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배우고 돈을 익혔어야 했다.
노동 수익은 자본 수익을 능가할 수 없다.
1년의 노동보단 빵빵한 시드머니에서 나오는 불로소득이 더 값지고 의미있다.
제 아무리 노동이 숭고하니 어쩌니 하지만
그 숭고함의 가치는 매달 통장에 표시되는 그 소박함이다.
매번 쓸모를 증명하려고
정신건강과 하루 깨어있는 시간의 2/3을 헌납해봐야
그 월급은 인생의 수많은 가능성을 포기해버린 기회비용과 숭고한 시늉만 내는 노동의 액면가다.
돈은 돈이다. 가치 중립재라는 거다.
10년을 개같이 모아 1억을 만들었든,
야동 결제하려 교환했다 까먹어서 놔뒀던 3700원짜리 비트코인이 10년 뒤 1억원으로 증식했든
1억은 1억이다.
그 돈에 묻은 사연이 끽해야 본인과 가족을 제외하면
그 누구에게도 애틋하지도 가치 있지도 않다.
오히려 한 번의 운, 한 번의 바른 판단의 가치가
한 인간의 10년 보다 액면가로서 가치 있다는 거다.
적은 스트레스, 더 좋은 정신건강, 더 나은 처우, 더 나은 생활 수준.
다들 조물주 위에 건물주랬는데.
불로소득을 향유할 판단력과 여유는
천지창조의 신보다도 고평가 되는 건데.
지나간 시간이야 매몰비용이라지만
나는 돈을 보며 살겠다. 돈을 익히며 살겠다.
돈과 함께 일하고 돈을 추앙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