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튭 영상을 하나 보다가 잊고 살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대학시절, 교수님께선 웬 영상자료 하나를 5~10분 간 보여주셨다. 오래 전 기억이라 선잠에 들었을 때 꾸었던 꿈마냥, 그 영상이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조금도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어떤 굉장히 선하고 긍정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훌륭한 분에 대한 영상이었던가. 영상을 다 보여주신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느낀점을 말해보라고 하셨으나, 내가 경험한 대학은 대화와 토론의 장이라기보단 그냥 전달식이었다. 다들 대답 없이 침묵해서, 교수님이 가까이에 앉았던 내게 감상을 요구하셨던 것 같다.
"너무나 선하고 아름다워서 공감이 되질 않네요."
감상을 말해보라 해서 말했을 뿐이지, 딱히 누구를 웃길 의도는 전혀 아니었는데, 학우들 뿐 아니라 교수님까지도 빵 터지셨다. 공감인 건지 비웃음인 건지. 나의 솔직함은 늘 독이 든 성배니까 뭐.
오랜만에 착하고 편하고 따뜻한 음악이 듣고 싶어서 '소란'을 검색했다. 팬까진 아니고, 종종 생각나면 한 번씩 'to.'랑 '괜찮아'를 듣는데, 검색했더니 쇼츠에 소란의 보컬 고영배님이 본인들이 인기를 끌지 못한 이유에 대해 자기애와 위트를 넣어 분석한 영상이 있었다. 그의 대답에 나도 공감했다.
"소란의 노래에는 이별이 없다. 사랑의 찌질함, 애절함, 슬픔, 아픔 같은 것들이 없이 세련되기만 했다."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오래 전 기억이 갑자기 튀어나오더라. 자기연민, 자기혐오, 남탓, 질투, 상대적 박탈감.. 인간의 본질에서 아름다움으로만 가득찬 장면은 비록 아름답긴 하지만, 순수한 선의로만 이루어진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러니 내리 착하고 행복하기만 한 그의 음악에 쉽사리 공감하기 어려웠을지도.
조금 더 스크롤을 내려보니 내년부터 보컬 1인 체제가 된다고 한다. 4인조 밴드에서 밴드의 심장인 드럼이 나가더니, 이젠 밴드의 얼굴인 보컬만 남는다. 소란의 사랑 이야기에는 이별이 없이 착함만 있었지만, 결국 인간관계에는 어쩔 수 없는 이별의 슬픔과 씁쓸한 뒷맛이 있게 마련이다. 어쩐지 편안하고 행복한 기분으로 노래를 들을 수 없을 것 같아 유툽 어플을 껐다.
음악을 들으러 갔다가, 생뚱맞은 대학시절의 기억, 그리고 '라이프 오프 파이'가 떠올랐다. 신비한 우화를 들려주던 주인공에게 취재작가는 그것은 말도 안되고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러자 주인공은 매우 현실적이고 있을 법한 제2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당신이 어느 이야기를 믿든 그건 당신 몫이라고 한다. 작가는 첫 번째 이야기가 좋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내가 작가라면, 나는 두 번째 이야기를 믿었을 것 같다. 모든 의심을 접고 환상에 젖은 채 희망을 노래하는 재주는 내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