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대부분을 혼자서 보내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늘 사람들과 부딪쳐가며 일을 했고, 여가 시간에는 늘 연인 혹은 친구들과 함께 보냈던 탓에 오롯이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경우는 잠을 잘 때뿐이었다. 대학 시절만 보더라도 바로 옆집에 사는 친한 친구와 밤이 새도록 떠들다 잠이 쏟아질 무렵에서야 헤어졌으니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 시간은 정말이지 없었던 것이다. 특히 일행 없이 식당에 들어가 홀로 밥을 먹는다는 것은 이십 대 초반의 나에겐 죽기보다 더 싫은 일이었다. 남들 눈에 외톨이처럼 비칠까 두려웠고 나의 선택이 아닌 타인의 배척으로 인해 이루어진 일이라고 보일 것이 무서웠던 탓이다.
그런 나에게도 혼자서 놀아야만 하는 순간이 왔으니, 때는 이십 대 중반 무렵 무작정 옷을 하나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든 날이었다. 스케줄 근무를 했던 지라 그날은 평일이었고,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는 일을 하러 가고 없었다. 그렇다고 친구들을 불러내서 쇼핑을 함께 하자니 그 맘 때쯤 내게 가장 친한 친구는 연인 뿐이라 연락도 없다가 뜬금없이 같이 옷 한 벌 사러 가자고 누군가를 불러낼 용기가 차마 나지 않았다. 결국 혼자서 옷가지 하나 사지 못하는 바보로 남기보단 용기 있게 나가는 쪽을 택하자 싶어 옷을 꿰어 입고 동네 근처 번화가로 향했다.
줄곧 떠들어대는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초라함을 느끼기 싫어 이어폰을 야무지게 꼈다. 혹시나 혼자 있느라 기분이 저조되지는 않을까 싶어 신나는 노래를 들으며 소극적으로 구경을 했다. 처음에는 둘셋씩 모여 돌아다니는 사람들 사이에서 주눅이 들어 괜히 빠르게 휘 둘러보고 나가버리거나, 조금만 마음에 든다 싶으면 입어보지도 않고 신용 카드를 턱턱 내밀어버렸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누군가와 함께 있지 않으니 그들의 등쌀에 밀려 마음에 들지 않는 옷을 입어볼 필요도, 옷을 잠깐 입어보고 올 테니 기다려달라는 부탁도 할 필요도 없었고 내가 너무 오랜 시간을 머무르느라 친구를 기다리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도 전혀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이내 혼자 있는 내 모습에 적응해 신나게 거리를 쏘다니기 시작했다. 이 가게 저 가게를 돌아다니며 다리가 아픈 줄도 모르고 신나서 구경을 했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실컷 입어보며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많은 시간을 쇼핑에 할애해 마음에 꼭 드는 옷을 몇 벌 샀다. 집에 돌아와 산 옷을 입어보는데 기분이 정말 좋았다. 혼자서 잘 돌아다녔다는 생각에, 그리고 그 덕분에 굉장히 만족스러운 쇼핑을 즐겼다는 생각에 나 자신이 기특하고 또 뿌듯했다.
영화 <사도>가 개봉한 때였다. 정말 궁금했던 영화인 데다 출연진에 대한 기대도 엄청나서 꼭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선지 남자친구는 그 영화를 보려 들지 않아 차일피일 관람을 미루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난 얘가 없으면 영화도 못 보나?' 하는 생각에 부아가 치밀어올라 용기를 내 냅다 오전 시간대로 예매를 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같이 보러 가겠냐고 상대를 떠봤지만 그는 단호했다. 그것 하나 같이 봐주는 게 그리 어렵나 싶어 굉장히 얄미웠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혼자서 영화 한 편 보는 것도 큰 도전일 수 있다는 생각에 더는 보채지 않았다. 당시의 나에게 영화 관람은 데이트 코스나 마찬가지였고 남자친구나 친구들 없이는 영화관에 가 본 역사가 없었다. 혼자 영화를 보러 온 사람을 본 적이 있나 기억을 돌이켜봐도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내가 주변에 관심이 없었던 것 같지만.
