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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PU vs GPU: AI 반도체 경쟁, 진짜 혁신은?

이설아빠의 Global Business Story

by 이설아빠

요즘 뉴스를 보면 아래와 같은 제목의 뉴스가 자주 보인다.


“구글 TPU, 엔비디아 GPU 독주 흔들다”

“제미나이 3.0, 엔비디아 없이 학습”

“AI 반도체 판이 다시 짜인다”


기사 속으로 조금만 들어가 보면 공통 키워드 하나가 계속 등장하는데, 바로 구글의 AI 전용 반도체, TPU(Tensor Processing Unit)이다. 여기서 사람들 반응은 둘로 갈린다.


“와, 완전 새로운 기술이네. 이게 진짜 혁신이지!”

“그냥 CPU·GPU에서 AI만 잘하게 특화한 거 아냐? 있는 거 응용한 수준이지.”


두 번째 반응에서 잠시 멈춰 서게 된다. “특화시켰을 뿐인데 그게 혁신이냐?”라는 질문이다. 그런데 비즈니스 현장을 오랫동안 지켜보면, 완전히 새로 만든 것보다는 “있던 것을 다르게 설계한 것”이 훨씬 더 큰 변화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오늘은 구글 TPU 이야기를 잠깐 빌려와 “혁신이란 무엇인가?”를 조금 더 넓게, 그리고 쉽게 풀어보려 한다.


TPU와 GPU, 혁신 이야기를 여는 출발점


먼저 TPU와 GPU를 아주 간단하게만 짚고 가보자. GPU는 원래 게임·그래픽을 위해 태어난 칩이다. 화면의 수많은 픽셀을 동시에 계산해야 하다 보니 한 번에 많은 연산을 병렬로 처리하는 구조가 되었고, 그 구조가 나중에 AI 연산에도 잘 맞아서 챗GPT 같은 모델 학습에까지 쓰이게 된 것이다.


반면 TPU는 출발 질문 자체가 달랐다.


“AI가 하는 일의 핵심은 결국 행렬·벡터 계산 같은 수학이다. 그렇다면 그 수학만 미친 듯이 잘하는 칩을 만들면 어떨까?”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구글표 AI 전용 칩 TPU입니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GPU는 국어·수학·과학·체육을 두루 잘하는 만능 1등 학생, TPU는 “난 수학만 파겠다” 하고 수학 문제만 죽어라 푸는 영재반 학생에 가깝다. 겉으로만 보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기존 만능 1등 학생에게 과목을 줄여서 수학만 하게 만든 거잖아. 완전히 새 학생이라기보다, 그냥 역할 재배치 아닌가?”


맞는 말 같기도 하지만 바로 그 ‘재배치’와 ‘다시 설계’에 혁신의 핵심이 숨어 있다.


TPU가 보여주는 것: 새 부품이 아니라 ‘새 설계’


그렇다면 구글은 어떤 방식으로 혁신을 만들었을까? GPU 시대의 기본 생각은 단순했습니다.


“뭐든 빨리 계산할 수 있는 만능 칩이 필요해.”


그래서 그래픽, 게임, 영상, 과학 계산, AI까지 다양한 일을 두루 잘하는 칩이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TPU는 애초에 질문을 바꾸었다.


“AI는 결국 행렬·벡터 계산이 핵심인 수학 문제다. 그렇다면 이 계산만 압도적으로 잘하는 칩을 만들자.”


겉으로만 보면 “AI만 잘하는 특화 칩이 하나 더 나왔구나”일 수 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구글은 컴퓨터를 AI 중심으로 다시 정의하고 칩 구조·연결 방식·데이터센터 구조·비용 구조까지 전체 설계를 새로 그린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TPU를 “완전히 새로운 물건”이라기보다 문제 정의 → 설계 → 연결 방식 → 비용 구조를 한 번에 바꾼 설계 혁신이다. 즉, 혁신의 포인트는 “완전히 새 물건이냐”가 아니라 “기존에 있던 것들을 어떻게 다르게 설계했느냐”에 있다.


혁신은 새 기술보다 ‘새로운 조합’에서 더 많이 나온다


우리가 “혁신”이라고 부르는 사례를 떠올려보면, 완전히 처음 나온 기술보다 기존 것의 재조합에서 나온 경우가 더 많다. 간단히 몇 가지만 살펴보자.


스마트폰 : 전화 + 카메라 + MP3 + 인터넷 + 게임기를 한 손안에 묶어낸 조합의 혁신

넷플릭스 : 영화·드라마 위에 스트리밍 + 월 구독 모델을 얹어 콘텐츠 소비 방식을 다시 설계한 혁신

스타벅스 앱 오더 : 커피·매장·대기줄이라는 익숙한 풍경에 모바일 결제 + 픽업 시스템을 결합해 “줄 서는 시간”을 없앤 서비스 혁신


이런 사례들을 두고 “커피는 원래 있었고, 앱도 원래 있었고, 영화도 원래 있었잖아. 그냥 합친 거지”라고만 말해버리면, 우리는 혁신의 절반을 놓치게 된다. 따라서 정말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지금 있는 것들을 어떻게 다르게 써서 더 빠르고, 더 싸고, 더 편하게 만들었는가?”


