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호주 깡촌에서 싱글맘 생존기

by 블루

새벽에 일찍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커피 한잔을 내려 마시며, 그날의 날씨를 보는 것입니다. 하는 일이 밖에서 주로 하는 일이다 보니 아무래도 날씨를 봐야 하는 게 일상이 되었지요. 비가 오는지, 바람은 또 얼마나 불어 재낄지, 며칠을 기한으로 잡은 그 일을 오늘 시작해도 무방할런지 등 날씨의 눈치를 매일 보고 살아간다 해도 과언이 아닌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이 남의 나라에 살면서 심지어는 날씨 눈치까지 보며 살고 있다는 사실에 쓴 미소를 짓게 됩니다.


물건을 사기 위해 사람들 사이에 줄을 서 있을 때도 내가 지금 올바른 자세로 서 있는지, 줄을 선 사람들과 앞 뒤의 알맞은 거리를 유지하며 서 있는지 자꾸만 나를 점검합니다. 그리고 아는 사람과 인사를 주고받으며 나누는 짧은 대화를 뒤로 할 때도 내가 적당한 단어를 골라 썼었는지, 대화에 껄끄러운 부분은 없었는지, 거듭 생각을 하며 짧았던 그 대화를 처음부터 다시 재생을 하며 다시 듣기를 반복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래요. 이렇게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는 이 버릇은 내 나라에서 태어나 내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는 누군가에게도 있을 수 있는 어쩌면, 그 사람의 성격에서 나올 수 있는 개인의 성향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들은 그 사람의 소심한 성격에서 비롯된 스스로의 단속이며, 자기 자신에게 혹시 있을 수 있는 타인의 질타나 비방 그리고 다른 이들의 수군거림만을 걱정하면 되겠지만, 이렇게 외국에서 나와 다른 종의 사람들 사이에 비벼져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단속과 또, 그 위에 더 큰 한 가지 이유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곳 본토생의 사람들이 나를 볼 때 혹은 칭할 때는 단순히 그 여자, 아무개가 아닌 "한국여자"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십 수년 전 동양인을 처음으로 나와 내 아이들로 인해 알게 된 사람들이 사는, 이 산촌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나의 이름을 모르던 사람들이 나를 가리킬 땐 " 한국여자"라고 부르고 있다는 걸 아는 순간부터 나는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을 제 스스로에게 부여한 것만 같았습니다. 나를 모르던 사람들도 " 그 한국여자"로 나를 칭하며, 내가 하는 실수는 한국사람이 하는 것이고, 내가 하는 불손한 태도도 역시 한국사람의 태도이고, 내가 하는 모든 부족한 행동이 바로 이곳 사람들이 매기는 한국인들의 점수란걸 안 후로는 나의 모든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 단어 한 가지도 마구 내뱉고 살 수가 없었던 거지요.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한국은 내 아버지, 내 어머니 그리고 내 핏줄들이 살아가고 있는 내 나라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부모님께 절대 누를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비록 지금의 나의 여권은 녹색의 호주 여권이지만, 나의 마음은 항상 파란 한국여권이었습니다. 남편과 시댁을 피해 숨어 살기 시작했을 무렵, 한국으로만 가고 싶었던 나는 한국 영사관에 가서 한국 여권을 달라며 영사관 창구에서 창피도 모르고 떼를 쓰며 아이처럼 매 달렸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호주인으로 등록이 되어있던 아이들 때문에 그건 불가능한 일이 되었고, 영사관 직원의 말에 따라 나는 나의 한국 국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적을 포기하는 서류에 사인을 하고 돌아서던 날, 나는 영사관 화장실에 숨어 아이들을 안고 숨죽여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건 마치 나를 낳아 주신 나의 부모님과 이어진 나의 핏줄을 끊어 내는 것만 같은 고통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삼십 년을 가까이 호주인으로 살아오고 있고, 이 나라에서 태어난 두 아이들은 아직도 이 산촌에선, 우리는 여전히 한국인입니다. 가끔 우리 아이들에게 영어를 알아들을 수 있냐고 묻는 사람들도 아직 있습니다.


처음 이곳에 들어와 한국을 모르던 사람들에게 삼성, LG, 기아, 쌍용 그리고 현대를 얘기하며 한국 제품이라 말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었고, 심지어는 일본 제품이라며 화를 내던 이들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싸이를 시작으로 한류 바람이 분 덕으로 이제는 한국이 많이 알려졌지만 예전엔 한국에 전기가 들어 가있는 상태냐고 묻던 사람들도 있었으니, 우물 안 개구리들에게 한국을 설명하기에는 많은 한계를 느꼈었지요.


이제는 한국이 많이 알려진 이유로 더욱 나를 단속합니다. 혹시라도 나의 작은 잘못으로 우리나라에 작은 생채기라도 내지 않기 위해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나의 노력입니다.


나는 한국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