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전환

by 손진일

누구든지 자유가 소중한 인간의 권리임을 잘 안다. 그리고 그 자유를 찾고 간절하게 구해도 쉽지 않다는 사실을 역시 잘 안다. 빵보다 자유를 외쳤던 역사를 기억한다. 목숨을 건 투쟁이다.

자유에 관하여 생각을 하던 중 오랜만에 교회의 후배인 봉수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반갑게 담소를 나누다가 생각하던 자유란 무엇인가에 대한 그의 의견을 물었다. 생뚱맞은 질문에 쉽게 대답이 나올 성격의 테마가 아니길래 대충 노가리 수준의 이야기로 마무리 지었다. 사업에 바쁜 사람에게 한가한 노닥거리를 할 수가 없어서 적당히 끊었다. 이 벗은 행동이 뒷받침된 수재라 일반적인 수재의 개념과는 차이가 있다. 성경에서 자주 그리고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는 세리 출신이고 국세청의 요직을 거쳐 나와서 세무법인을 경영하는 후배다. 이 벗의 장점은 문제해결의 키를 찾는 능력이 뛰어났다는 점이다. 일하는 것 자체가 이 친구에게는 꽤 흥미로운 일종의 게임처럼 여겨지는 것은 아닌가 싶다. 빙긋이 웃는 모습이 마치 직장에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놀이터에서 노는 것처럼 보여 내심 부러워한다. 엄처시하의 삶에 순응하며 잘 산다. 한술 더하여 딸의 눈치도 잘 살피는 것 같다. 삶의 중심이 잡혀있는 후배다.

바쁜 후배에게 토론으로 긴 시간을 뺏기가 미안해서 끊었어도 이 자유의 콘셉트는 내 삶의 핵심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어려서부터 작금에 이르도록 평생 자유를 갈구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향으로 반항적 기질의 이단아로 보였고 선배들의 따가운 눈총도 꽤 많이 받았다. 간섭은 누구로부터도 받지 않으려는 건방진 놈을 어느 선배가 살갑게 대할까.

아무튼 자유라는 만질 수 없고 실체도 없는 개념에 매몰되어 헤매다가 비교적 어린 시절에 입산했다. 그러나 내재되어 있는 세상에 대한 속된 야망을 뿌리치지 못한 탓에 얼마 지나지 않아 하산하였다. 얼치기 땡고추였던 셈이다. 몇 달 후 대학에 입학하여 신입생 시절부터 요란하게 설치다가 선배들의 비위를 공공연하게 건드렸다. 그래 본들 내게 유익하지 않았지만. 당시 내 관점으로는 충고도 일종의 간섭으로 보았고 나의 고유한 자율성을 억압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옳고 그름을 떠나 내게 하는 말이 지시성의 어투 거나 의미로 들리면 바로 대항했다. 일종의 선제 방어였던 셈이다.

말도 되지 않는 궤변을 일삼아서 대인관계 특히 선배와의 관계가 남들보다 소원했고 심지어 교수님들에게도 대항하듯 따지고 설전을 벌이다가 수업 분위기를 망치는 바람에 교내에서 요주의 인물로 찍혔던 기억이 떠오른다. 모 철학 교수님은 그 학기 학점을 권총으로 채워 주셔서 졸업하는 학기에 간신히 학점을 채워서 겨우 졸업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랑 가깝게 지내던 어느 교수님은 내 별칭을 스포일드 차일드라고 지으셨다. 배린 자식이라 불렀다.

데모를 부지런히 한 까닭도 알고 보면 공권력에 대한 알 수 없는 반항 때문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자유를 바깥에서 찾으려 했고 조건이나 기타의 환경적 변수를 변화시키려고 했다. 내게는 세상은 조직과 조직의 치열한 싸움터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한 시각은 우리 세대 친구들 역시 비슷했지 나만 유별난 것은 아니라고 변명해 본다.

사상가들은 흔히 빈곤으로부터 자유 질병으로부터 자유를 부르짖는다. 억압으로부터 자유와는 좀 색다른 양상의 자유다. 재정의 자유는 개인 혹은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시도되어야 실천이 가능하다. 보통의 경우 일을 하며 재정적인 안정을 위해 일련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든가 아니면 특정의 부유한 국가의 국민으로 태어나야 한다.

질병으로부터 자유 역시 같은 맥락이다. 건강을 위해 일련의 활동이 없거나 관리를 소홀히 한다면 그런 자유는 그림의 떡이다.

이렇듯 외부에서 찾는 자유는 조건과 환경의 제한으로 사실상 힘들다는 생각을 노년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문득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 실린 덴마크의 국민 영웅 달가스가 외친 전쟁에서 패배하여 국토의 일부를 잃은 땅을 안에서 찾자 라는 말이 떠오른다. 당시에는 무슨 의미인지 깊은 생각은 하지 못하였지만 뭔가 울림은 있었기에 평생 잊지 않는 것 같다.

외부에서 구하는 자유는 끊임없이 다양한 도전을 받고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것이 현실적 문제다. 게다가 저마다 다른 유전인자와 개인의 복에 따라 조건도 달라지기 때문에 더 복잡하고 불투명한 결과가 나온다.

마침내 그 단초 혹은 새로운 길의 초입을 찾았다. 일종의 발상의 전환인 셈이다.

싫은 것을 싫어하지 않는 것도 자유다. 미운 것을 미워하지 않는 것도 자유다. 미신을 믿지 않는 것도 미혹에 빠지지 않는 것도 자유다. 조급하지 않으며 초조하지 않은 것도 자유의 실천이다. 상대가 무언가 해 주길 바라는 기대로부터 자유를 찾으며 그것들의 올가미에서 벗어나는 것이 자유다. 물질이나 건강은 상대적이며 내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완전한 자유는 아니었음을 늙어서야 깨달았다. 삶은 그냥 달리는 것이다. 가다가 쉬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진행하는 온 고우잉이다. 따라서 사이드 브레이크를 잡고 주행하지 말아야 제대로 달린다. 속도에 너무 과도하게 예민하지 말고 그저 등산을 즐기듯 삶의 식단을 차근차근 하나씩 관리하면 된다.

화내는 것으로부터도 자유 할 수 있다. 남이 내는 게 아니라 자신이 내기 때문에 굳이 낼 필요가 없다고 여기면 된다. 화내면서 에너지를 소모할 것은 아니다. 신경질 내는 것으로부터 탈출하여 자유하자. 고정관념과 도그마로부터 자유하자. 마음에 불편한 모든 것은 자유의 반대이며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억압한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환경이나 조건에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애를 써본들 쉬운 일은 아니더라. 거대한 깨달음의 충격이 있어야 하는데 이 역시 쉽지 않다. 은혜가 필요하다. 세상의 삶은 지극히 짧다는 팩트며 완전한 논리를 구성하기에 이성은 충분히 이해하고 납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선 곶감이라는 옛말과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속담처럼 현실의 조건에 영향 내지는 속박을 받는 것이 인생살이다. 그래서 다시 넘어지고 그때마다 은혜를 구한다. 자유는 은혜 없이 이 세상에서 결코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애씀으로 될 일이 아님을 성경에서 확실하게 밝혀준다.

I know how to be abased, and I know how to abound. Everywhere and in all things I have learned both to be full and to be hungry, both to abound and to suffer need.(빌립보서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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