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서론: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창조와 순환, 두 개의 거대한 서사

by 이호창

제1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 우주론 비교


서장: 창조와 순환, 두 개의 거대한 서사


인간이 자신의 의식을 인식한 이래로,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을 올려다보며 던졌을 가장 오래되고 근원적인 질문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빛나는 저 질서정연한 천체의 운행, 예측할 수 없이 몰아치는 대자연의 위력, 그리고 그 안에서 기쁨과 슬픔을 느끼며 살아가는 '나'라는 존재의 불가사의함은, 인류로 하여금 이 세계의 기원과 본질에 대한 거대한 이야기를 상상하고 탐구하도록 이끌어왔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단순히 지적인 호기심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삶의 의미를 정초하고, 고통의 이유를 이해하며, 궁극적인 구원의 길을 설정하는 모든 정신 활동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인류가 수천 년에 걸쳐 쌓아 올린 수많은 신화와 종교, 그리고 철학의 복잡한 지도들을 펼쳐보면, 우리는 이 근원적 질문에 대한 대답이 크게 두 개의 거대한 서사, 즉 '창조(Creation)'의 이야기와 '순환(Cyclicity)'의 이야기로 나뉘어 흐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 번째 서사인 '창조'의 이야기는 우주를 하나의 의도된 결과물로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세계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바깥에 존재하는 어떤 초월적 실재의 의지적인 행위를 통해 비로소 존재하게 된 피조물입니다. 마치 위대한 예술가가 하나의 청사진을 바탕으로 대리석을 깎아 조각상을 만들거나, 물감을 캔버스에 칠해 그림을 완성하듯이, 우주는 신성한 창조주의 계획과 목적 아래 빚어진 하나의 정교한 '작품'과 같습니다. 이 서사의 가장 큰 특징은 시간이 한 방향으로 흐르는 직선적 구조를 가진다는 점입니다. 여기에는 명확한 시작, 즉 '태초'가 있으며, 창조주의 계획이 펼쳐지는 '역사'라는 과정이 있고, 궁극적으로는 모든 것이 완성되거나 심판받는 '마지막 날', 즉 종말론(Eschaton)이 존재합니다. 시간은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시작과 끝이 있는 하나의 의미 있는 이야기이며, 인간은 그 이야기 속에서 특정한 역할을 부여받은 배우와 같습니다. 또한 이 관점에서는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근본적인 단절, 즉 초월성이 강조됩니다. 신은 세계 '안에'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너머에' 존재하며, 인간과 세계는 그 신의 권능 아래에 놓인 존재가 됩니다. 이러한 창조 서사는 서아시아의 사막에서 피어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과 같은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들에서 가장 강력하고 명료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그들에게 우주의 존재 이유는 창조주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며, 인간의 삶의 목적은 그 창조주의 뜻을 따르고 그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됩니다.


두 번째 서사인 '순환'의 이야기는 우주를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살아 숨 쉬는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이 관점에서 세계는 외부의 어떤 존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내재적인 법칙에 따라 스스로 그러하게(自然) 생성하고 소멸하는 과정을 영원히 반복하는 거대한 생명체와 같습니다. 마치 한 그루의 나무가 봄에 싹을 틔우고 여름에 무성해졌다가 가을에 잎을 떨구고 겨울에 죽은 듯이 있다가 다시 봄이 오면 새로운 생명을 피워내듯이, 우주 또한 시작과 끝을 규정할 수 없는 거대한 순환의 리듬 속에 있습니다. 이 서사의 가장 큰 특징은 시간이 원형의 구조를 가진다는 점입니다. 인도 철학에서 말하는, 우주가 나타나고 사라지는 수십억 년 단위의 거대한 주기인 만반타라(Manvantara)와 프랄라야(Pralaya)의 개념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여기에는 절대적인 시작점이나 최종적인 종말이 없으며, 오직 영원한 생성과 소멸의 춤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 관점에서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구분이 무의미해지며, 신성(神性)의 내재성이 강조됩니다. 궁극적 실재는 세계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존재 속에, 그리고 세계의 모든 현상 그 자체 속에 깃들어 있습니다. 우주는 분리된 신의 작품이 아니라, 신성 그 자체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과정입니다. 이러한 순환 서사는 주로 인도를 비롯한 동양의 사상, 특히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등에서 그 깊이를 더해왔습니다. 그들에게 세계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다기보다는, 카르마(karma)라는 인과의 법칙이나 다르마(Dharma)라는 우주적 질서에 따라 기계적으로, 혹은 신의 유희(Lila)처럼 펼쳐지는 현상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과제는 이 순환의 고리, 즉 삼사라(Samsara)의 본질을 깨닫고 그로부터 궁극적으로 벗어나는 것이 됩니다.


