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설아빠의 Global business Story
요즘 뉴스를 켜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자주 볼 수 있다.
원·달러 환율 1,500원 근처
달러당 1,470원대 고착
IMF, 한국 달러 기준 GDP 역성장 전망
2025년 11월 말 기준으로 원·달러 환율은 약 1,470원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원화 가치는 약 5% 정도 떨어졌다. 그런데 IMF가 추정한 올해 한국의 명목 GDP를 보면 더 흥미로운 그림이 나온다.
달러 기준 명목 GDP: 1.86조 달러, 성장률 -0.9%
원화 기준 명목 GDP: 2,611조 원, 성장률 +2.1%
숫자만 놓고 보면, "원화 기준으론 성장했는데, 달러 기준으론 줄어든 나라"가 되어버린 것이다. 수출도 잘 되고, 반도체도 다시 호황이라는데, 환율은 여전히 1,400원대 후반을 맴돌고 있다.
따라서, 오늘은 이 이상한 풍경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먼저 "우리가 정확히 어디에 서 있는지"부터 짚어보자. 2025년 11월 말 기준, 원·달러 환율은 약 1,470원이다. 올해 평균 환율은 대략 1,417원, 1년 동안 최저 약 1,347원, 최고 약 1,488원 사이를 오르내렸다.
즉, 지금 환율은 1년 고점 근처, 평균보다 꽤 높은 구간에 와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여기에 "금리 차"라는 중요한 변수가 더해진다.
한국은행 기준금리: 연 2.50%
미 연준(Fed) 기준금리: 연 3.75 ~ 4.00%
은행 이자만 놓고 보면, 달러 자산이 원화 자산보다 훨씬 매력적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흐름이 생긴다.
전 세계 자금: "조금이라도 이자를 더 주는 곳(달러)"으로 이동
한국에서 번 돈조차: "달러로 바꿔서 들고 있을까?"라는 유혹 증가
결과적으로 원화를 팔고 달러를 사려는 수요가 상시적으로 생기고, 이게 환율을 1,400원대 중후반, 때로는 1,500원 근처까지 떠받치는 힘이 되는 것이다.
성장률 전망도 환율을 도와주지는 못하고 있다. IMF는 한국의 2025년 실질 성장률을 0.9%, 2026년에서야 1.8% 수준으로 회복될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성장은 약하고, 환율은 높고, 금리 차는 여전히 큰 3가지 요소가 지금 한국 외환시장의 기본 배경인 것이다.
불행하게도 여기에 하나가 더 얹힌다. 상장사 배당의 약 30%가 외국인 투자자 몫이라는 점이다. 배당을 해외로 송금할 때 달러를 사야 하니, 환율이 높을수록 기업의 달러 지출은 커지고, 이 역시 조용히 달러 수요를 높이는 환율 상방 압력이 되는 것이다.
정리하면, 지금의 환율 수준은 외환위기급의 초극단적인 위기는 아니지만, 한국 경제 펀더멘털에 비해 상당히 높은 구간, 그리고 단기간에 쉽게 꺾이기 어려운 구조에 있다고 보는 편이 현실적이다.
이번에는 IMF 기사가 말하는 "달러 기준 GDP -0.9% 역성장"을 살펴보자. 한국 경제를 보는 창은 일반적으로 두 개다.
원화 기준: 우리가 실제로 생활하고, 월급 받고, 물건을 사는 기준
달러 기준: 해외 투자자·신용평가사·국제기구가 보는 기준
IMF 추정에 따르면, 한국의 원화 기준 명목 GDP는 작년 2,557조 원 → 올해 2,611조 원, 약 2.1% 증가하였다. 하지만 달러 기준 명목 GDP는 작년 1조 8,754억 달러 → 올해 1조 8,586억 달러, 약 -0.9% 감소하였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간단한 예로 바꿔보자.
"한국"이라는 나라의 연봉: 2,000조 원이라고 가정
작년 환율: 1달러 = 1,300원
올해 환율: 1달러 = 1,450원 (원화 약세)
작년 달러 기준 연봉은 2,000조 원 ÷ 1,300원 ≒ 1조 5,385억 달러다. 올해 연봉이 3% 올라서 2,060조 원이 되었다고 해보자. 그런데 환율이 1,450원이면, 달러로는 2,060조 원 ÷ 1,450원 ≒ 1조 4,207억 달러로 나타난다. 원화로는 3% 올랐는데, 달러로는 오히려 줄어든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지금 한국이 딱 이런 구조다. 실질 성장률은 0.9% 정도로 플러스(+), 물가 상승까지 더하면 원화 기준 명목 GDP는 증가하였지만, 환율이 연평균 4% 이상 오른 탓에, 달러로 환산하면 증가분이 거의 사라지고 살짝 마이너스가 되는 그림이다. 그래서 이런 제목이 나오는 것이다.
