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 성해나
[스포주의!!] 2025 1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성해나 작가의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를 읽자마자 어딘가에 꼭 기록해두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먼저 줄거리를 간략히 써보지면, 주인공 "나"는 영화 감독 김곤의 열렬한 팬이다.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을 두 번이나 수상할 정도로 명성이 대단한 감독이지만, 아역 배우 학대 논란으로 세간의 비판을 받고 있다. 논란이 있은 후에도 "나"는 김곤 감독에 대한 논란을 의식하는 한편, 여전히 김곤 감독의 팬클럽에 가입하고 작품을 보고 굿즈를 사는 열렬한 팬이다.
길티 없이 플레져만 느끼고 싶어 가입한 팬클럽에서 베를린 영화제 관람을 위한 오프를 하게 되는데,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이런 저런 전문용어를 남발하며 김곤 감독의 작품에 대한 감상을 나누는 무리들 사이에서 "나"는 소외감을 느끼는 한편, 결국 김곤 감독의 논란을 화두에 던져버린 한 팬에게 한마디 한다.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게 더 가혹한 거 아닌가요?
입증된 것도 없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되죠.
제대로 된 증거도 없는 사건을 어떻게 사실이라 단정짓는지, 왜 무고한 사람을 죄인으로 모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그게 더 가혹한 일 아니냐고 나는 말했다. ...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는 믿어야죠. 우리는 그래야 되는 거 아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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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이후 열린 GV에서 김곤 감독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고개 숙여 인사를 한 순간 "나" 속에서는 무언가 터져버렸고, 그 후 몇 년의 시간이 흘러 김곤 감독을 저 기억 저편에 던져버린 뒤 방문한 치앙마이의 타이거 킹덤에서 이빨도 발톱도 빠진 채 구경거리가 된 호랑이 등에 올라타 길티 플레져를 느끼는 "나"의 모습으로 소설은 마무리 된다.
"나"는 왜 팬클럽 (길티 클럽) 모임에서는 김곤 감독의 논란을 그토록 강하게 변호할 수 있었을까. 김곤 감독의 논란을 비판하는 주변 사람에게는 이렇게 강하게 말하지 못했는데. "나"는 아무래도 오랫동안 김곤 감독의 작품을 소비하는 것과 김곤 감독의 논란 사이에서 답을 구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의 변호는 김곤 감독의 아동 학대가 옳지 못하다는 것을 알지만 여전히 김곤 감독을 좋아하고 굿즈를 구매하고 작품을 감상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변호 같다. "나"에게 길티 클럽은 "길티"를 무시한채 "플레져"만 누리기 위해 찾은 곳이었는데 그 곳에서마저 "길티"를 느끼고 있는 상황을 부정하고 싶은 것 같기도 하다. 소위 말하는 "중립 기어"를 박아야 한다고, 적어도 팬인 나는 그래야 한다고, 그 전까지는 김곤 감독이 이미 잘못을 한 것 마냥 취급하면 안된다고. 그렇기에 자기랑 같다고 생각한 팬이 그 부분을 지적해버리니 주변 사람에게는 말하지 못했던 방어기제가 나온 것 아닐까.
한편으로는, 진성 시네필 사이에서 묘하게 소외감과 열등감을 느끼고 있던 "나"가 자신의 김곤 감독 사랑은 너희 누구보다도 뒤지지 않는다는 인정욕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이 마음은 김곤 감독의 인정을 받고 기억에 남고자 여기저기 주워들은 말로 작품을 평가하고 질문하며 애쓰는 모습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김곤 감독을 감싸줬지만, 그렇게 좋아했지만, 그 김곤 감독이 오히려 진정성 있게 잘못을 인정해버리자 오히려 무너져버린다. "길티"와 "플레져" 자아에서 애써 눌러놓은 "길티"만 남아버리니 그동안 김곤 감독을 지지해온 자기 자아가 부정당하는 느낌이지 않았을까. '내가 진짜 그런 인간을 좋아했다고 ...'
케이팝과 케이드라마를 오래 좋아하고 있는 사람으로써 (아직도 좋아한다!) "나"의 모습은 나와 어딘가 닮아있다. 좋아하는 배우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구설수에 오르는 순간, 논란을 의식하며 마음이 불편하지만 범죄가 아닌 이상 그 논란들을 가까스로 흐린눈하며 작품을 챙겨보고 노래를 들으며 구설수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린다. 좋아했던 기간이 길수록, 좋아하는 마음이 클수록 내가 좋아하는 건 그들의 작품이지라는 말로 내 행동을 정당화시키기 쉽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좋아한 세월과 마음이 부정당하는 것만 같고 왠지 나는 더 이상 팬이 아닌 것만 같은 마음이 든다. 연예인들의 작품과 사생활을 완벽히 분리해서 볼 수는 없다. 내가 소비함으로 그들을 지지하는 꼴이 된다.
비단 노래와 드라마뿐인가. 마치 "나"가 치앙마이의 타이거 킹덤에서 호랑이 등에 앉아 길티 플레져를 느낀 것처럼, 동물 학대를 의식하지만 동물원과 수족관을 가면서, "지구야 미안해!"를 외치면서 여전히 일회용 물병과 SNS와 챗지피티를 끊지 못하면서, 건강에 좋지 않은 걸 알면서도 카페인 음료를 마시고 간식을 먹으면서, 삶의 온갖데서 길티 플레져를 느끼고 있다. 살아서 윤리의 경계를 고민하는 한, 윤리와 쾌락의 경계에서 아무래도 오랫동안 "길티 플레져"를 느끼게 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