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에 중독되는 심리

사랑이라는 이름의 도취

by ELOIA

사랑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어.



우리는 너무도 쉽게 이 말을 내뱉는다.
마치 사랑이 생존의 조건인 것처럼.

그런데 정말 그럴까?



우리가 필요한 것은 사랑 그 자체일까,
아니면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느끼는 감정들(설렘, 소속감, 인정, 욕망)에 중독되어 있는 걸까?


중독

로맨스 중독은 단순히 연애를 좋아하는 성향이 아니다.
그건 사랑이라는 감정에 의존적으로 몰입하고

관계가 없으면 '자신의 존재 의미'가 사라지는 듯한 정서적 공허를 말한다.



그들에게 사랑은 관계가 아니라 감정이다.
특히 썸이나 연애 초기의 강렬한 도파민 상태(심장이 뛰고, 세상이 달라지는 듯한 환상)에 중독된다.



그래서 관계가 안정기에 접어들면 그 사랑은 더 이상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 순간, 그들은 떠나거나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선다.
사랑이 아니라, 사랑에 취한 자기 자신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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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결핍

이런 중독의 근원에는 내면의 결핍이 있다.
어린 시절 안정적인 애착을 경험하지 못했거나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사랑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일수록

사랑을 자기 존재의 증명으로 삼는다.



누군가 나를 원하고 있다는 감정이
곧 나는 존재할 가치가 있다는 확신이 된다.



그래서 사랑이 식어가면, 그건 이별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소멸로 느껴진다.



그러나 그 갈망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사랑은 타인을 향한 것이 아니라 자기 공허를 덮기 위한 환상이기 때문이다.


내면의 이성 투사

로맨스 중독은 내면의 이상적인 이성상(애니마·애니무스)을 외부 인물에게 과도하게 투사하는 행위다.



우리는 상대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내 무의식이 그려낸 이상형을 그 위에 덧입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랑은 뜨겁고, 치명적이다.


상대는 실제의 인물이 아니라 내가 잃어버린 자아의 조각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관계초반에 '내가 이상화한 이미지'를 상대에게 투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이 투사가 강할수록 우리는 상대를 객관적으로 볼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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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에서 벗어나기

진짜 사랑은 환상이나 쾌락이 아니다.
그건 투사가 걷힌 뒤에도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능력은 먼저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할 때 생긴다.


로맨스에 중독된 사람은 사실 사랑자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사랑을 필요로 한다.



사랑은 우리를 성장시킨다.

하지만 그 사랑이 도피의 수단이 될 때 그건 더 이상 성장이 아니라 자기 상실의 늪이 된다.



진정한 로맨스를 원한다면 먼저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에서 벗어나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연습을 시작해야한다.


(나는 왜 관계없이 공허한가? 나는 왜 지금 이런 외로운 감정을 느낄까?

이 감정의 시작은 어디인가? 와 같은 내 감정 자체에 집중하는 연습.)



그 여정은 고통스럽고 낯설지 모르지만 결국 그 길 끝에서 우리는 온전한 자신을 마주하고 더 나은 관계를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