"환율 급등에 한국 달러 GDP -0.9% 역성장"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하나다. "한국 경제가 실제로 줄어들었다"라기보다는, "환율 때문에 달러로 본 숫자가 작아 보인다"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러니 숫자만 보고 과도하게 공포에 휩싸일 필요도, 그렇다고 아무 일 아니라며 무시할 상황도 아닌 것이다. 즉, "환율이 통계를 어떻게 바꾸는가"를 이해하는 게 먼저다.
경제는 살아있는 생물이라고 하지만, 돈에 감정은 없다. 그저 조금이라도 이자를 더 많이 주는 곳으로 움직일 뿐이다.
미국 기준금리는 3.75% ~ 4.00%
한국 기준금리는 2.50%
이 정도면 달러 예금·달러 채권이 원화 자산보다 매력적이다. 따라서 외국인 투자자는 원화 자산을 줄여 달러 자산으로 이동하고, 한국 투자자들도 미국 주식과 채권으로 눈을 돌리는 흐름이 생긴다.
이 모든 움직임이 결국 "원화 → 달러"로 바꾸는 수요를 만들고, 달러 가격(환율)을 위로 밀어 올리게 된다.
요즘 한국의 개인, 기관, 연기금 모두 해외, 특히 미국 투자를 늘리고 있다. 미국 빅테크, 글로벌 ETF, 달러 채권 투자 등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여기에 더해, 반도체·배터리·전기차 기업들이 미국·유럽에 짓고 있는 공장들도 대부분 달러로 투자가 이뤄진다.
또 하나, 한국 상장사 배당의 약 30%가 외국인 투자자 몫이다. 이 배당금을 해외로 보내기 위해선 달러를 사야 한다.
즉, 개인·기관·연기금의 해외 투자, 기업의 해외 공장·M&A·기술료 지급, 그리고 한국 기업 이익을 달러로 보내는 배당 송금 등 이러한 3가지가 합쳐져,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상시 달러 유출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수출로 들어오는 달러보다, 투자와 배당으로 나가는 달러가 많아지는 순간, 환율은 쉽게 내려갈 수가 없다.
지금 세계 지도는 말 그대로 "불안의 지도"다.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중동 분쟁, 우크라이나 전쟁, 남중국해 갈등
미국과 중국의 관세·보조금·기술 제재
일본의 완화적 재정·통화 정책에 따른 엔화 약세
사람들은 불안할수록 "조금이라도 안전해 보이는 자산"을 찾는다. 과거에는 엔화도 안전자산 이미지가 강했지만, 지금은 일본이 과감한 완화 정책을 펴면서 엔화 가치가 크게 떨어졌다. 그리고 그 여파가 원·엔·위안 등 아시아 통화 전체의 약세 압력으로 돌아온다.
결과적으로 "지정학 리스크 상승 → 달러 선호 확대 → 아시아 통화 동반 약세"라는 연쇄작용이 나타나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심리도 가격을 만드는데 한몫한다. 오늘 환율이 1,470원인데 모두가 조만간 1,500원 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될까? 기업은 이렇게 행동하기 쉽다.
"앞으로 수입할 원자재·부품 값이 더 오르기 전에 달러를 미리 사 두자."
"수출해서 받은 달러, 서둘러 원화로 바꾸지 말고 조금 더 들고 있자."
이렇게 되면 시장에 나오는 달러 물량이 줄어들고, 달러가 더 귀해진다. 개인 투자자들도 비슷하다.
"지금이라도 달러 예금 늘려야 하나?"
"미국 주식 언제 사야 하지?"
이런 고민 자체가 달러 자산에 대한 관심과 수요를 키우고, 그 심리가 다시 환율 상방을 떠받치는 것이다.
마지막은 좀 더 긴 호흡의 이야기다. IMF는 한국에 대해 대략 이런 메시지를 던진다.
2025년 성장률 0.9%
2026년 1.8% 반등 예상
구조개혁 없이는 잠재성장률 추가 하락 가능성
해외 투자자 눈에는 이러한 상황들이 다음과 같이 읽힌다.
"한국은 기술력·수출 경쟁력은 좋은데, 인구는 줄고, 성장률은 낮고, 정치·정책 불확실성도 적지 않네."
그렇게 되면 장기투자보다는 단기 매매 중심의 자금 유입이 많아지고, 환율이 요동칠 때마다 빨리 빠져나가려는 움직임이 커질 수 있다. 즉,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의구심이 원화 약세 쪽으로 조용히 힘을 보태고 있는 셈이다.
