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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해 살아온 나에게 선물하고 싶은 삶

완성된 삶에서 자유로운 삶을 향해 가고 싶다.

by sandra

언제나 나는 내 자리에서 내 삶의 몫을 다하기 위해 애써왔다.

특별히 거창한 목표나 꿈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그저 나에게 맡겨진 일이라면 미루지 않고, 대충 하지 않고, 끝까지 책임지고 해내는 것, 그것이 내 삶의 방식이었다.

자식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며 자란다고들 한다.

부모의 삶의 태도는 오랜 세월 자식의 기억 속에 깊이 스며들며, 그들의 삶에 방식에 자연스레 영양을 미친다.

우리 집 마루 한편 벽에는 이승만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전두한 대통령의 표창장이 소중하게 걸려있었다.

그것은 공무원이셨던 아버지께서 생전에 아끼시던 물건들 중 하나였다.

아버지는 종종 그 표창장을 바라보며 "대통령 표창장이 한 개 만 있어도 사형을 감면받을 수 있다"라고 말씀하시곤 하셨다.

그 표창장은 수십 년의 성실함과 책임감이 담긴 아버지의 자랑이며 자부심이셨다.

또한 아버지는 너희들이 우등상을 받는 것보다 개근상을 받아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자주 강조하셨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 의미를 다 헤아리지 못했지만, 그 앞에 서 계시던 아버지의 모습은 지금도 또렷하게 떠오른다.

아버지의 삶을 지켜보며 자란 나는, 주어진 삶을 충실히 살아내는 것이 가장 단단한 대답이라고 믿었다.

성실함과 부지런함은 언제나 내 삶의 기준이었으며 어떤 일이든 맡겨지면 자연스레 깊이 빠져들었다.

어떤 사람은 그게 장점이라고 했고 , 남편은 항상 적당히! 적당히! 를 강조했다.


이민을 가며 나의 삶은 또 한 번의 전환점을 가져왔다.

낯선 언어와 문화 속에서 내 생전 처음으로 사업을 하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했고, 아이들 곁을 온전히 지켜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은 평생 마음 한편에 조용히 남아 있다.

아들을 유학 보낸 뒤, 일을 위해 미국에 머무를 때면 언제나 사업이 우선이었고, 아이에겐 된장찌개 한 번 제대로 끓여주지 못했고 함께 마트를 보고, 밥 한 끼 나누는 게 전부였다.

아이들은 종종 엄마는 일중독이라고 했고, 학교 친구들이 '너희 엄마, 정말 친엄마 맞아?"라고 물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웃어 넘기면서도 마음 한편이 아릿했다.

아이들도 부모의 뒷모습을 보며 자라 서였을까, 모두 잘 성장해 미국에서 학업을 마치고 자신의 길을 스스로 세웠고, 이제는 각자의 가정을 이루어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항상 열심히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은 내 가슴을 뿌듯하게 만들고 , 또 우리 부부는 아이들과 유난히 애틋한 정을 나누며 서로를 배려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5년 전 남편과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멈추지 않고 달려왔던 삶의 톱니가 비로소 멈춰 서며 많은 시간을 여유롭게 보내게 되었지만 , 내가 다져 놓았던 삶의 구조가 헐거워지는 허전함에 , 나는 여전히 여유롭고 느슨하게 살아가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가끔은 느슨하게 살아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몸이 먼저 긴장하고 마음이 불편해진다.

일손을 놓고, 아이들도 다 자라 떠난 지금, 나는 나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사는 게 맞았을까?

성실하다는 것만으로 충분했을까?

나는 삶에서 무엇을 놓쳤을까?

놓친 게 있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여유가 생긴 지금에서야 비로소 마음속으로 스며들어오는 것들이다.

그리고 나는 조금씩 깨닫는다.

내가 살아온 삶의 방식이 틀리지도 않았고, 후회하지도 않지만, 조금은 느슨하게 살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노자는 '무위의 삶'을 이야기했다.

억지로 하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흐르는 대로 살아가는 .

나는 평생을 무언가를 반드시 해야 하고, 책임을 다하며 끝까지 완성해야 한다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왔다.

그러니 이제는 조금 흘러가는 데로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지금부터는 삶을 조금 느슨하게 살아보고 싶다는 바람이 담긴 나에 고백일지도 모른다.

그건 나 자신을 사랑하는 또 다른 삶의 방식이며 최선을 다해 살아온 나에게 선물하고 싶은 삶이 아닐까 싶다.



* Espresso coffee와 함께하는 오늘의 브런치 *

바나나와 바닐라아이스크림의 만남, 그 위에 계핏가루가 살포시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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