가고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