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능력자들
금요일 오후 교정은 평화롭다. 뒤쪽 주차장에서 시작해 울타리 따라 조성된 산책로를 걸었다. 수선화, 원추리가 단단한 흙을 들어 올리고 뾰족뾰족 연두 머리를 내밀었다. 흙이 헐거워졌다. 봄이다!
2년 전 학교숲에 식재한 꽃과 나무가 잘 자라고 있는지 살폈다. 방향이 돌아간 표찰은 반듯하게 다시 꽂았다.
“박 교장, 너무 쳐다봐서 이 아이들이 부담스러울 것 같아.”
동기 교장이 우리 학교를 방문했을 때 말했다. 그 생각은 못했는데 식물도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반 바퀴 돌아서 유치원 앞 화단을 지나가고 있었다. 여자 친구가 창문으로 나를 보며 손을 흔든다. 해맑은 아이다.
‘아빠는 하늘나라에 있어.’
유치원에 등록하고 다음 날 슬픈 소식을 들었다. 챙겨주는 친척과 지인이 있어 다행이었다. 사랑스럽게 컸고 유치원에서 잘 지내고 있다.
입학식 날, 저쪽 끝에서 도서실 앞까지 막 뛰어와 나한테 안겼다. ‘내가 누구인지는 알까?’ 순식간에 생긴 일이라 당황스러웠지만 아이가 얼어붙은 내 마음을 녹여주었다. 나도 모르게 안아주었다. 옆에 있던 교감선생님한테 가서도 안겼다. ‘교감선생님은 처음 보았을 텐데.’ 요즘은 경계를 존중하고 안전거리를 지키라고 교육한다. 학생들을 안아주지 못해서 고민이다.
통학버스에서 내리면 살가운 1, 2학년 여학생들은 와서 안긴다. 두 팔로 꼭 안아주기는 그렇고 차렷 하기도 좀 그렇다. 내 어정쩡한 자세라니? 아이들은 누가 사랑하는지 본능적으로 안다. 반갑게 와서 안겨도 차렷하고 있으면 다음 날부터 가슴에 와서 탁 치듯이 닿고 그냥 간다. 살짝 긴장을 풀고 있으며 머리를 넣고 폭 안긴다. 그리고 내 곰돌이 핸드폰 케이스를 만지작거리다가 어느덧 손도 만지며 시원하다고 좋아한다.
곰살맞은 아이에 끌려 유치원에 들어갔다. 동건이가 다가와 느닷없이 말했다.
"안 웃어봐요."
난 못 알아들었다.
"왜 맨날 웃어요?"
이제 앞에서 한 말을 이해했다. 그 순간 훅 들어왔다.
"눈 좀 떠봐요.
순간 유치원 선생님과 서로 쳐다보며 엄청 크게 웃었다.
'아이 부끄러워라. 난 눈이 작아서 이런 말 듣는 것이 살짝 싫단 말이야.‘
"원장선생님 이제 안 올 거야."
"아~~ 또 와요."
"예쁘다고 하면 올 거야"
“벌써 예쁜데.”
벌써 예쁘다는 말 들어본 적 있나요? 몸을 감고 도는 따뜻한 바람 같이 설렌다. 둘째 딸은 내 남자친구도 그런 말 안 한다고 하였다.
오늘도 등교맞이를 했다. 45인승 통학버스 문이 열리면 봇물 터지듯 가장 먼저 동건이 남매가 내린다. 만화영화 ‘꼬마 펭귄 핑구’에서 핑구네 옷장 문이 열리면 옷이 와르르 쏟아지는 그 느낌으로 내린다. 동건이 누나는 말괄량이 삐삐 같다. 갸름한 얼굴에 양갈래로 땋은 머리를 하고 온다. 화장실에서 벌레 있다고 우는 친구를 위해 당차게 문을 열어준다. 한 치의 거침이 없다.
“벌레 아냐. 이제 들어가도 돼.”
이 남매를 보면 하루 힐링된다. 아이들은 이렇게 커야 하는데.
동건이는 가방끈을 한 손으로 들고 나오며 힘차게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동건이 유치원 어때?”
“조금 시시해요.”
“왜?”
“축구도 하고 태권도도 하고 싶어요.”
