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우연한 기회로 20,30대 청년 몇 명과 함께 '나의 과거'에 대해 짧은 성찰의 글을 쓸 일이 있었다. 오랫동안 글쓰기를 쉰 탓일까, A4용지 한 장에서 두 장 정도의, 짧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길지도 않은 분량의 글을 쓰는 게 얼마나 힘들던지.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굴려가며, 온갖 오타와 비문으로 가득한 거친 초고를 간신히 완성했으나 문제는 이를 어떻게 퇴고하느냐였다. 이 글이 잘 쓴 글인지, 읽힐만한 것인지, 주어진 주제에 적합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 등이 감이 영 잡히지 않았다고나 할까. 그래서 나는 영감도 얻을 겸, 잠시 글쓰기를 쉬어갈 핑계도 얻을 겸 다른 사람들이 올린 초고들을 천천히 읽어보았다.
아직 초고 단계라서 그런 것일까? 내 글 못지않게 다른 사람들의 글 역시 정제되지 않은 표현과 날 것 그대로의 감정들을 여실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분명히 서툴고 손을 대야 할 부분도 많은 글들이었으나, 오히려 어떤 거짓이나 애써 잘해보려는 시도가 없다는 점에서, 작가의 진실된 감정과 마음이 묻어 나와 더 공감이 되고 몰입을 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나도 그렇지만 어쩜 다들 이렇게 온갖 고민과 걱정을 잔뜩 짊어진 채 지금까지 살아왔나 싶어서 마음 한 구석이 찡했다.
여러 글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유난히 신경 쓰이던 한 젊은 남성의 글이었다. 이십 대 후반의 나이로 보이는 그 남성은 첫 만남에서부터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항상 얼굴의 반을 가릴 정도로 커다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사람들의 시선을 피했다. 작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의 소유자였는데, 애초에 먼저 말을 꺼내는 일도 거의 없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잔뜩 위축이 되어 있어서, 그 작고 왜소한 체구를 움츠리며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못 쳐다보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나 역시 우울증으로 인한 자기혐오와 타인에 대한 공포를 느껴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남성의 심리 상태가 어떤지 짐작이 갔으니, 안타까운 마음에 말이라도 걸어볼까 고민했다. 그러나 갑자기 내가 말을 거는 게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킬까 봐 그러지는 못했으니,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의 글을 통해 이 남성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 간접적으로나마 들어보는 게 전부였다.
글을 읽으면서 나는 마음이 착잡해졌다. A4 용지 두 장이라는 분량은 그의 고통을 담아내기엔 너무나도 모자랐는지, 그는 여섯 장이 넘는 분량의 글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있었다. 그가 겪은 유년기의 고통, 학대, 슬픔 그리고 우울이 섬세하면서도 생각해보지 못한 표현을 통해 날카롭게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남성은 뾰족하기 짝이 없는 사나운 고슴도치를 마음속에 품고 살았으며, 죽음을 결심한 경험이 있으며, 자신을 상처 입힌 세상에 대해 극도의 두려움을 품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이 우울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려고 열심히 버둥거리고 있었다.
그의 글을 내려놓으면서 나는 생각에 빠졌다. 글 속 한탄하듯 던져내는 감정들이 무척이나 공감이 되었고, 결국 그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을 버리지 않고 이렇게 버텨준 점이 대견했다. 한편으론 나도 이렇게 끝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우울하고 자기 파괴적인 기간이 분명 있었는데, 왜 지금은 그때의 기분과 상태가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지 의문이 들었다. 오랜 기간의 정신과 치료, 상담 그리고 자기 수행(?) 덕분에 호전되면서 과거의 괴로움은 다 까먹어버린 걸까? 아니면 뇌의 용량이 다 차서 옛 기억을 지워 버린 것일지도.
과거의 내 마음속 어둠(?)의 기운을 잊은 탓인지, 내 초고의 내용과 무게감은 남성의 그것에 비하면 한 없이 가볍고 펄럭이는 것에 불과한 것처럼 보였다. 나 역시 초고에는 내가 이렇게 힘들고 어려웠다고 징징댔지만, 나의 삶을 괴롭혔던 우울감은 이 사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경험일지 모른다. 그리고 여기에 생각이 이르는 순간 갑자기,
정말로
두려운
생각이
떠올랐다.
'뭐야. 나는 내가 우울증에서 살아남았다고 자부하고 그 점에 감사하며 이 경험을 글로 쓰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내 이야기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잖아. 이 세상엔 나보다 더 힘들었던 사람도 있으니까. 별다른 거 없는 내 삶에서 그나마 글감이라고 할 만한 것을 찾았는데 역시 착각일 뿐이었어. 다른 사람에 비하면 하찮은 소재일 뿐이지.'
이런 무서운 이야기를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리며 기분이 가라앉으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파워풀하고, 패기 넘치는 또 다른 목소리가 소리쳤다.
'어디서 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왜 다른 사람의 고통과 우울을 네 것이랑 비교하고 있어? 그건 정량적으로 평가되는 항목이 아니야! 그 사람이 힘든 건 그쪽 사정이고, 너는 너대로 정말 괴롭고 어려운 시간을 보냈잖아. 너도 결코 쉽게 살지 않았다고. 우울의 질을 서로 비교할 수 있다거나, 더 우울하고 힘든 일을 겪은 사람만이 그것에 대해서 논하고 글을 쓸 자격이 있다는 것은 더 말도 안 되는 헛소리야! 그러니까 네 우울의 경험마저 남의 것과 비교하면서 평가절하하지 말라고. 알았지?!!'
아니 세상에 도대체 이런 기특한 나 자신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나도 정말 놀랍다. 오래간만에 마신 커피가 제대로 각성 효과를 불러일으킨 건가? 덕분에 마음은 가벼워졌고 새삼스럽게 깨달음을 얻었으니 기분은 좋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얼마나 자주 남과 나를 비교했단 말인가! 심지어 비교할 것이 아닌 것에 대해서도 비교를 하고 있었으니, 내가 남보다 더 행복하거나 대단하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하는 걸 넘어, 이제는 남보다 내가 더 우울하지 않으면 어떡하느냐를 신경 쓰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며 동시에 가장 불행해야 하니,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이상한 생각 속에 빠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글을 쓰는 게 행복하지 않은 것이었다. 내가 끝없이 나와 남을 비교하는 이상 절대로 만족에는 도달할 수 없으니까.
(갑자기 드는 생각이 나 한 명만 비교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 남편, 친정, 심지어 강아지까지 다른 이들 혹은 댕댕이들과 비교하는 식으로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휴 그러면 안돼, 절대로!)
오늘 글의 브런치 커버 (?) 이미지 속 대사가 지금 딱 내 심정이다. 나 정도의 우울함으로 글을 써도 되는가 라는 고민은 얼마나 쓰레기 같은 고민이었단 말인가. 이런 식으로 우울함을 자초할 바엔 그냥 행복하게 쓰고 싶은 거 쓰고 나도 정말 힘들게 잘 살아왔다고 응원해 주면서 사는 게 훨씬 건전한 일이다. 그러니까 비교하지 말자, 나 자신아.
후, 개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