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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저보다 글을 잘 쓰네요

<고양이가 쓴 원고를 책으로 만든 책>

by 무아노


8월 8일은 세계 고양이의 날이다. 고양이 보호와 인식 개선, 유기묘 입양 장려를 위해 비영리 단체가 만든 날이라고 한다. 나는 고양이를 키운 적은 없지만 가족이 함께 지낸 적이 있어 동물들 중에서는 특히 좋아하는 편이다. 무엇보다 경계심이 강한 고양이가 스스로 다가오는데, 마음이 사르르 녹아버려 버틸 재간이 없다.


고양이에 대한 인간의 관심과 사랑은 오래되고 깊다. 영상 매체는 물론이고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과 동화도 끊임없이 나온다. 그 많은 책 중 내 눈길을 끈 것은 『고양이가 쓴 원고를 책으로 만든 책: 새끼 고양이, 길 잃은 고양이, 집 없는 고양이를 위한 지침서』였다.


이 책은 어느 날 출판사 편집자의 집 앞에 놓인 주인을 알 수 없는 원고에서 시작된다. 암호처럼 보이는 글을 해독하기 위해 이웃인 ‘인간 작가’에게 도움을 청하는데, 그는 이것이 암호가 아니라 넓적한 앞발로 쓴 원고라 오타가 많았을 뿐임을 알아낸다. 그렇게 깨닫자 번역은 쉽게 진행된다.

한국어 번역가는 이 과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고양이가 묘어로 쓰고, 폴 갈리코가 영어로 번역하고, 조동섭이 한국어로 옮기다." 정말 절묘한 설명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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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작가는 친구들의 권유로 ‘인간을 접수하는 방법’을 책으로 내기로 한다. 자신의 접수 경험을 시작으로 인간 분석, 재산 만들기, 동물병원 가기, 식탁에서 음식 얻기, 예의범절 등 세세한 주제를 다룬다.

고양이 작가의 식견이 뛰어나다는 것은 제일 처음 챕터 '접수하기'에서부터 느껴진다. 그녀가 접수를 시도한 인간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낯선 고양이를 대하는 인간 그 자체라서 웃음이 나온다. '키우는 건 안돼!' 하지만 고양이가 애처로워 눈에 밟히고 결국은 집에 들이는 모습이 말이다. 그리고 그 전부가 고양이의 '작전'임을 모르는 것이 가장 그렇다.


인간에 대해 잘 알고 잘 다루는 그녀가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인간은 단점이 많은 존재라는 것.

"인간은 어리석고 하잘것없고 심술궂고 무심해. 종종 교활하기까지 하지.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고 일부러 둘러말하고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지. 이기적이고 탐욕스럽고 경솔하고 제멋대로에 변덕스럽고 비겁하고 질투하고 무책임하고 고압적이고 편협하고 성급하고 위선적이고 게을러."

그렇기에 접수했다고, 인간이 고양이에게 푹 빠졌다고 느껴지더라도 쉽게 변심할 수 있으니 방심하지 말고 스스로를 지키라며 경고한다.

"이런 인간의 사랑이 막대로 맞는 것보다 더 아플 수 있으니 조심해. 인간은 사랑하다가도 사랑을 버리고 떠날 때가 많아. 우리 고양이는 절대 그러지 않지만."


고양이의 시선으로 쓰인 이 책은 ‘고양이 책의 고전’으로 불린다. 그도 그럴 것이 책을 읽는 인간, 특히 애묘인들이 좋아할 내용이 가득하다. 이해하기 어려운 고양이의 행동 이유와 병원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 인간과 지낼 때 지켜야 할 예의까지. 고양이들에게 유용한 정보가 가득해 정말 고양이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마음이 생긴다. 얻을 건 얻으며 영리하게 인간을 이용했으면 싶다. 어느 날 버려질 것을 감안하면 그래야 고양이에게 남는 장사이지 않을까?

다들 눈치챘겠지만 결국 이 책은 폴 갈리코가 독자에게 전하는 당부다. 고양이를 데려왔다면 사랑과 행복으로 보살피고, 그 마음을 끝까지 지켜주기를. 인간의 변덕과 게으름은 끝내 들키지 않기를. 그저, 고양이들이 오래도록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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