시설주무관이 장마에 대비해 배수로 덮개를 들어 올려 수로에 쌓인 흙을 걷어내고 있었다. 동건이가 가던 걸음을 멈추고 주무관을 쳐다보았다. 젊고 친절한 주무관은 유치원에서 인기가 단연 많다.
“동건이 주무관님 좋아하는구나!”
“네. 교장선생님도 좋아해요.”
이 당당한 목소리가 또 설레게 한다. 7세 유치원 아이인데 대화가 아주 잘 된다. 동건이 사회성이 우수한 건지 유아 발달 단계에 맞게 내가 대화를 잘 한 건지 모르겠지만 하루를 활기차게 시작하였다.
동건이는 은색 목걸이를 하고 조거체육복 바지를 입고 왔다. 혼자서도 씩씩하게 유치원으로 걸어간다. 가방 끈 끄트머리를 잡고 오른손으로 가방을 돌린다. 가방은 허공에서 여러 차례 큰 원을 만들다가 가차 없이 내동댕이쳐졌다. 다시 주워서 몇 번 더 돌리다가 한쪽 어깨에 철썩 멨다. 가방을 양쪽 어깨로 얌전히 메고 가는 것은 다른 아이들 이야기다. 유치원 가방 안에 든 것도 없을 텐데 끈으로 드니 몸체가 쳐졌다. 닥스 체크무늬 가방의 품위는 어디로 갔나?
저만큼 가다가 뒤돌아보며 소리쳤다.
“잔디 밟고 지나가도 돼요?”
잠시 망설였다. 지금은 잔디 생육기간이라 20일 동안 잔디운동장에서 놀지 못하게 하고 있다. ‘유아 한 명이 잔디 밟는다고 자라는데 큰 영향은 없겠지?’
“응.”
“그럼 여기로 지나가도 돼요?”
잔디 정원에 4개의 사각트레이가 있다. 그 작은 화단에 자주색 꽃이 막 피어나기 시작했다.
“아 그것은 꽃잔디야. 이것은 잔디, 이것은 꽃이 피어서 꽃잔디. 밟으면 꽃이 아파해.”
잔디밭 앞뒤로 보도블록도 있지만 동건이는 잔디밭을 가로질러 갔다.
급식을 마치고 여럿이 봄맞이 산책을 하였다. 목련 봉오리가 생겼을 때 추위가 와서 끝부분이 갈색으로 얼었다. 날마다 조금씩 피는 것인지 지는 것인지 구별되지 않았다. 며칠 지나니 따스한 햇살에 다시 힘을 내서 꽃이 활짝 폈다. 갈색보다 흰색이 더 많아져 울타리 주변이 등대처럼 환하다. 하루 예쁘게 환하더니 며칠 흩날리며 떨어진다. 유치원 친구들은 누가 꽃잎을 더 많이 줍나 대결하였다.
“선생님들~~”
동건이가 앞에 가는 우리를 부른다. 이 독특한 언어라니. 어르신이 부르는 것 같다. 동건이는 하얀 목련 꽃잎 한 장을 나한테 정성스럽게 건넸다. 교감선생님한테도 선물처럼 한 장 주었다. 우리는 소중한 선물 고맙다고 하였다.
늘봄강사가 수업을 마치고 짐을 끌고 지나갔다.
“어 여행 간다. 나도 캐리어 끌고 여행 갔는데.”
“어디 갔었어?”
“일본요.”
“일본 말고 또 어디 갔었어?”
“아직은 일본 말고 못 갔어요. 중국은 태풍 온다고 했는데.”
와, 동건이 만세다.
잔디광장에 다다랐다. 뒤따라오던 유아 여섯 명이 평상에 올라가서 춤을 추었다. 선생님은 핸드폰으로 음악을 틀고 노래를 불러주었다.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웃지도 말고 울지도 말고 움직이지 마.’ 동건이가 얼마나 힘차게 뛰는지 다른 아이들도 덩달아 신났다. 지나가는 우리도 관광버스를 타고 여행 가는 것처럼 흥얼거리며 몸을 들썩거렸다.
“아싸. 잘한다!”
평상 옆에는 기다란 강아지 나무 의자 두 개가 마주 보고 있다. 춤을 다 춘 아이들은 그 노랑이 의자에 시소처럼 올라탔다. 선생님도 맨 뒤에 탔다. 따뜻한 봄 햇살도 함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