이 두 개의 거대한 서사는 단순히 우주를 설명하는 방식의 차이를 넘어, 인간의 심리와 삶의 태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창조의 서사 속에서 인간은 종종 신의 모상(imago Dei)으로서 특별한 존엄성을 부여받지만, 동시에 원죄라는 근원적인 부채감과 신과의 단절이라는 실존적 고독감을 안고 살아가게 됩니다. 역사는 구원을 향한 희망의 무대가 되지만, 그만큼 심판에 대한 두려움의 장이 되기도 합니다. 반면, 순환의 서사 속에서 인간은 우주의 모든 존재와 연결되어 있다는 깊은 유대감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지만, 동시에 끝없이 반복되는 무의미한 윤회의 수레바퀴에 대한 권태와 허무감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시간은 구원의 약속이 아니라 벗어나야 할 굴레가 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문제는, 곧 인간이 자기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류의 모든 지혜가 이 두 가지 서사로 명확하게 양분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전통들은 이 양 극단 사이에서 두 가지 서사를 종합하려 하거나, 혹은 이분법 자체를 넘어서는 제3의 길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서양의 헤르메스주의에서 말하는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라는 원리는, 초월적인 상위 세계와 내재적인 하위 세계 사이의 조화로운 상응을 이야기하며 창조와 순환의 이분법을 가로지릅니다. 또한, 한국의 고유 사상인 천부경(天符經)은 이 문제에 대해 놀랍도록 심오한 통찰을 보여줍니다. 천부경의 첫 구절인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은 그 자체로 이 두 서사의 통합을 암시합니다. '일시(一始)', 즉 하나에서 비롯되었다는 선언은 분명 창조론적 시작을 이야기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곧바로 '무시일(無始一)', 즉 그 시작의 근원인 하나는 본래 시작이 없다고 말함으로써, 순환론적인 영원성의 개념을 끌어안습니다. 이는 마치 하나의 점에서 우주가 폭발하듯 시작되었지만, 그 점 자체는 모든 시간과 공간을 포함하는 영원한 전체였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시작이 곧 시작 없음이며, 하나가 곧 전체이고, 창조의 순간이 곧 영원한 순환의 한 단면이라는 이 역설적인 통찰은, 창조와 순환이라는 두 거대한 서사를 하나의 더 높은 차원에서 통합하려는 시도의 정수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의 제1부는 바로 이 우주론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깊이 있게 탐험하는 여정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창조 서사의 가장 극적인 변주인 영지주의의 비극적 세계관에서부터, 순환 서사의 가장 정교한 형태인 불교의 연기론에 이르기까지, 각 전통이 그려낸 다채로운 우주의 초상들을 하나씩 세밀하게 살펴볼 것입니다. 이 과정은 단순히 여러 신화와 철학을 목록처럼 나열하는 작업이 아닙니다. 이것은 인류 정신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두 개의 원형적 이야기, 즉 시작을 갈망하는 마음과 영원을 꿈꾸는 마음이 어떻게 서로 길항하고, 때로는 서로를 부정하며, 또 때로는 놀랍게도 하나로 합쳐지려 노력해왔는지를 추적하는 지적인 탐사입니다. 이 우주론이라는 근본적인 무대를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는 그 위에서 펼쳐지는 인간의 구원과 실천이라는 장엄한 드라마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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