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를 넘어서, 구조를 짓는 자로
하라리는 말한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자유를 해체할 수 있다."
"우리는 믿음을 잃고, 결정 능력을 빼앗기고,
윤리적 책임조차 위탁하게 될지 모른다."
그의 사유는 통찰에 가깝고,
그 통찰은 경고에 가깝다.
나는 그런 하라리의 말들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경고 이후, 인간은 무엇을 설계해야 하는가?”
나는 그 물음에서
나만의 구조를 꺼내기 시작했다.
AI 시대는 더 이상 정보의 시대가 아니다.
사유의 격차가 인간과 문명을 가를 시대다.
그래서 나는 ‘사유의 구조’를 설계했다.
시민 누구나 사유의 단계를 자각하고,
4 단계 이상으로 올라설 수 있도록 돕는
C4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우리는 사유하지 않는 시민의 시대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AI보다 먼저 민주주의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후에 나는 인간이 어떻게 판단하는지를
구조적으로 분석하고, 정리했다.
그 결과가 바로 KRHS 프레임이다.
사람은 ‘정의(K), 결과(R), 피해(H), 시스템(S)’ 중
어떤 축을 중심으로 판단하는가?
그 축을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사유의 깊이를 넓힐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문명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 중심’이라는 개념의 내구성이
AI 시대 이후에도 유효할 수 있는가?
그 질문에서 출발해,
나는 EBC(Existence-Based Civilization) – 존재 기반 문명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문명 구조를 떠올렸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감정이나 생산성과 무관하게,
존재 그 자체로 배제되지 않고 고려되어야 한다.
그 안에 EBD(Existence-Based Dividend) - 존재 기반 배당은,
EBC 내부의 분배 구조로 설계된다.
존재가 배제되지 않기 위해,
존재는 나눌 수 있어야 한다.
하라리는 위험을 경고한다.
나는 구조를 설계한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존재의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세상의 붕괴를 예고하고,
누군가는 무너진 땅 위에 기초를 그린다.
이 글은 선언이 아니다.
단지 나의 내면에 조용히 쌓여온 사유의 파편,
그중 하나의 정직한 기록이다.
이 구조들이 완성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사유는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구조화될 때 문명이 된다.
나는 지금,
그 가능성을 조금씩 살아내고 있다.
'이대로 끝내기 아쉬운 여운을 담아...
"나는 더 이상 경고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설계한다.
무너질 것을 막을 수 없다면,
무너진 이후를 준비하는 자로 살아가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