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내기
어느 날 문득 긴 머리의 히피펌이 하고 싶어 졌다.
늘 단발머리를 유지했던지라, 긴 머리의 내가 궁금하기도 했고 뭔가 파격적인 도전을 해보고 싶기도 했다.
그렇게 꼬박 2년을 길러, 머리가 날개뼈 부근에 왔을 때 히피펌을 했다.
처음엔 파마머리의 내가 무척이나 어색했지만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
주변에서는 해그리드라고 놀리기도 했지만 오랜만에 한 긴 머리도, 히피펌도 마음에 쏙 들었다.
그래서 무더운 여름날에도 머리를 묶지 않고 구태여 풀고 다녔다.
머리카락은 무럭무럭 자라나서 겨우내 명치를 지나 허리까지 자랐다.
머리가 많이 무거워졌네-라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파마머리여서 머리를 잘 빗지 않아 머리가 안에서 자주 엉키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에 내 마음도 같이 엉겼나 보다.
어느 날부터 나는 무척이나 사는 게 힘겹다는 생각을 했다.
길고 길었던 올 겨울, 나에게는 많은 감정이 쌓여갔다.
후회, 미련, 우울 등 안 좋은 감정들이 나를 옥죄어와서 숨쉬기가 힘들 정도였다.
나름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꾹꾹 눌러놓고 숨겨놨던 감정들이 봄이 되자 자꾸만 밖으로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길 잃은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하지 못했다.
별 것 아닌 일도 크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긴 머리카락 뒤로 자꾸만 숨어드는 나를 발견한 어느 날,
나는 머리카락을 자르기로 했다.
단발로 싹둑-
주변에서는 다들 갑자기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이런 내 마음을 솔직하게 얘기할 수는 없어서 '그냥 봄이니까'라고 답했다.
가벼워진 머리만큼 내 감정도 가벼워지길 바란다.
안녕, 히피펌.
히피펌을 하고 나서 정말 많이 웃었고, 즐거웠다.
애꿎은 내 감정을 머리카락에 빗대었지만, 이렇게라도 비워내는 시도를 해본다.
비워낸 부분은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채우기로 했다.
내가 나를 사랑한다는 게 아직은 힘들지만, 나 스스로 중심을 잡는 연습을 해보려고 한다.
그렇게 또 힘을 내서 살아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