여전히 어렸던 나는 혼자서 팝콘을 사기가 괜히 민망해 빈 손으로 자리에 앉았다. 주변을 휘 둘러보니 오전 시간대라 그런지 생각보다 혼자 온 사람들이 많았다. 군것질거리도 하나씩 들고 있었다. 나에겐 이렇게 어려운 일이 누군가에게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바보같이 팝콘 하나 사들고 들어오지 못한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이왕 빈 손으로 들어온 거 오롯이 영화에만 집중하자 하며 스스로를 달랬다. 혼자서 보는 영화는 그 매력이 엄청났다. 옆 사람이 잘 보고 있나 신경을 쓸 필요도, 이해를 하지 못해 해오는 질문에 답을 해주느라 집중력이 흐트러질 일도 없었던 것이다. 영화 자체의 완성도도 뛰어나니 만족감이 두 배였다. 혼자서 영화관을 찾는 사람들은 일행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오늘 느낀 이 커다란 만족감을 위해 일부러 '혼자'를 택한 것이었다. 늘 주변을 신경 쓰고 내 감상 한 줄을 당장 그 자리에서 옆 사람에게 표현해야만 했던 나에게 그날의 경험은 꽤나 큰 충격이었다.
그때를 기점으로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식당에서 밥을 먹는 행위도 꽤나 겁을 내는 것들 중 하나였지만 막상 해보니 정말 별 것 아니었고 오히려 다른 사람과 함께 먹는 것보다 더 즐거움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혼자 외식을 한다는 사람들을 보면 질색을 하며 대단하다고 박수까지 쳤던 나 자신이 우스웠다. 사람들이 둘셋씩 짝을 지어 테이블에 둘러앉아있건 말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를 보고 들으며 식사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지. 내 것 좀 먹어보라고 권할 일도, 괜스레 침묵이 불편해 어거지로 대화 주제를 생각해 낼 일도 없이 그저 내 눈과 내 입이 필요로 하는 것만 즐기면 되었다.
서른이 넘었을 무렵 친한 언니와 함께 여행을 하게 되었다. 다만 일정이 서로 온전하게 맞지는 않아 함께 할 수 있는 날이 단 하루뿐이라, 이틀을 통으로 비워둔 나는 왠지 아쉬운 마음이 들어 고민을 했다. 하루를 집에서 날리자니 뭔가 아쉬웠고 그렇다고 하루 동안 혼자 여행을 하자니 타지에서 혼자 돌아다녀본 적도, 밤을 보내본 적도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러다 언니가 그냥 이 참에 여행지에서 하루를 혼자 지내보는 게 어떠냐고 슬쩍 물어 왔다. 이러나저러나 혼자인데 내가 밟고 있는 땅이 달라진다고 해서 뭐가 그렇게 의미가 있나 싶었다. 집에 있는 것과 뭐가 다른가 하는 생각에 한참을 고민하다 나름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 것에도 제법 익숙해졌으니 여행도 한 번 해보자는 생각에 그러마고 했다.
