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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인생2막을 투영해 본 드라마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을 보며, 나를 다시 들여다보다

by 낭만기술사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그리고 나의 하루

나는 TV를 자주 보지 않는다. 기술과 일정이 이끄는 일상 속에서 감정의 여백이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느 날, 퇴근 후 무심코 켜둔 화면에서 JTBC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저 지나치려던 찰나, 형광등 아래 서 있는 김부장의 모습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낯설지 않은 얼굴, 익숙한 한숨, 오래된 농담처럼 무거운 어깨. 마치 누군가 내 하루를 따라다니며 조용히 기록해둔 업무일지를 드라마로 만들어놓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 이건 내 이야기구나.’ 그 순간부터 나는 오랜만에 한 드라마를 끝까지 따라보기 시작했다.


김부장은 겉으로 보면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스펙을 가진 중년의 가장이다. 서울의 집, 안정된 직장, 대기업 부장이라는 직함까지.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누구에게도 내보이지 못한 그림자 몇 개가 늘 따라다닌다. 회사에서는 성과와 관계 사이에서 흔들리고, 집에서는 아버지와 남편과 가장이라는 이름 사이에서 균형을 잃는다. 그의 하루는 늘 무언가에 쫓기지만, 그럼에도 아내의 말 한마디, 아이의 웃음, 동료의 따뜻한 시선 하나가 그를 다시 내일로 밀어 올린다. 그 모습은 오늘을 살아내는 많은 우리들의 얼굴과 닮아 있었고, 어쩌면 나 자신의 모습이기도 했다.


드라마를 보며 나는 직함보다 사람의 온도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렸다. 대기업 부장이든 기술사든, 우리의 본질은 결국 호칭이 아니라 마음의 밀도에 있다. 기술을 다루는 사람 이전에, 사람을 이해해야 하는 존재라는 단순한 진실이 김부장을 통해 선명하게 다가왔다. 가정과 회사, 기대와 현실 사이에서의 충돌은 때로는 나를 흔들리게 하지만, 그런 충돌이 결국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든다는 것도 다시 떠올렸다. 성장이라는 것은 늘 모순의 한가운데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말이다.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도 자연스레 따라왔다. 성과, 체면, 타인의 시선은 금방 스쳐 지나가는 것들이다. 하지만 가족의 평화, 마음의 건강, 나를 지탱하는 가치들은 절대 놓아서는 안 된다는 걸 김부장의 일상은 조용하게 알려준다. 신차 개발 PM 시절 경험도 떠올랐다. 문제의 근원은 대부분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감정과 온도였다. 리더십이란 결국 사람의 결을 읽는 능력이며, 김부장의 모습은 그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주었다.


화려한 반전 없이도 성실하게 하루를 버텨내는 김부장의 모습에서는 이상한 위로를 받았다. 드라마 속 클라이맥스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묵묵히 쌓아 올린 하루하루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의 진짜 가치는 거대한 이벤트가 아니라 성실한 하루의 반복 속에 숨어 있다는 것. 그 평범한 하루가 사실은 가장 예술적인 장면일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이 마음 한편에 고요하게 내려앉았다.


이 드라마는 나에게 오래 기억될 문장을 하나 남겼다.

“삶은 거대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작은 선택들이 모여 완성되는 감성의 기술이다.”


신차 개발처럼 삶도 끝없이 시행과 피드백을 거치며 조금씩 더 나은 버전으로 업데이트된다. 김부장은 완벽하지 않다. 오히려 그 불완전함 그대로가 따뜻했다. 어쩌면 기술사로 살아가는 우리의 방식도 그런 ‘불완전한 아름다움’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삶을 조율하고, 사람을 이해하고, 흔들려도 다시 일어서며, 내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일. 그것이 아마… 내가 낭만기술사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문득, 이 이야기가 내 인생 2막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김부장이 하루를 견디며 자신을 다시 들여다보듯, 나 또한 이 드라마를 통해 내 삶의 다음 장을 조용히 비춰보게 되었다.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의 시간을 함께 바라보니, 새로운 시작이 두렵지 않았다. 인생 2막이라는 커다란 문을 열어젖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오늘의 선택을 조금 더 성실히, 조금 더 따뜻하게 쌓아가면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또 한 번 내일로 향하는 발걸음을 준비한다.

어쩌면 그것이, 나라는 기술사가 살아가는 방식이자

내 인생 2막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는 가장 낭만적인 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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