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구한 함안댁의 생
산골에서 애 아빠 찾기 / 정건우
조카는 어떻게 생각하냐는 고모부의 돌연한 물음에 나는 적잖이 당황하였다. 고모도 덩달아 맞장구를 쳤다. 머리 좋은 네가 답해보라는 것이다. 고 3 여름방학 때, 원두막이나 지켜주려고 들른 고모댁은 때아닌 마을 근심거리로 내외가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도랑 건너 아랫집 함안댁이 임신을 한 일이었다. 혈혈단신으로 이 외딴 산골에 흘러든 지 삼 년쯤 됐다는 함안댁은 언어 장애인이었다. 사십 초반이나 되었을까?. 작고 귀여운 얼굴에 탄력 있는 몸매의 그녀는 붙임성도 좋아 마을의 허드렛일을 도우며 깜냥 것 홀로 사는 중이었다. 내가 고모의 조카란 것을 눈치껏 알아 어쩌다 들르면 요란한 소리와 손짓으로 반겨주곤 했다. 마을 이장인 고모부가 아래 빈집을 대충 수리해서 그녀를 살게 해 준 터라 아주 싹싹하게 잘한다며 고모부 내외가 좋아하였다.
아닌 게 아니라 오면서 만난 함안댁의 배가 이상하게 불룩하다는 느낌은 있었으나, 예의 그 요란한 환영 제스처에 혼을 뺏긴 나는 그녀의 복부에 태무심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저간의 사정을 의도치 않게 듣고 참으로 기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독 같은 아랫배를 열며 천연덕스럽게 나를 맞아주는 그 광경이라니. 얼마 전 반상회에서 고모부는 설왕설래하던 함안댁 문제를 정식 의제로 토론했다고 하셨다. 정황으로 보아 함안댁을 그리 만든 게 마을 남자 소행임이 분명하니, 자수하여 책임지라고 권유했다는 것이다. 열흘의 말미를 정해 임신 유발자의 자진 신고를 기대했지만 털끝 같은 기별도 없음에 고모부는 상당히 실망하셨단다. 얼마나 낙담하셨으면 그 남세스러운 일의 해결 방안을 느닷없이 나어린 조카에게 물으신다는 말인가?. 고모가 자리를 비운 사이 나는 어렵게 고모부의 결백 여부를 여쭈었고, 고모부는 숨을 죽이면서 펄펄 뛰셨다.
수박과 참외가 무르익어 보기만 해도 향기로 어질어질한 원두막에서 나는 고모부와 마을 남자들 신상을 기록하며 분석에 들어갔다. 고모부가 파악한 남자는 총 열네 명이었다. 사십 대에서 칠십 대에 이르는 보행 가능한 남자들 전체였다. 내가 남자 중학생 둘을 추가하자 고모부는 어렵사리 동의하였다. 그리고 함안댁의 동선에 대해 알아본 결과 그녀가 가임 기간 내내 마을을 떠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결론이었다. 한 달에 두 번 꼴로 오는 트럭 생선 장수도 용의 선상에 올렸다. 인근 군부대 군인들의 마을 잠입 가능성에 대해서도 논의하였다. 나는 중학생과 함안댁을 심층 면담하기로 하였고, 나머지는 고모부가 탐문하는 것으로 하였다. 그러면서 모모한 전문가와 범인 색출 중이라는 구라성 정보를 마을에 흘리도록 고모에게 권유하였다. 추후 기관 수사의뢰까지로 사건이 확대될 것 같다는 실감 나는 연기도 당부하였다.
나를 익히 알고 있는 3학년 중학생 둘은 나의 빙빙 돌리는 말에 전혀 감을 잡지도 못하고 어벙벙한 반응이었다. 결국 찐 옥수수를 먹으며 그들의 진학 고민을 들어주는 것으로 용의 선상에서 배제하였다. 어느 정도 말길을 알아듣는 함안댁은 갈수록 근심이 깊은 눈빛이었지만, 상대가 누군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겠다는 눈치였다. 동원 수단을 총집결시켜 알아본 내 결론은 잠자다가 함안댁은 기습을 당하였고, 상대가 그리 젊은 사람은 아닌 것 같고 또한 몸집이 크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얼마 있으면 춘천에 있는 딸이 올 텐데 정말 큰일이라며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내 어깨를 두드리는 것이 참으로 난감하였다. 마흔 나이에 스무 살이 넘는 딸이 있다는 그녀의 얘기에 요동치는 질곡의 사연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들쑤시며 지나가는 것이었다. 참으로 기구한 생이 아닌가?.
함안댁 면담 결과를 들으신 고모부는 그녀에게 과년한 딸이 있다는 사실에 무척 놀라시는 것이었다. 살붙이가 전혀 없는 것으로 알고 계셨던 터라 그 놀라움이 더 크셨던 모양이었다. 얼마 있으면 그 딸이 올 것이라는 말은 딸도 이곳을 알고 있다는 것이며 어떤 방법이든 서로 소통하고 있었다는 방증일 거라는 추측에 고모부는 다소 고무된 표정이었다. 또한 고모는 고모대로 기관 수사를 운운하며 실감 나는 연기를 수시로 한 결과 마을이 술렁댄다며 조만간 뭔 일이 터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고 하였다. 함안댁이 말한 남자의 신상을 찬찬히 짚어 보시던 고모부는 세 남자를 특정하고는 고개를 갸웃하시는 것이었다. 셋 다 그런 일을 저지를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격증이 있어야 그런 일을 저지르냐는 고모의 핀잔 섞인 촉 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일이 터졌다.
비위 문제로 잘렸다는 소문을 달고 살던 오십 대 공무원 출신이 자수를 했다는 것이다. 타 군에서 살다가 이곳으로 이주한 지 6년쯤 된다는 외지인인데, 조그맣게 버섯농사를 짓는 샌님이란다. 기관 수사관이 들이닥칠 거라는 소식에 불안과 잠 못 이루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실토했단다. 애 아빠임을 어떻게 증명하냐고 묻자 어쩌다 보니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된 지 꽤 되었다는 설명에 고모부는 경악하였단다. 고모보다 함안댁의 연기가 그럴듯했음에 나는 허탈해하였다. 샌님은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아내와도 상의를 끝냈다고 하였단다. 함안댁 딸과 협의해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할 예정이라고 했단다. 고모부는 일을 확대시키지 않고 그 선에서 마무리하셨단다. 샌님의 말대로 딸을 만난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함안댁을 데리고 산골 마을을 떠났단다. 함안댁이 딸을 낳았다는 소식은 한참 후에 들었다. 지금은 어디에 사시는지 함안댁. 여든 다섯 언저리가 되는 나이일 테니 살아계시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