평소보다 느지막이 일어나 밍기적거리며 준비한 탓에 출발 시간이 한참 늦어져 여행지인 고성에 도착하니 이미 땅거미가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막상 도착 시간이 늦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별 수 있나. 숙소로 바로 들어가는 것이 안전할 듯싶어 터미널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음식을 포장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술 마시는 것을 꽤 즐기던 때라 소주도 두어 병 샀다. 일행 없이 숙소에 가서 체크인을 하려니 썩 민망했지만 혼자 오는 투숙객이 익숙했던 모양인지 사장님은 별다른 말 없이 방을 안내해 주셨다. 침대 곁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 음식과 술을 먹고 있자니 취기와 함께 황홀함이 올라왔다. 집에서도 가끔 혼자 술을 마셨던 지라 달라진 것은 공간뿐이었다. 그런데도 이 멀리까지 혼자 왔다는 것, 이렇게 낯선 곳에서 술에 그리고 저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에 취해있다는 것이 나를 그다지도 황홀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여행이라고 칭하기에는 민망하기 짝이 없는 일정이었지만 나는 그날 밤 그곳에서, 사람들이 왜 멀리까지 가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지 아주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서른한 번째 생일은 거의 처음으로 홀로 맞이하는 그것이었다. 10년이 남짓한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연인이 없는 상태로 생일을 보내본 적이 없는 나는 덜컥 겁이 났다. SNS에는 온통 연인, 친구, 혹은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즐거운 생일을 자랑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데 나는 정말로 혼자서 생일을 보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한 것이다. 근 10년간 생일날 데이트를 즐기느라 친구들을 불러내 파티고 뭐고 해 본 적이 없어 더더욱 그랬다. 그렇다고 생일을 시끌벅적하게 보내겠답시고 지금껏 모여서 축하해 달라고 말을 꺼내본 적도 없었던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자니 너무 민망하고 면목이 서질 않았다. 생일 까짓것 그게 뭐라고 나에게는 일생일대의 고민이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다 문득 혼자서 해보는 호캉스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이제 홀로 시간을 보내는 행위에 어느 정도 매력을 느끼고 있던 찰나였기에, 그 생각이 들자마자 바로 호텔을 찾아봤다. 제법 값이 나가는 한 비즈니스호텔을 곧장 예약하고 몇 날 며칠을 걱정 반 설렘 반으로 기다렸다. 천성이 천성인지라 체크인을 할 때는 꽤나 민망했다. 연인이 가득한 그 넓디넓은 호텔 로비에 홀로 우뚝 서서 내 이름을 말하려니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러나 방에 들어서는 순간 모든 시름과 민망함을 은 온데간데없고 묘하게 설레기 시작했다. 이 예쁘고 넓은 방을 나 혼자 맘껏 쓸 수 있는 것이다.
생일을 혼자 보내는 것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멋지고 낭만적인 일이었다.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틀어놓고 치즈에 와인잔을 기울이며 별 것도 아닌 야경을 내려다보는 게 왜 그렇게 좋던지. 까맣게 칠해진 사이사이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들을 보고 있는 게 뭐가 그리 좋았는지 말동무가 없어도, 내 손을 잡고 눈을 마주하며 생일을 축하한다고 말해주는 친구들이 없어도 그저 행복했다. 그 누구의 시선도 기분도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내가 있는 공간, 내가 있는 시간, 그리고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진짜 나만을 위한 날이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마음껏 즐기고 폭신한 이불에 몸을 파묻으며 나는 행복감에 사로잡혀 기쁘게 잠을 청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나 지금, 엄청 행복하구나.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끔찍하게도 싫어했던 이유는 나 자신에게 있다. 외로워서가 아니라, 남들 눈에 내가 외로운 사람처럼 비치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삼십 대의 중간 지점에 와 있는 지금, 혼자만의 시간을 꽤나 많이 보내며 그동안의 내가 얼마나 쓸모없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는지 느낀다. 물론 아직도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기대고 혼자 있는 시간이 지루해 사람들을 만나러 곧잘 달려 나가기도 하지만, 그 뒤엔 꼭 혼자만의 시간을 선물한다. 때로는 혼자 하루를 보내는 것이 더 좋아 미리 잡아둔 약속이 취소되기를 바라기도 한다. 뒤늦게 '홀로'의 맛을 느낀 후 스스로를 사유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나는 진짜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꿈꾸며 살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여행을 하며 알아가고 있다. 여전히 도전해야 할 것 투성이지만, 이제는 더 이상 어린 날의 나처럼 주변의 시선이 무서워 머뭇거리거나 외로울까 봐 걱정하지 않는다. 내일은 혼자서 무얼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