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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트라우마를 심어주는 방법

대파싫어인간

by 라파

내가 세상에 태어난 후, 이 세상은 한번도 나에게 쉽게 굴러간 적이 없었다. 유치원부터 초중고대학교 그 이후까지. 집밖으로 나가면 멀쩡한 내 코를 베어가고 싶어 환장하고 있는 도둑놈들이 가득했다. 난 그 사실을 고등학교 때 이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구나. 절대 안 나가야지.


하지만 언제까지고 부모님의 그늘 아래에 기대어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난 생각했다. 여기 빌붙어있을 수 있을 때까지, 엄마가 나가라고 등 떠밀때까지는 최대한, 길게, 끝까지 계속 부비고 있어야겠다.


다행인 점은 나외에도 내 또래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20대의 80퍼센트 이상이 부모랑 같이 살고, 30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부모님한테 얹혀산다. 이 동지들 덕분에 내가 힘을 얻는다. 다들 일찍 일찍 독립하는 분위기였으면 나도 집에서 눈치를 많이 봤을것이다. 그런데 다들 집에 붙어있는 바람에 나도 눈치가 덜 보인다.


사회적인 분위기는 그렇지만, 집마다 분위기는 또 다를 것이다. 다행히 우리 집은 부모님이 적극적으로 쫓아내는 집은 아니었다. 그래도 눈치가 아예 안 보이는것은 아니다. 어쩔 수 없다. 부모님한테 얹혀사는 아기 캥거루는 눈치를 보면서 살 수 밖에 없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부모님한테 받는 공짜점심도 기한이 있다. 일반적으로 성인 전까지는 부모님이 재정적으로 지원해주는 것이 부모의 의무이고, 성인이 된 후부터 받는 돈은 전적으로 부모님의 선의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눈치가 보이면서도 그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무조건 받는 게 좋다. 부모님한테 받는 것은 어쨌거나 안 갚아도 되고, 덜 갚아도 되고, 제값으로 갚더라도 이자가 안 붙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인 전까지는 집 안을 활개치고 다니며 온갖 깽판을 치고 독재자처럼 살아도 되지만, 성인이 되면 그렇게 살면 안된다. 부모님이 내가 나간 사이에 내 짐을 다 내놓고 현관문 비밀번호를 바꿔버려도 합법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내가 며칠 여행 간 사이에 이사를 가고 이사 간 집 주소를 안 알려줘도 난 신고조차 할 수 없다. 뭐라고 신고할건데?


“제가 여행 간 사이에 저희 집이 없어졌어요…”


20살이 되는 새해 1월 1일이 되면 달라지는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제부터는 술담배도 당당하게 살 수 있고, 19금 영화도 신분증 내고 들어가서 극장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집에서 나의 신분도 달라진다.

부모님이 나에게 맞춰주던 시절은 끝나고, 이제는 내가 부모님의 비위를 맞춰야하는 시간이 시작되는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내가 부모님과 살기에 나쁘지 않은 룸메이트, 아니 하우스메이트라는 것을 끊임없이 알려주는 것이다.


친구와 함께 사는 것은 월세라도 반반이지, 부모님과 사는 것은 온전히 부모님의 선의에 기대어 사는 것이다. 물론 부모님은 친구와 달리 어지간하면 나를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특정 기간 동안은.


부모님의 눈치를 보는 것은 사회생활에서 눈치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쉽다. 최소한의 예의만 차리고 살면 된다. 쌍욕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끔씩은 그게 참기 힘들 때도 있다.


초등학교 때 일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대충대충 자라던 그 시절 나는 심한 코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난 어릴 때부터 코감기에 잘 안 걸렸다. 코감기에 걸려도 콧물은 그렇게 심하게 나지 않았고 좀 훌쩍거리다가 콧물약 먹으면 싹 마르곤 했다. 대신 다른 종류의 감기(몸살감기, 목감기 등등)에 자주 걸리는 편이긴 했다.


그런데도 그때는 흔치 않게 내가 코가 꽉 막히는 코감기에 걸리고 만 것이었다.


그냥 코감기약 먹거나 병원 가서 약 받아오면 되었던 것을... 그날은 주말이었나 공휴일이었기 때문에 따로 약을 먹지 못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코 막힌 상태로 집에 있는데 아빠가 갑자기 기가 막힌 생각이 떠올랐다고 했다


옛날부터 코에 대파를 꽂아놓으면 코 막힌 게 뚫린다는 민간요법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 그걸 실험해보자고 하는 것이다. 지금 같았으면 하하 뭔 헛소리야 하고 무시했을텐데.


그래서 아빠가 신이 나서 부엌에서 대파를 썰어왔다.


그리고 내 양쪽 콧구멍에 그걸 꽂아놨다. 그상태로 오전 시간을 보내는데.. 어떻게 나는 초등학교 때 단 한 번 있었던 일을 그렇게까지 또렷하게 기억할 수 있을까. 정말 옛날일인데도 그때 당시에 대파가 코에 꽂혀있던 느낌과 그 대파 냄새가 생생하다. 차라리 잊어버렸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대파가 코 안의 액체들과 같이 살짝 겉이 녹으면서 코를 살짝만 움찔거려도 대파가 같이 움직이면서 빠질라고 하는데 그걸 빠질라고 할때마다 내손으로 그걸 다시 꽂아놓고. 무의식적으로 또 코 움찔거리면 또 그 안에서 물컹한 대파토막이 빙글빙글 움직이고 다시 내 손으로 대파 고정하고.


그리고 점심 때가 되었는데 코에 대파를 꽂아놓고 밥을 먹을 수 없으니까 아빠가 손끝으로 살살 대파를 빼서 텔레비전 위에 올려두었다. (그때 당시 텔레비전은 뒤에가 뚱뚱하고 위에 무언가를 올려둘수있는 그런 디자인이었다)


점심을 다 먹고나니 아빠가 나를 불렀다. 그리고 그 물컹한 대파토막을 손끝으로 집어서 다시 내 코에 꽂았다. 그때 그 끔찍한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원래는 내 체온에 따뜻했던 대파가 밖에 있는 동안 식어서 차갑게 변해있었다. 축축하고 차가운 대파조각이 다시 코에 들어오는데 겉이 콧물에 녹아서 질척하고 미끌거리고.


..... 그렇게 오후시간을 보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되고 대학생이 되었다. 어느 날 내가 코가 심하게 막히는 코감기에 걸렸다. 이날도 우연스럽게 휴일이라 병원도 못가고 집에 코감기약도 없었다. 그리고 코가 꽉 막힌 나를 보고 아빠가 생전 처음 말하는 것처럼 입을 열었다.


“야, 옛날에 민간요법 중에 코에 대파 꽂아놓으면 코가 뚫린다는데 한번 해볼래?”


아빠는 초딩때 내 코에 하루종일 대파조각을 꽂아놓았던 걸 기억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 그날 이후로 난 파냄새를 극심하게 혐오하게 되었는데. 나에게 평생가는 파 혐오증을 심어놓고 지금 뭐라고 하신 거예요?


목구멍까지 올라온 욕설을

삼켰다.


난 몇 초 뒤에야 늦게 반응했다.


“하하하하하하하, 장난해?”


나는 아기 캥거루다. 참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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