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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상형은

버리면 버려지는 사람.

by 리뇨

예전에 이런 짤이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솔직히 공감을 안 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한국인 종특인지, 이상할 정도로 사랑에 목이 말랐다. 애정결핍도 민족성인 건지, 자신의 로맨스 뿐 아니라 친구의 로맨스에도, 심지어 일하러 만난 직장 후배들끼리도 접붙이지 못해 안달이 났다. 다소 괴이할 정도다. 남녀가 붙어있으면 아묻따 로맨스부터 떠올리고 의심한다. 나로서는 잘 이해는 안 간다. 서로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서로에게 빠져들기 위해서는 탁월한 외모나 매력, 혹은 함께 하며 서로 중첩된 추억을 쌓은 시간이 꽤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남녀가 눈만 마주쳐도 스파크가 튈 거라는 전제가 되어 있는 그 로맨스 필터가 놀라울 뿐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타인을 만나면 불편하다. 남자든 여자든 상관 없이. 나의 모난 점을 덜 보이고 싶을 뿐이다. 동성과도 친밀해지기까지 꽤나 많은 시간과 사연이 필요한 나로서는, 이성과 친밀함을 가장할 수는 있어도 진실로 친밀해지기란 무척이나 난이도가 높은 일이다. 다만 내면의 불편함을 외부로 표출하지 않을 정도의 사회화는 되어있다. 사실 가장된 친밀함에 더 잘 호응해주는 성별은 남성이다. 이건 내가 여성인 게 큰 요인일 수 있겠지만. 그런 이유로 남자가 싫지는 않다. 그냥 타인이라는 존재에게서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불편함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뿐이다.


어릴 적엔 매일이 특별한 날이길 기도하지만 나이가 들면 하루가 그저 평범하고 무난하길 바란단다. 자극이 짜릿함이 아닌 버거움으로 다가오는 시기. 마음도 겉가죽보다는 느리지만 분명하게 나이를 먹는다. 고등학생 땐 이상형을 적으라고 하면 A4 용지 넉 장 쯤은 거뜬히 채웠을 테지만, 이젠 그런 시시콜콜한 디테일까지 생각하기도 귀찮다. 그렇지만 여전히 내가 로맨스를 꿈꾼다면 잔가지는 다 쳐내고 한 문장을 남길 수 있겠다.


버리면 버려지는 사람.


사랑은 열정이다. 열정은 사실 분노에서 나온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이루어지지 않은 열정은 종종 분노로 치환된다. 연간 수만 건의 데이트 폭력이 발생하고, 한 주에 한 명의 여성이 살해당한다. 접수된 사건만 수만 건이니, 신고되지 않고 넘어간 사안까지 합치면 더 많을 지경이다. 가해자 나이도 일관성이 없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고딩부터, 7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치정의 유통기한이 놀라울 따름이다.


버려질 수 없고 남겨질 수 없다고 믿는 오만함은 결국 자신이 차라리 가해자로 남도록 선택하게 만든다. 가두고 때리고 강간하고 스토킹하고 죽여버린다. 정말이지 원초적인 해결책이다. 사랑은 감정이고, 그 감정은 언제고 끝나고 변할 수도 있다는 걸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라는 건 없는 걸까? 이별의 순간을 맞이하고 나서야 그 본성을 알게 된다는 것도 참 무섭다.


그나마 대안이라도 많거나, 잃을 게 많은 사람들은 그런 선택을 덜 하는 것 같다. 세상의 절반이 이성인데, 이 사람을 아끼고 보호할 것도 아니면서, 내 것이 아니면 부숴버리고 말겠다는 그 파괴적인 독점욕들이 무섭다. 연애 놀음 해보겠다고 시작한 감정 유희를 기어이 파국으로 치닫게 만드는 폭력성이 끔찍하다.


그래서 내 이상형은 버리면 버려지는 사람이다. 많은 것을 가졌기에 내가 굳이 아쉽지 않은 사람이든, 너무나 성숙해 관계의 끝에도 담담할 수 있는 사람이든. 하긴, 버릴 생각, 버려질 결심으로 시작하는 사랑은 없으려나? 나는 사랑과는 맞지 않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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