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타고 나의 계절이 다가왔다

by 스누즈




계절은 바람과 함께 나에게로 온다.



어둠이 차지하는 시간이 빛의 그것보다 늘어나고 있는 지금, 이불의 유혹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다. "5분만 아니, 1분 뒤에 일어날 거야!!"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나른한 목소리. 달큼한 목소리지만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일어나야 해!! 잠결이 미처 떠나지 않은 몸을 힘겹게 일으킨다. 애써 정신을 차리고 기지개를 켠다. 그 잠깐 사이에 잠결의 흔적은 온데간데없이 달아났다. 그렇다면 이젠 지난밤의 흔적을 치우기 시작해야 할 시간. 휴지통을 비우고 널브러진 빨랫감을 세탁기에 넣는다. 싱크대 위 누군가가 남긴 야식의 흔적을 없애는 것도 나의 차지다. 거실이 깔끔해졌으니 이젠 베란다로 나가본다. 아직 온전한 빛이 다가오지 못한 시간. 참 좋다. 문을 살짝 열어본다. 좁은 틈 사이로 들어오는 찬 기운에 반팔을 입은 난 소스라치게 놀란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숨을 크게 들이쉬어 본다. "쓰-읍-" 11월이 나에게로 왔다. 코끝을 지나 폐 깊숙이 들어가 손끝과 발끝까지 가득 찼다. 무어라 설명해야 할까? 내가 이 느낌을 과연 설명할 수 있을까? 깨끗하고 영롱하고 맑으며 더없이 차가운. 분명 차가운 바람을,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신 것인데 마음은 따뜻해져 온다. 차가움과 따뜻함이 공존하는 묘한 새벽의 공기.



난 가을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겨울 역시 마찬가지로 애정한다. 뜨거움과 열기가 가득한 여름보다 착잡함과 외로움, 그리움이 가득한 늦가을과 겨울을 누구보다 기다린다. 사람은 자신이 태어난 계절을 사랑하도록 만들어진 게 아닐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초여름에 대한 애정이 샘솟고 있긴 하지만 가을에 대한 사랑을 아직 넘어설 수 없는가 보다. 새벽 공기를 온몸으로 만끽하고 난 뒤에야 눈앞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싱그러운 연둣빛은 어느새 짙은 초록과 감색 그 언저리를 맴돌고 있었다. 참 신기하지. 매일 똑같은 하루를 살아가는 나에게 시간의 흐름을, 계절이 흘러가고 있음을 누구보다 확실히 알려주는 이가 나무 한 그루인 것이. 지겹다고, 지루하다고 투정 한 번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킨 채 시간과 계절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나무. 여름 어느 하루에서 쓴 글에 나무를 닮고 싶다고 적었던 것 같다. 가을의 끝자락에서도 여전히 난 나무를 닮고 싶어 하고 있다.



흘러간다 나의 하루가. 지나간다 나의 계절이.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 넘쳐나지만 그럴 수 없음이 슬퍼온다. 서글퍼져 온다. 그 어느 때보다 하루하루를 멈추고 싶은 요즘이기에. 오늘 새벽녘 나와 함께한 바람은 내일의 것과 다르겠지.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이치임을 알지만 내심 섭섭해져 온다. 시간이란 놈에게 혹은 지나가려 하는 계절에. 어둠이 지나가고 빛의 시간이 된 지금 새벽엔 보이지 않던 주황으로 가득 찬 잎들이 보인다. 한참을 바라본다.



바람을 타고 나의 계절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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