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더라.

1. 20살의 5월,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by 디아

"우울증입니다."


정신과에서 받은 내 진단명이다. 순간 믿기지 않았다.

'내가 우울증이라고? 말도 안 돼.'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동안 20년의 삶을 되돌아보았다. 문뜩, 한 가지의 일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중학교 1학년이 되던 해의 겨울, 유독 춥고 바람이 불었다. 정확히 기억나는 1월 21일. 그날은 초등학교 마지막 겨울방학 개학식 날이었다. 친구들과 신나게 점심을 먹고 올라가는 계단에서 중학교 2학년인 우리 오빠를 만났다. 목에는 방문증을 걸고 있고 행동과 말투는 어딘가 다급해 보였다.


"야, 빨리 가방 가지고 나와."


내 심장이 쿵하고 떨어졌다. 아, 무슨 일이 생겼구나. 나는 친구들과 선생님께 말할 정신도 없이 홀린 듯 가방을 챙겨 할머니와 오빠와 함께 택시에 올라탔다.


"00 병원으로 가주세요."


그 순간, 내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이제야 실감이 났다. 손발이 떨리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너무 큰 충격을 받으면 감정이 무감각 해진다는 것이 사실인 걸 그 순간 깨달았다.


병원 중환자실. 아빠와 삼촌들, 외할아버지. 모두 눈이 빨갛게 부어올랐다. 우리를 본 아빠가 말했다.


"얘들아, 엄마가 돌아가셨어."


그렇게 1월 21일은 우리 엄마의 기일이 되었다.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니, 받아들이기 싫었다. 고작 14살인 내가 앞으로 엄마가 없이 살아야 한다니. 믿을 수 없었다. 우리 엄마는 오랫동안 아팠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일 때부터 4년의 투병생활 끝에 돌아가셨다. 나중에 들었는데 위암이셨다고 한다.


돌아가신 엄마를 보자마자 무서웠다. 흰 천에 감싸여있는 뼈밖에 없는 엄마의 모습. 이틀 전 마지막 인사를 할 때와 똑같은 모습이지만 어딘가 푸른 기운이 몸을 감싸고 있었다. 옆으로 천천히 다가가 의자에 앉아 엄마를 보며 말했다.


"왜 사람은 지나가고 나서 후회를 하는 걸까요. 있을 때 더 잘할걸, 엄마 힘들게 하지 말걸... 사랑해요, 엄마."


이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14살이 감당하기에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으니까. 가만히 엄마의 모습을 바라봤다. 그동안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던 모습, 병실에 누워 내 손을 꼭 잡았던 온기, 구급차에 실려가는 엄마의 모습. 끝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모든 가족들이 일상생활로 돌아갔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가 슬퍼하면 우리 가족이 다 슬퍼할 테니까. 아마, 서로를 배려하는 최선의 방법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선택이 앞으로의 나에게 아주 큰 영향을 주는지 몰랐다.


그로부터 7년 즈음 지났을까, 난 시간이 흘러 극복한 줄 알았다. 나는 현재 재수생이다. 그것도 연극영화과 재수생. 당연하게도 연기를 해야 하는 사람이다. 연기라 함은, 감정을 다루는 행위이다. 그렇다면 내 마음 안에 있는 감정을 꺼내서 적절하게 사용해야 하는데 이 순간에 문제가 발생했다.


7년 전 사건 이후, 나는 부정적인 감정을 모두 눌러왔다. 슬퍼도 무시하고, 외로워도 무시하고. 오로지 행복과 즐거움, 도파민을 위해 살아왔다. 그렇게 여러 감정을 잠그고 살다 보니 연기할 때마다 쓰나미처럼 흘러나오는 것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나 자신이 밉고 무기력해지며 입시에 집중할 수 없었다.


어느 날 나의 연기 선생님께서 정신과를 가보는 것을 추천하셨다. 선생님도 과거에 우울증을 겪었는데 비슷한 증상인 것 같다며 나에게 권유하셨다. 나도 요즘 나의 상태가 답답했기에 얼른 치료를 하고 싶은 마음에 정신과를 방문했다.


그렇게 나는 20살의 5월,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앞으로의 삶이 막막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