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언어 예술이다."
- 강희근 시 <압천과 서시>에 매료되다
김미진
반세기 전 《연기 및 일기》(1966. 공보부 신인 예술상 수상작)를 통해 실험 시의 새로운 지평을 연 강희근 시인(1943년생. 동아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 박사). 《연기 및 일기》는 단순한 언어 실험이 아니라 리얼리즘과 서정성의 결합을 통해 모더니즘의 새로운 층위를 개척한 작품이다.
196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산에 가서》와 같은 자연의 언어를 넘어서, 그는 '연기'라는 개념으로 삶 자체를 예술의 무대로 확장시켰다.
그에게 '연기'는 단순한 표현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이 세상을 살아내는 방식, 인간이 인간과 더불어 존재하기 위한 수행이다. 그리고 '일기'는 그 연기를 일기로 받아 적겠다는 고백이다. 무의식의 세계를 통과하며 불현듯 떠오르는 언어의 조각들, 그것이 그의 시가 된다. 그는 이를 "순발력 있는 포착"이라 부른다.
그의 시는 상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정주류를 벗어나야 한다"는 믿음, 그리고 "내 몸 자체가 붓 끝이다"라는 확신이 그를 움직였다. 해체적이면서도 서정적인, 실험적이면서도 따뜻한 시. 그것이 강희근 시의 본질이다. "언어의 자갈들, 언어의 반짝임, 내 몸이 가르쳐준 대로." 그의 언어는 거칠면서도 아름다웠고, 무질서 속에서도 리듬이 있다.
지리산 산청 출신의 시골뜨기라고 자신을 표현하는 강희근 시인이 보여준 언어의 힘은, 모더니즘과 토속성의 조화를 이룬다. '진주 촉석루'에서 그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풍경"을 노래했다. 모더니즘의 한쪽 팔과 서정의 한쪽 팔이 맞닿은 그 경계의 시학, 그것이 강희근 문학의 근본이다.
가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한 그의 시 세계는 노년의 시학으로까지 확장된다. 노년은 그에게 고독의 시기가 아니라 자성과 이웃을 위한 사랑의 시간이다. "노년 그 자체를 수용하는 시인." 그의 시에는 '체험의 덩어리'가 있다. 진주교육대학교에서 제자들과 함께 '12 사도'라 부르며 오손도손 지내는 일상 속에서도, 그는 여전히 주변을 사랑하고 체험을 시로 승화시킨다. "인간의 가치는 체험이다. 살아있는 체험의 물레를 돌려야 한다."는 그의 말은, 교육자이자 시인으로서의 신념을 잘 드러낸다.
"주변을 사랑하는 마음, 그게 근본이다." 기술의 발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의 언어이다. "내 육신이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주겠다"는 그의 신앙적 고백은 곧 시의 태도였다.
그의 시는 인간의 고통과 구원, 현실과 초월의 경계를 넘나드는 언어의 다리이다. 가톨릭적 역사 인식 위에서 태어난 시는 물질과 영혼, 육체와 신성의 공존을 탐색한다. "모래처럼 감각적인 언어, 그것이 리듬이요 유희다." 그는 시를 하나의 모션(motion)으로 이해했고,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면 파장이 따라온다"고 말했다.
결국 강희근의 시는 '체험의 덩어리를 시의 덩어리로 옮겨 놓는 일'이다. 그 체험의 진실성이 그의 시를 움직였고, 그 체험의 온기가 독자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가 남긴 시의 길 위에서, 우리는 다시 묻는다. 시는 무엇인가? 그의 대답은 단순하고도 명확하다.
"시는 언어 예술이다. 그리고 언어는 살아있는 체험에서 피어난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