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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금연지도원]이다.

법이 우리에게 준 권한과 책임, 금연지도원의 일상

by GOLDRAGON

"안녕하세요. 00시 금연지도원입니다. 선생님은 지금 금연구역에서 불법 흡연을 하셨습니다. 과태료 대상이시고, 신분증 확인이 필요합니다." 나 역시 신분증을 시민에게 제시하며 나의 신분을 밝힙니다.

익숙한 멘트를 꺼내던 어느 날, 본인의 신분증을 건넨 위반자가 나의 손에서 신분증을 낚아채더니 갑자기 전력질주.
우리는 경광봉을 들고 호루라기를 울리며 뒤쫓고,
행인을 밀치고 그는 무단횡단까지 불사하며 도망칩니다. 더 이상의 추격은 위반자와 우리 모두가 위험하다는 판단에 중단합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도주하는 모습에 동종범죄나 전과자 또는 지명수배자가 의심되어 지역 지구대에 인적사항을 인계하여 신원조회를 요청합니다.

영화 속 한 장면 같다고요?
아니요.
이건 금연지도원의 일상입니다.


우리는 '위촉직 공무원'입니다

'금연지도원'은 경찰도 아니고, 일반 공무원도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자체에서 법적 권한을 위임받은 '위촉직 공무원'입니다.
건강증진법과 지자체 조례에 따라 금연구역을 단속하고,
위반자에게 5만~10만 원의 과태료,
업소에는 최대 500만 원의 행정처분을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죠.

예전엔 경찰이 담당하던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단속의 실효성과 효율성 문제
흡연, 꽁초 투기, 불법흡연 같은 경범죄성행위는
행정 단속 중심의 건강증진법으로 이관되었고,
그 중심에 우리가 있게 된 겁니다.


단속 현장의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거칩니다

"그냥 담배 한 대 피운 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경찰도 아닌데 왜 나한테 이래요?"

"제발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

매일 듣는 말입니다.
가벼운 말싸움에서 욕설로,
심하면 밀침, 폭언, 협박으로까지 번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공적인 법 집행을 수행 중인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단속 중 신체를 밀치거나, 고의로 방해하거나, 폭행을 가할 경우
형법 제136조 공무집행방해죄가 적용됩니다.
→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

공무원 폭행 혐의로 현행범 체포된 사례도 실제로 존재합니다.
우리는 단순한 민간인이 아닙니다.
법이 부여한 권한과 보호를 동시에 가진 사람들입니다.


흡연자도, 죄인은 아닙니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약 930만 명의 성인 흡연자가 있습니다.
흡연은 합법적인 기호행위입니다.
다만, 그 행위가 다른 사람의 건강권과 환경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흡연자와 비흡연자 모두가 권리를 주장하는 사회,
이제는 서로의 선을 지키는 법적 질서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가장 마음이 아픈 순간은, 교복을 입은 아이들

가장 씁쓸한 장면은, 나역시 딸을 키우는 부모입장에서
교복을 입은 청소년들이 무리 지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마주할 때입니다.
그 모습에 놀란 시민들과 상인들이 민원을 넣고,
우리는 계도와 단속을 위해 다가갑니다.

"너희들, 어디 학교 몇 학년 몇 반이야."
"동작 그만. 아저씨가 뭐 하는 사람 같아?"

"저희 같은 애들 잡는 사람이여."

아이들이 툭툭 내뱉는 말에, 우리는 말문이 막힐 때도 많습니다.
요즘 같은 험한 세상엔 어른으로서 청소년에게 쓴소리 한마디 하기 어려운 분위기잖아요.
괜히 오해를 사거나, 되려 폭언을 듣고 험한 꼴을 당하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법이 준 권한을 가진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개입을 하고, 제지를 할 수 있습니다.

이 아이들을 반복적으로 마주하다 보면,
어느 날 "안녕하세요"라며 먼저 인사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제야 느낍니다.
우리는 단속을 넘어, 관계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요.


당신 곁에, 우리가 있습니다

가끔은 시민들이 묻습니다.
"담배 피울 데도 없는데, 왜 이렇게까지 단속해요?"

저희도 이해합니다.
흡연자의 입장도, 업주들의 어려움도, 아이들의 호기심도요.

하지만 우리는 믿습니다.
질서 있는 사회는 법이 아니라,
법을 지키려는 시민의식에서 시작된다는 것을요.

공중화장실, 학교 근처, 식당 입구, 병원 주차장...
우리의 눈에 들어오는 수많은 장면은 단순한 단속 대상이 아니라,
모두가 공존해야 할 공간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거리로 나갑니다

금연지도원은 감시자가 아닙니다.
법의 일부를 실천하는 시민의 얼굴입니다.
우리는 시민과 함께 법을 지키고,
그 법이 모두를 지켜주는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거리의 최전선에서,
당신 곁에서, 법과 사람 사이를 지키는 중입니다.

흡연자와 비흡연자 모두 상생하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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