환율의 "정확한 숫자"를 맞추는 건 아주 용한 점쟁이가 아닌 이상 누구도 할 수 없다. 그래서 더 현실적인 방법은 시나리오로 생각하는 것이다.
지금의 상황을 다시 정리해 보자.
원·달러 환율: 1,460~1,480원대 박스권
연준(Feb): 금리 인하를 시작했지만 여전히 3.75~4.00%
한국은행: 2.50%를 유지하며 환율·물가·부동산을 동시에 고민
단기적으로는 미국의 금리 인하 속도, 중동·우크라이나·미중 갈등 등 지정학 리스크, 그리고 한국의 수출·물가·성장 지표라는 세 가지에 따라 1,440~1,500원 사이를 널뛰기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 미국이 생각보다 빠르게 금리를 내리면, 달러 강세가 다소 풀리며 원화가 숨을 돌릴 수 있고, 반대로 지정학 불안과 미·중 갈등이 재격화되면, 시장은 다시 1,500원선을 시험할 수 있다.
IMF는 2026년 한국 성장률이 1.8% 정도로 반등할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중기적으로는 대략 두 가지 방향으로 예측할 수 있다.
긍정적 시나리오
미국 연준이 물가를 크게 자극하지 않는 범위에서 점진적으로 금리 인하
한국은 수출 회복 + 내수 개선으로 성장률 점진적 상승
규제 완화·혁신 투자 등 구조개혁 신호 가시화
이런 조합이라면, 원화는 지금 붙어 있는 “risk premium”을 조금씩 떼어내면서 1,300원대 후반 ~ 1,400원 초반까지 내려갈 여지가 있어 보인다.
부정적 시나리오
미·중 관세 전쟁과 통상 갈등 재점화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통상정책 지속
연준이 쉽게 금리를 못 내려 한·미 금리 차가 오래 유지
한국의 성장률 회복 지연 + 인구·부동산·가계부채 불안 확대
이 경우, 환율은 1,450원 ~ 1,500원 이하 구간에서 오래 머무를 수 있다. 최악의 상황에서는 1,500원 초반대를 찍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지금 시장은 이 두 가지 가능성이 뒤섞인, 말 그대로 "변동성이 큰 과도기"에 있다고 보는 편이 더 솔직한 진단이 될 것이다.
이제 가장 중요한 질문일 것이다. 그럼 기업과 투자자는 이 고환율 시대에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환율은 단순히 숫자가 아니라, 한국 경제의 구조와 기업 전략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래서 "달러가 비싸서 여행이 부담스럽다"는 수준을 넘어 회사 차원의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환율을 맞추려 들지 말고 선물환·옵션·환변동보험 등을 적극 활용하여 최대한 손실 폭을 제한하는 보험(환헤지)을 드는 것이다.
둘째, 달러로 벌고 달러로 쓰는 구조·통화 바스켓·법인 간 네팅 등으로 회사 구조 자체를 환율에 덜 흔들리게(자연헤지) 만드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셋째, 매출과 공급망을 미국·중국에만 의존하지 않고 아세안·인도·중동 등으로 넓히고, 계약서에 환율 연동·재협상 조항을 넣어 특정 국가·통화 리스크를 분산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주요 통화·원자재·금리·성장률 데이터를 한눈에 보는 대시보드를 만들고 CFO 중심의 환율 TF를 운영하여 "환율 10원 움직이면 우리 이익이 얼마나 변하는지"를 숫자로 관리하여야 한다.
지금 원·달러 환율 1,400원대 후반은, 단순히 "달러가 비싸서 해외여행 가기 부담스럽다"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한·미 금리 차, 해외투자·배당·해외 공장에 따른 상시 달러 유출, 지정학 리스크와 엔화 약세, 한국의 저성장·인구 감소·구조개혁 지연에 대한 불안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겹쳐 만들어낸 구조적 결과다. 그 결과, 원화 기준 경제는 성장했지만, 달러 기준 GDP는 -0.9% 역성장처럼 보이는 기묘한 통계가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구간을 “종말”이 아닌, 한국 경제와 기업 전략에 켜진 ‘경고등’이라고 보고 싶다. 환율이 높을수록 수출 가격 경쟁력이 좋아지는 면도 있고, 기술력과 브랜드력이 탄탄한 기업에게는 글로벌 점유율을 넓힐 기회가 되기도 하다.
결국 중요한 건 숫자 자체가 아니라, 그 숫자를 보고 우리 회사, 우리 경제가 어떤 전략을 수립하는지가 중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