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스틸 라이프 | '기인'들을 위한 진혼곡

[영화 속 에니어그램 #15] 1번의 직업윤리로 죽은 자의 집 청소하기

by 아닛짜

'고독(孤獨)'이란 말은 자신과 어울리는 어떤 말들에게도 어둡고 칙칙한 색조를 끼얹는 마법의 단어이다. 주변의 말들이 아무리 밝고 가치중립적이라 해도 예외 없다. 설상가상으로 '죽음(死)'이라는 또 다른 어두운 친구와 결합하면 누구도 원하지 않는 '고독사(孤獨死)'가 완성된다.


우리는 이제 '고독사'라는 말에 익숙해졌지만, 일찍이 고독사 분야에서 앞서가는 일본에서는 '고독' 대신 '고립'이라는 말을 써서 '고립사'라는 말을 공식용어로 사용한다고 한다. 개인적인 정서가 느껴지는 '고독'이라는 말을 사회적 상황에 더 주목한 '고립'이라는 말로 바꾼 것은 나름대로 정당한 것 같다.


그러나 고립사든 고독사든 산 사람들의 논쟁일 뿐 죽은 자의 입장에서 보면 알 바 아니다. 어찌 보면 가장 속 편한 사람은 죽은 자이다.


<스틸 라이프(Still Life)>는 산 사람이 죽은 자가 남기고 간 것들을 수습하는 이야기이다. 우베르토 파솔리니라는 나에게는 다소 생소한 감독의 2014년도 영화이다. 파솔리니 감독은 영국 영화 사상 가장 많은 수익을 올렸다는 <풀 몬티>(1997) 제작자이기도 하다는 검색 정보를 보니, '아 그 영화!' 하면서 반가워졌다. 이 감독의 다른 작품들도 매우 궁금해진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1. 1번의 직업윤리로 '죽은 자의 집을 청소하다'.
2. '기인'들을 위한 진혼곡
3. 죽음이라는 동질감은 우리를 모두 친구로 만든다.




1. 1번의 직업윤리로 '죽은 자의 집을 청소하다'.


존 메이는 홀로 죽은 사람들의 유품을 수습하고, 장례를 치르는 일을 하는 런던의 22년 차 공무원이다.


완벽주의적 성향, 원칙을 고수하는 태도, 약간의 강박적인 정돈 습관을 보면, 존을 에니어그램 1번 유형으로 판명하는 것에 그렇게 이견이 많지 않을 것 같다.


그는 외출하고 돌아오면 항상 옷을 정성스럽게 옷걸이에 건다. 모든 물건의 각을 맞추어서 놓는 것이 습관이어서, 의자를 빼고 앉을 때도 각을 맞추고, 책상의 물건들은 언제나 제 자리에 놓여 있다. 왜인지 모르지만, 사과 껍질도 한 번도 끊지 않고 깎는다.


그는 타고난 청소 기질을 발휘하여, 기차의 간이 식탁 위에 흘린 빵 부스러기까지 손바닥으로 쓸어서 종이컵에 넣는다. 1번 유형에게 청소는 특별히 궁합이 잘 맞는 일이다. 또 다른 1번인 <퍼펙트 데이즈>의 히라야마가 천의무봉의 손길로 청소한 반짝반짝하는 화장실들을 연상해 보면 된다.


오탈자를 찾아내는 교정이나, 불량품 검수 작업과 같이 정상적인 척하며 숨어있는 잘못된 무언가를 잡아내는 일도 1번의 전문이다.

1번의 사무실. 자세히 보면 군더더기 하나 없으며, 모든 것이 제자리에 바른 각도로 놓여 있다.


평균적인 1번들은 대체로 도덕관념이 뛰어나서 자잘한 규칙들도 잘 지킨다. 맘에 안 드는 일이 있어도 대놓고 지적하거나 화내지 않는다.


존은 자신의 상관인 부장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는다. 그런 그가 하는 소심한 복수는 몰래 상관의 차에 정중하게 오줌 테러(?)를 하는 것이다.


존은 사망자의 유족을 확인하는 일이 잘 진척되지 않을 때는 몇 달씩 장례를 늦추기도 하며, 한 명 한 명을 꼼꼼히 처리한다. 이제 더 방법이 없다고 판단될 때 최종적으로 파일에 '사건 종결(Case Closed)'라고 쓰고 종결 파일을 보관하는 선반으로 옮겨 넣는다.


