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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풍 Sep 01. 2015

너에게

지금 와서 하는 얘기지만..

그때는 뭐가 그리 조급했을까?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될 일이었을 텐데..

내 믿음이 부족했던 탓이었을까


얼마 전 친구를 통해서 그의 취업소식을 들었다.

듣자마자 반가웠고, 흐뭇했다.

축하해주고 싶었다. 정말 고생 많았다고

악수라도 하면서-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지만..


 "그" 하면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내게 각인된 한 장면-




우리가 자주 가던 이자카야가 있었다.

그날도 잠깐 한잔 하자며 그곳을 갔다.

항상 바에 나란히 앉았다.

은은한 붉은 불빛, 앞에서는 숯불에 연기를 피우며

꼬치가 구워지고,

몇몇 테이블의 대화 소리가 뒤 섞여 조금은 산만한..

아사히 한잔에 꼬치 5종, 단골 메뉴였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다가, 조금씩 진지하게 앞으로의 계획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기억이 희미해서 뚜렷하진 않지만..)

미국을 가서 공부할 생각이 있는데 결혼해서

같이 가고 싶다고 했다.

.

.

.

덜컹-

기분이 참 묘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좀 막막하고 막연했다.

하지만 곧 정신은 가다듬어졌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를

나와 같이 하고 싶다는 말을 듣는데 감동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 진심 어린 눈빛이 기억난다.


난 그 순간이 잊히지 않는다.

그 생각만 하면 설렘에 미소 짓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그 순간이, 그 장면이 " 그 " 하면 떠오르는

가슴 아린 장면이 되어버렸다..




난 결혼을 하고 싶었다.

아니- 안정되고 싶었다.

옆에 있는 그를 다그쳐 보기도 하고 기다려도 봤다.

하지만 자기 자신이 불안정하다 생각하고 있는 상황에

다그쳐 봤자였다.

그때마다 어떤 확답도 줄 수 없었던 본인은 얼마나 더

답답할까..

마음으론 항상 그렇게 이해하면서 기다렸다.

하지만 그건  마음뿐이었다.

어렵게 돌려 돌려 언제 결혼할 생각이냐고 용기 내어

물어볼 때면 그의 답은 "가만히 잘 기다리고 있으면 내가

데려갈 거니까 딱 기다려!"

그럼 나는 "아- 그게 언제야~!"라고 한번 떼쓰지도 못하고 그냥 웃으며 넘어가기 일쑤였다.

-

이 전 연애에서 결혼 문제로 헤어지고 난 뒤에

내 연애의 시작은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이었다.

결혼할 생각이 있는지 확인하고 나서 만남을 시작하고

싶었다.

만나보지도 않고 어떻게 그 사람과 결혼을 생각할 수

있었겠냐만은

그 불안감과 불행을 또 이어갈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그때는 그랬다.

-

이런 내 생각을 말하지 않은 게 아니다.

처음 고백받은 날 말했다.

그런데 자기도 2-3년 안에  결혼할 생각이 있다면서 흔들리는 나를 잡아세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귀기 전에 무슨 말인들 못하겠느냐..)

그래서였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괜히 속은 느낌이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친구들의 결혼 소식이 하나 둘 들려오면서 조급해졌고,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과 또 헤어질까 봐 겁이 났다.

결혼 못해서 안달 난 여자처럼 보이는 나 자신이 싫었다.

그래서 더욱 안 그래 보이려고

한 번도 속시원히 말해 본 적도 없다.

'내가 너한테 분명히 말했잖아 결혼 생각 없으면 사귀지

말자고- 지금 나만 이게  뭐야!'라고-


결국, 터졌다.


그는 바빠지면서 나에게 소홀해졌고,

제풀에 꺾인 나는 2년 만에 그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내가 표현하는 만큼 받고 싶었고, 내가 보고 싶은 만큼

그도 나를 보고 싶어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더 이상 내가 그에게 반가운 존재가 되지 못한다면 옆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참 어렸구나.. 내가 많이 좋아하긴 했나 보다.)


얼굴 볼 시간도 없어서 난 메일로 이별을 통보했고,

그다음 날 네이트온으로 말을 걸어왔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예상대로 그는 내 일방적 통보를 받아들였고,

그동안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는 말과 고마웠다는 말..

잘 지내라는 말을 끝으로 안녕을 고하고

그렇게 이별했다.

그리도 허무하게 말이다.




8개월쯤 지났을까-

그와 내가 같이 알고 지내던 동생이 청첩장을 준다고

모임을 주선했다.

그런데 거기에 그도 나온다고 했다.

워낙 친하게 지냈던 모임이라 참석은 당연했다.

떨렸다.

친한 친구들에게 소식을 알렸다.

"너 걔가 다시 사귀자고 하면 어떻게 할 거야?"

"걔가 그럴 리가 없어. 예전에 그런 얘기 한번 한적 있거든- 누구라도 먼저 헤어지자고 하면 진짜 끝인 거니까 그런 말은 신중히 하자고 "

그럴리 없다는 생각이, 그럴 수도 있다겠는 기대를

애써 진정시켰다.


그가 왔다.

나는 차마 쳐다보지 못하고 곁눈질로

그의 옷자락만 보았다.

다행히 사람이 많아서 둘이 독대할 일은 없었다.

그렇게 얘기만 안 했지 서로를 의식하며

계속되는 긴장감을 갖고 자리를 같이했다.


분위기는 무르익어 자리를 한번 옮겼다.

다들 한잔씩 한 상태라서 알딸딸했다.

중간에 갈까 했는데 왠지 모를 기분이 나를 붙잡았다.


가게에 들어가 자리에 앉았는데

갑자기 그가 내 손목을 잡고 나가는 것이다.

사실 모임에 가기 전에는 나도 내심 기대를 했었지만

오늘 그의 태도를 보고  체념했던 터라 더욱 놀랐다.

그때의 이별은 끝이 아닌 서로를 더 애틋하게 만들어 준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서로 그 마음을 확인하고  우리는 다시 시작했다.






그 후로  3개월쯤 더 만났나-

우리가 헤어졌던 원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또 위기는 찾아왔다.

내가 오해를 했던 것일까, 좋은 감정이 앞서서 미처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일까..

이전과 같은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번에는 그가 나에게 이별을 말했다.

단호한 결심을 하고 온 듯한 표정이어서 잡지 않았다.

당분간은  결혼할 계획이 없다는 말로

나를 끊어 내 버렸다.

그 앞에서 나는 무슨말을 해야 할지 정리가 안됐고

머릿속에서만 맴돌고 입 밖으로 뱉지 못했다.

|

그럴 거면 왜 그때 만나자고 했어

단순히 감정만 앞서서 만나자고 한 거였어?

너 진짜 이기적이구나 그래- 끝내!

|

30분 정도 카페에 있다 나와서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잘 지내라는 말을 끝으로 서로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혼자 걸어가면서 서러움에 눈물이 폭발했다.

그래서 이런 마음을 한 껏 담아서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너무 감정적으로 써서 그런지 내용은 다 기억이 안 난다.)

다시는 연락하는 일 없을 거고 이 문자에 답장도하지 말라는 말로 끝냈다.

정말로 끝이 났다.   






지나고 나니 드는 생각-

그때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지금 우리는 행복했을까?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돌이켜보니 내가 너무 어른답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창피하기도 하다.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왜 좋아하는 사람을 지키지 못했을까?  

결국은 내가 그를 밀어낸 것 같다.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면

충분히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마음의 여유를 찾은 현재에서 웃으며 과거를 추억하는

일에 그칠 뿐-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으로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은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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