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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이라 속 취향 한 장면

사랑꾼을 위한 변명

by 리뇨

나는 미이라 시리즈 1,2를 좋아한다. 3부터는 안 봤다. 내게 있어서 미이라 시리즈의 정체성은 이모텝이라.


내 친구도 미이라 시리즈를 좋아해서 친구가 결혼하기 전까지는 서로의 자취방에 놀러 가서 그 영화를 몇 번이고 복습하곤 했다. 미이라2가 끝나고, 이모텝과 아낙수나문의 결말을 볼 때마다 이모텝의 마음이 너무 잘 느껴져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친구가 기겁을 했다.

"뭐? 너 그런 심정으로 이 영활 보고 있었어? 도대체 왜 악역 편을 드는 거야? 저 심술이 정상이야?"

https://youtu.be/8a58wxPZlD0?si=1imMkkLu9PBlpyMc

미이라2 이모텝과 아낙수나문의 결말

물론 주인공이 이브린과 남편이니 주인공에게 시선이 가고 그들을 응원해도, 이모텝은 너무나 매력적인 악역이다. 나였어도 이모텝과 똑같은 삶을 살았을 거라고 했다. 친구는 알고보니 내가 생각보다 더 무서운 여자였다며 질색했다.

"시대적 한계로 그 시절에 함께하지 못했다면, 그냥 환생한 세계에서 둘이서 알콩달콩 했으면 되는 이야기였잖아. 자기의 권력을 탐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키는 걸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어?"

이모텝을 위한 변명을 했다.

"아낙수나문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아름답고 고귀한 여자였어. 파라오의 연인으로 그 옆에 설 수 있을 만큼 아름답고, 능력있고, 강인한 여인이었지. 여자로서의 최고의 위치에 있었음에도, 자신을 사랑했단 이유 하나만으로 그 모든 것을 잃고 죽을 수 밖에 없던 여인이야. 수 천년을 건너 다시 만난 사랑하는 연인에게 자신 때문에 잃은 걸 만회해주고 싶은 건 당연하지. 그 때 가졌던 수준을 넘어서 세상을 다 쥐어주고 싶은 건 당연한 거 아냐? 자기가 그럴 능력이 있다면 더더욱. 이모텝은 그저 사랑 하나에 자신을 전부 걸 수 있었던 맹목적인 사랑꾼이었을 뿐인 걸."

친구는 끄덕거리다 말고 소리쳤다.

"그럴, 앗, 아냐! 악역에 서사 부여해서 합리화 하지 말라고!!"

이후 친구네 자취방에 놀러가서 다시 미이라 시리즈를 복습했다. 2가 끝나고 또 중얼거렸다.

"난 매번 왜 봐도봐도 이모텝이 이렇게 마음이 아프냐."

친구가 부정하지 않았다.

"어? 악역에 서사 부여해 합리화하지 말라더니 오늘은 그런 말 안하네?"

"생각해보니까 네 말이 맞더라고. 이모텝 입장에서 생각해보니까, 나였어도 이모텝 같은 선택을 했을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던 걸? 결국 나쁜 건 아낙수나문인가?"

"응? 왜? 불륜 때문에? 나도 할아버지 뻘 남편은 싫었을 것 같은데? 서로는 젊음과 권력을 맞교환한 거래인 거지 사랑으로 맺어진 부부는 아니었을 거잖아."

"말고. 결국 이모텝을 배신하잖아. 네 말대로 자길 향한 사랑 하나로 모든 걸 맹목적으로 바치려던 남잔데."

"응? 전혀 안 나쁜데? 이모텝이 맹목적일 수 있었던 건 이모텝은 수 천년 전 자아만 가지고 '부활'했기 때문이야. 현대에서 부활했을 뿐 정체성은 수천 년 전 사람이라고. 근데 아낙수나문은 아니잖아. 분명하게 소개하잖아. '저는 환생한 아낙수나문이에요.' 그랬더니 이모텝도, '육체만 그럴 뿐이지.' 하고 환생한 여자를 아낙수나문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아. 아낙수나문이 과거의 환영을 보고, 모든 기억을 찾은 뒤에야 서로 진심으로 키스를 나눈다고. 그럼 아낙수나문은 그냥 '전생을 기억하는 환생자'일 뿐이야. 그것도 사는 내내 전생을 기억하며 이모텝을 기다려온 여자가 아니라, 걍 평범하게 살다가 어느 날 자기가 환생한 아낙수나문이란 걸 알게 돼버린. 스무 해 넘게 현대인으로 살다 어느 날 별안간 수천 년 전 전생을 기억해냈다고 그게 내 정체성이 되나? 난 절대 아닐 것 같은데? 자, 상상해 봐, 먼 옛날 네가 흥분한 메머드에 받혀 죽을 뻔했는데, 널 사랑한 연인이었던 원시인이 널 밀어내고 대신 죽었어. 수천 년 전인데, 별안간 기억났어. 잠깐은 추억도 환기되고 좋겠지. 그 남자가 어느 날 네 앞에 나타나. 초특급 알파 메일이라 세상도 권력도 다 쥐어주겠대. 너무너무 좋았는데, 별안간 전재산 다 날리고 사채 썼다고 사채업자들에서 해방되게 도와달래. 모든 건 이제 네가 다 케어해야 해. 참고로 그 남자는 현대적인 지식도 하나 없다? 목숨 걸고 선뜻 달려가서 평생 함께할 수 있겠어? 4천년 전은 4천년 전이고 지금은 지금이지. 그때와 지금의 내가 다른데 어떻게 그때와 똑같은 선택을 할 수가 있어? 결국은 그냥 4천년 전 사랑이고, 결국은 그냥 4천년 전 인연이었던 거야. 별 수 없이 시절인연이었다는 거지. 부활한 이모텝의 정체성으론 알 수가 없었겠지만, 환생한 아낙수나문은 당연히 느끼지 않겠어?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결국 같을 수가 없다. 더구나 그 기억에 내가 저 남자로 인해 모든 걸 다 잃고 죽어버린 최종 기억까지 있다면 한 술 더 뜨겠지. 기억 찾았다고 수천 년 전 연인과 같은 사람이길 바란 건, 사랑에 매몰된 이모텝의 환상 어린 바람이었던 거고. 슬프고 허무하지만 뭐 어째. 이모텝도 그걸 깨달았으니까 모든 걸 체념하고 스스로 손을 놓아버리는 거 아니겠어."

친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넌 아무리봐도 도덕성이 어딘가 좀 어긋나있어."


ㅋㅋㅋㅋㅋ크게 부정하진 않는다. 그래도 뭐 살면서 착하게는 안 살았어도 크게 죄 짓고 산 것도 없잖아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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