존의 이러한 성실함은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잘 어울리는 특성처럼 보이지만, 이제는 공무원도 사기업처럼 효율적인 일처리와 성과를 지향하도록 독려하는 시대가 되었다. 바야흐로 자본주의적 가치가 세상의 모든 일의 가장 중대한 기준으로 작동하게 되었다.


에니어그램 유형 중 자본주의에 최적화될 수 있는 유형은 3번이다. 성공주의자인 3번은 효율성과 가시적 성과를 내는 일에 독보적이다. 3번적 시각으로 봤을 때 존의 꼼꼼하지만 빠르지 못한 일처리는 뭔가 문제가 있다.


3번적 성향의 부장은 예산 부족을 명분으로 존을 정리해고한다. 부장은 좀 미안했는지 존의 사무실에 불쑥 찾아와서 해고의 정당성을 변명하려는 듯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일에 관해서 생각을 좀 해봤어요. 어차피 장례식이란 건 산 사람들을 위한 거예요. 그러니 아무도 없으면 신경 쓸 사람도 없죠. 사실 살아있는 사람들은 모르는 게 낫잖아요. 장례식도, 슬픔도 눈물도 없는 게."


1번과 3번은 모두 부지런하고 활동적이며, 의지가 강한 유형이다. 그러나 이들이 같이 일하게 되었을 때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심각한 갈등이 생길 수 있다. 특히 누가 상사인가에 따라 갈등의 양상이 달라진다.


1번은 아무리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더라도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기를 원하며,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할 것을 강요한다.


반면 3번은 목표가 중요하며, 목표에 도달할 최단 거리의 지름길을 찾는다. 이들은 목표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은 교묘하게 조종할 수도 있다고 여긴다.


'살아있는 교과서' 같은 1번은 3번에게 비효율적이며 사소한 것에 매달린다는 느낌을 준다. 성과를 위해 원칙도 쉽게 어기는 3번은 1번에게 무모하고 피상적이며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인상을 준다.


존은 부장의 말을 듣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는 자신의 일이 '산 사람'을 위한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산 사람들은 대부분 장례에 참석하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백 명 중 한 명이라도 부고 소식을 듣고 싶어 한다면 그는 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마치 목자가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으러 떠나는 것처럼.


존은 처리돼야 할 유골들이 몇 달씩 적체되어 있지만, 누군가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나는 <스틸 라이프>를 보면서 김완 작가의 <죽은 자의 집 청소>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김완 작가는 죽은 이의 남겨진 집을 청소하는 일을 하면서 경험한 것을 생생한 기록으로 남겼다.


존 메이와 김완 작가의 일은 서로 협업하여 죽은 이의 남은 일을 마무리하는 것 같다. 김완 작가가 물리적 마무리를 하고 나면, 존 메이가 와서 정신적 마무리를 하는 것처럼.


존은 유족의 진심 어린 감사의 말을 듣고 이렇게 말한다. "고맙긴요. 제 일이었을 뿐인걸요(It was just my job)." 이것이 1번의 진정한 스웩(!)이다.


건강한 1번들이 공직에 가득한 사회는 청렴하고 믿을 수 있는, 그러나 좀 답답한 것은 감수해야 하는 사회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존만 덩그러니 남겨둔 채 공무원들은 빠르게 변모해 간다. 새로 온 존의 후임은 아주 효율적으로 무연고자들의 뼛가루를 동시에 두 단지씩 바닥에 뿌리며 부장을 만족시킨다.

후임의 빠른 일처리.png 새 후임은 뼛가루를 임시 플라스틱통 채로 그대로 바닥에 쏟아 '버린다'.




2. '기인'들을 위한 진혼곡


영화의 첫 장면에서 교회 앞마당의 수많은 비석이 보이고, 교회 안에서는 장례식이 치러진다. 주제자인 목사와 유족처럼 보이는 한 사람만 있는 아주 조촐한 식. 관객이 유족일 거라 착각하는 사람은 바로 존이다.


사망자들은 연락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간혹 연락된 지인들도 어떻게든 관여하기를 거절한다. 자신이 장례비를 내지 않아도 되는 것에 안도하기도 한다. 그래서 존은 모든 장례식을 지키는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죽은 이는 죽는 순간에만 '고독'했던 것이 아니라, 죽기 한참 전부터 이미 '고독'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고독은 가난과 연결되어 있다. 죽은 사람들의 집 풍경에 빠지지 않는 것이 속옷, 양말 등의 빨래를 방 안에 걸어놓은 것이다. 존은 사망자의 집에 들어서면 발밑에 쌓여있는 우편물들을 마주친다.