TPU도 마찬가지다. 반도체, 행렬 연산, 데이터센터, 네트워크 모두 이미 존재하던 기술이지만, “AI 수학에 올인하는 칩”이라는 문제 정의, 그리고 거기에 맞춰 칩 구조·연결 방식·비용 구조를 다시 설계한 선택이 구글을 AI 경쟁에서 한 발 앞서게 만든 것이다.


혁신의 여섯 가지 얼굴, 그리고 한국 기업의 기회


조금 더 정리해 보면, 비즈니스 현장에서 혁신은 대략 여섯 가지 얼굴로 나타난다.


제품 혁신 : “더 빠르고, 더 얇고, 더 정확한” 제품을 만드는 변화

서비스 혁신 : 상품은 같지만 사용 경험을 바꾸는 혁신

프로세스 혁신 : 생산·운영 방식을 바꾸어 비용과 시간을 줄이는 혁신

비즈니스 모델 혁신 : 돈이 들어오는 구조 자체를 다시 설계하는 혁신

조직·문화 혁신 : 의사결정 방식과 일하는 문화를 바꾸는 혁신

시장·고객 혁신 : 새로운 수요·새 시장을 만들어내는 혁신


TPU 이야기를 여기에 겹쳐 보면, TPU는 단순한 제품 혁신을 넘어서 데이터센터 구조(프로세스), 클라우드 요금·AI 서비스 구조(비즈니스 모델), AI 전략을 결정하는 조직의 사고방식(조직·문화)까지 한꺼번에 건드리는 복합적인 혁신의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변화는 AI 반도체 전쟁, 그리고 한국 기업의 기회와도 연결된다. TPU와 GPU의 경쟁은 이렇게 말해준다.


“AI 경쟁의 무게 중심이 소프트웨어에서 반도체·클라우드 인프라로 이동했다.”


어떤 모델을 쓰느냐 못지않게, 어떤 칩과 어떤 클라우드 위에서 AI를 돌리느냐가 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엔비디아 GPU가 시장을 선점한 사이, 구글 TPU, AWS·마이크로소프트의 자체 AI 칩이 등장했다는 건 글로벌 기업들이 연산 속도·비용·전력 효율을 스스로 통제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이 흐름 속에서 한국은 어디에 설 수 있을까요? 한국은 이미 HBM 같은 고대역폭 메모리, 패키징, 전력 효율 설계에 강점이 있다. AI 전용 칩은 이런 요소 없이는 제대로 힘을 못 쓴다. 따라서 한국 기업에게 더 현실적인 질문은 “우리도 TPU를 만들 수 있을까?”보다 “AI 시대에 꼭 필요한 메모리·패키징·공정·소프트웨어를 어떻게 새롭게 조합하고 설계할 것인가?”에 가깝다.


혁신은 새 부품이 아니라, 새로운 설계에서 시작된다


혁신은 꼭 “세상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것”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이미 가진 기술·제품·서비스라도 문제를 다르게 정의하고 요소를 새로 조합하고 설계를 바꾸고 비용 구조와 경험을 다시 짜면 충분히 강력한 혁신이 될 수 있다.


TPU는 그걸 보여주는 예 중 하나다. AI라는 문제를 다시 정의하고, 칩 구조와 연결 방식, 데이터센터와 비용 구조까지 통째로 다시 설계한 시도라는 점에서 “설계 방식을 바꾼 혁신”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정리한 제품·서비스·프로세스·비즈니스 모델·조직·문화·시장·고객이라는 혁신의 여섯 가지 틀을 머릿속에 두고 세상을 보면, 전에 보이지 않던 기회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새 기술이 없어도 괜찮다. 지금 내 손에 쥔 자원, 내 회사의 역량, 내 주변의 파트너들을 어떻게 다르게 설계하고, 연결하고, 조합할 것인가 그 질문에서 혁신은 시작된다. 그래서 이렇게 이번 포스팅을 마무리하고 싶다.


“혁신은 새 부품이 아니라, 새로운 설계에서 시작된다.”


다음에 “AI 반도체”, “TPU vs GPU”, “새로운 서비스” 같은 기사를 보면 “와, 또 새로운 게 나왔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번에는 설계를 어디서, 어떻게 바꿨지?”라고 한 번 물어보면 어떨까?


그 질문이, 우리 비즈니스의 다음 혁신을 여는 출발점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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