가난한 자에게도 넉넉하다 뿐인가, 남아 넘쳐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우편물이다. 체납고지서와 독촉장, 가스와 수도와 전기를 끊겠다며 으름장을 놓는 미납요금 경고장, 경고한 대로 이제 공급을 중단했다는 최후통첩장이 우편함에 빽빽하게 꽂혀 있다. ...

달리 생각해 보면, 가족은 연락을 끊어도 채권자는 끊임없이 안부를 묻는 셈이다. 빚 있는 자의 건강을 염려하는 사람은 혈육보다 오히려 채권자가 아닐까?

김완, <죽은 자의 집 청소>, 김영사, 2020, P43




존은 자신의 해고를 통보받았을 때 부장에게 한 첫 질문은 지금 진행하고 있는 일을 어떻게 할지를 묻는 것이었다. 이것이 1번이다. 무엇이든 마무리를 제대로 못 하면 존은 잠을 잘 자지 못할 것이다.


존은 자신의 마지막 케이스를 정말 잘 끝내려고 노력한다. 지금까지 아쉽게 끝내야 했던 '사건 종결'을 제대로 하고 싶었다.


존이 종결해야 할 마지막 대상자는 자신의 집 건너편에 살던 빌리 스토크라는 사람이다. 존은 주변에 살던 사람이 홀로 죽은 채로 한참이 흘렀고, 자신이 그 사람이 존재하는지도 몰랐다는 것에 충격을 받는다.


이제 존은 마치 사설탐정으로 전직한 것처럼, 빌리의 생전 인연의 끈을 찾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닌다.

노숙자 친구들.jpg 존은 빌의 노숙자 친구들로부터 빌에 관한 이야기를 청해서 듣는다. 빌을 위한 즉석 추모회가 되었다. 아무것도 아닌 장면이 정말 따뜻하게 느껴진다.


빌리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전쟁 파병에서 돌아온 후 알코올 중독과 폭력, 교도소 생활, 노숙자로 전전하는 한없이 무책임한 인생이지만, 불쑥 인정 많고 정의로운 일화가 삽입되기도 하고, 여러 직업을 떠돌다가 난데없이 맛있는 빵 레시피를 개발하기도 했다.


지금은 플라스틱 통에 담겨 재만 남았지만, 그곳에는 존중받아 마땅한 시간이 들어있다. 무연고자인 사망자도 이름이 있고, 가족이 있었고, 길든 짧든 자신만의 화양연화가 있었다. 한 사람의 역사를 기리는 것은 인간만의 능력이며 특권이다.


존은 자신이 종결한 파일들을 정리하면서, 그들의 사진을 하나씩 자신의 앨범에 끼워서 보관해 왔다. 그는 21년의 세월이 담긴 두꺼운 앨범을 한 장 한 장 넘겨본다.


고양이를 자식처럼 사랑하던 할머니, 파일럿 복장의 군인, 기타를 들고 있는 중년, 앳된 럭비 선수, 시원스럽게 웃음을 짓는 여인, 결혼사진. 앨범 속의 수많은 얼굴들이 화면을 가득 메운다.

사진첩.png
사진1.png
사진2.png
사진3.png
사진4.png
사진5.png
존의 앨범 속에 담긴 사진들은 고독사 한 사람들의 다채로웠던 삶을 보여준다.


나는 빌리 스토크와 모든 무연고자의 죽음을 보며 바로 전에 리뷰를 쓴 <나이트메어 앨리>의 '기인(Geek)'과 스탠턴의 삶이 연상되었다. 두려움과 욕망 속에서 치열한 시간을 살았으나, '수레바퀴의 아래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야 했던 기인들.


<스틸 라이프>는 이 세상에 존재했던 그 많은 '기인(Geek)'들을 기리는 장례식 같다는 생각이 든다.


존은 장례식에 앞서 고인들의 집에서 수거한 사진과 물품들을 꺼내놓고 그들의 삶을 상상하며 추도문을 정성껏 써 내려간다. 그의 책꽂이에는 'A Joyful of Life', 'The Magic of Greece', 'Flower of Scotland'와 같은 CD가 준비되어 있다.


그가 준비한 추도문과 음악 덕분에 장례식장은 '기인들을 위한 진혼곡'이 울려 퍼지고, 그들은 외롭지 않게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고독(孤獨)'의 '고(孤)'는 원래 부모가 없는 아이(子)를 일컫는 말이며, '독(獨)'은 자식이 없는 노인을 의미한다. 이 두 단어가 결합하여 압도적 쓸쓸함의 정서를 나타내는 하나의 단어가 된 것이다.


<맹자>에는 국가가 관리하는 특별한 계층들이 나온다. 홀아비 '환(鰥)', 과부 '과(寡)', 늙었으며 자식이 없는 '독(獨)', 어리면서 부모가 없는 '고(孤)'. 이 네 가지는 천하의 곤궁한 백성으로서 하소연할 곳이 없는 자들이다. 그래서 3천 년 전에 주나라의 성군이라 일컬어지는 문왕은 선정을 베풀 때 반드시 이 네 부류의 사람을 먼저 배려했다고 한다.


존의 장례식에는 시대와 장소를 건너 주 문왕의 뜻이 계승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3. 죽음이라는 동질감은 우리를 모두 친구로 만든다.


존은 마침내 스토크의 딸 켈리를 찾아내는 데 성공한다.


아버지에 대한 감정의 응어리가 남아있고, 몇 년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켈리는 "나는 오늘부로 공식적인 고아네요."라고 말한다. 존은 "괴로운 일이죠. 언제 겪더라도."라고 위로한다.


살 만큼 산 사람이건 앞날이 창창한 어린이이건, 혹은 방탕하게 허비한 인생이건 대단한 업적을 쌓은 인생이건, 죽음 앞에서는 평등하다.

백 살 넘게 산 사람의 죽음이 어린이의 죽음보다 덜 애석한 것은 아니다. 단지 '시간'이라는 관념이 주는 착각이다. 시간의 마법을 제거하면 우리는 모두 강력한 공통점으로 묶여 있다.


<죽은 자의 집 청소>에는 저자가 경험한 다양한 '죽은 자의 집'들이 나온다. 그중에는 집안에 간이텐트를 쳐 놓고 캠핑장처럼 산 사람이 있었다. 마치 기차역 대합실에 머무르는 것처럼 언제든 이동할 수 있는 임시적인 삶이었을까?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아니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이것은 단지 산 자를 위한 속담이다. 이름값을 하며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삶을 독려하는 말.

죽은 자의 앞에서 모든 것은 무의미해진다.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그 많은 인간이 끊임없이 나고 죽고, 나고 죽고 하는 하찮은 일의 반복이다.

그러나 동시에 존은 그 하나하나의 무의미한 삶을 소중하게 들여다봐 준다.


존은 자신의 마지막 업무로 빌리 스토크의 장례식을 정성껏 준비한다. 관을 고르고, 햇볕이 잘 드는 묘지 자리도 예약한다.


관리 직원 : "전망 좋은 곳이죠. 무덤 주인이 가족분인가요?"

존 : "가족은 아닙니다. 친구죠(Just a friend)."


우리는 모두 같은 배를 타고 부대끼며 항해하는 친구다. 약간의 시간 차이가 있을지언정 모두 같은 길을 가는 친구다.


'너'는 모두 '나'다. 동일시와 연민을 잊을 때 고독이 생겨난다.


'고독'은 단지 관념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가 모두 친구라는 것을 잊었을 때.




이 글은 쓰다 보니 <나이트메어 앨리>의 세 번째 리뷰이자 에필로그가 된 것 같다.


죽은 사람의 몸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연출된 것처럼 잠을 자듯 온전하게 유지되지 않는다.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증 같은 심혈관계 질환이나 폐색전증 같은 허파 질환으로 사망한 경우 이삼일만 내버려 두면 엄청난 양의 피와 액체가 몸에서 쏟아져 나온다. 또 목을 매고 숨을 거두면 직립한 채로 늘어진 사체가 근육을 조절하는 힘을 잃은 탓에 온갖 오물을 배설해 놓는다.... 사람이 죽으면 박테리아가 증식하여 온갖 장기가 부풀어 오르고 풍선이 팽창하다가 폭발하는 것처럼 복부가 터지며 온갖 액체를 몸 밖으로 쏟아낸다.

<죽은 자의 집 청소>, P97


언젠가 거대한 고래의 사체가 부패한 내부 압력을 못 견디고 터지는 영상을 본 기억이 난다.


나도 모든 죽은 이들에게 짧은 추도문을 낭독하고 싶어졌다.


그토록 지키려고 전전긍긍했던 세상과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마지막 축제의 성대한 불꽃놀이.

무르익은 자유.

죽음은 축제다.

- 아닛짜 -




#스틸라이프 #StillLife #우베르토파솔리니 #죽은자의집청소 #고독 #고독사 #고립사 #환과고독 #에니어그램1번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이트메어 앨리 #2 | 멈출 때를 알면 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