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깡촌에서 싱글맘 생존기
내가 팡을 처음 만난 것은 작은 아이가 초등학교( primary school)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나는 제시간에 맞춰 일을 가기 위해 급히 차로 돌아가고 있을 때 팡과 나는 차를 나란히 주차한 덕분에 그렇게 처음 만났다. 그녀의 차 운전석에는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백인 남성이 손을 들어 나에게 인사를 했다. 동양인이 우리 세 가족이 전부였던 산촌에 나와 같이 검은 머리를 한 동양 여자를 본 순간 나는 잠시 차 키를 든 손이 정지 되었었다. 그녀 또한 나와 눈이 마주한 순간 세상 밝은 미소로 내게 다가왔다.
그녀도 같은 동양인 이라는 동질감으로 반가운 마음에 내게 다가오기는 했지만 그녀의 영어 실력은 정말 좋지 않았다. 그녀가 내게 하는 말은 영어인지 아니면 그녀 고국의 언어인지조차 분간이 힘든 그녀만의 언어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뭔가를 묻기에 나는 나의 출신국이나 이름을 묻는 것이란 짐작에 " 코리아...."라고 해줬다. 그러자 그녀는 그 귀엽고 동그란 얼굴의 미소가 더 커지며 고개를 끄덕이며 " 코리아.. 코리아.."라고 따라 했고,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태국" 이라고 했다. 그렇게 그녀와 나는 겨우 서로의 출신국만 확인한 채 첫 만남을 마쳤다.
호주에서는 초등학교 아이들을 부모들이나 가족 구성원이 학교까지 데려다주고 직장이 있는 부모들이나, 또한 그날 특별한 계획이 없는 한 대다수의 부모들과 보호자들은 대개 아이들과 같이 교정에 들어가 있다가 아이들이 수업시작종과 함께 교실로 들어가면 그제서야 학교에서 나온다. 아이들이 교실로 들어가기 전까지 부모들은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는게 보통의 일상이다. 그러나 영어가 서툴렀던 팡은 호주의 다른 부모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했고, 항상 아이들만 학교에 떨어 트리고 일하러 뛰어가야 했던 나를 따라 매번 교정 밖으로 같이 뛰어나왔지만 어렵사리 구한 나의 일자리에 지장이 있을까 우려했던 나는 미안했지만 서둘러 그녀와 아주 짧은 인사만을 나누고 자리를 뜨곤했다.
그러다 어느 한 아이의 생일잔치에서 만날 수 있었던 나와 팡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고, 서로 정확한 이해보다는 지레짐작이 바탕이 된, 입보다는 주로 손을 더 많이 쓸 수밖에 없는 대화로 우리는 서로 조금은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었다.
그녀의 아들은 나의 작은 아이와 같은 반이었고, 태국과 호주를 오가며 살던 이들은 아들이 학교에 들어가야 하는 나이가 되자 호주인 남편을 따라 영구히 호주로 들어온 것이라 했다. 그 두 부부는 서로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되었고 팡보다 거의 30살 가까이 차이가 났던 그녀의 호주 남편이 태국으로 찾아와 결혼을 하고 살았다고 했다. 나와 팡은 서로 전화번호를 주고받았고, 예상보다 조금 일찍 팡과 아들을 데리러 왔던 그녀의 남편 때문에 우리의 길었지만 거의 건진 건 없는 그런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팡의 전화를 받았다. 그날은 토요일 오후였고 나는 아이들과 모처럼 수제비를 만들어 먹으며 한가로이 보내고 있을 때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도 톤이 높았고 무척 격앙된 채 "픽미 픽미" 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두서없는 그녀를 진정시키면서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스무고개 같은 대화를 통해 나는 그녀가 대충 어디쯤에 있겠다 싶은 곳으로 우리 아이들을 태우고 그녀를 찾아 나섰다. 그녀는 내 예상과 별로 멀지 않은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 밝은 보름달 같던 그녀의 얼굴은 누가 봐도 울었던 흔적이 영력 했으며 핸드백 보다는 조금 큰 그녀의 두툼한 옷가방을 통해 대충 그녀의 상황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그녀의 아들 또한 울었던 것처럼 보였고 우리 둘째가 반가워하며 말을 걸어도 엄마인 팡의 팔을 꼭 붙들고 자신의 얼굴을 엄마의 가슴에 묻은 채 아무 말이 없었다. 평소 쾌활하던 모습과는 다른 아이의 반응으로 나는 뭔가 큰일이 생긴 게 분명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그 두 모자를 우리 집으로 데려와서 아직도 온기가 있던 수제비를 데워서 내놓는 것 밖에는...
아이들이 모두 잠자리에 든 후 팡은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비록 그녀가 왜 우는지 정확한 이유는 몰랐지만 그녀가 소리를 내지 않으려 울음을 삼키려고 냈던 짐승의 소리로 나는 그녀가 지금 얼마나 아파 하는지 알 수 있을것 같았다. 몇 년 전 나도 불 빛 하나 없는 산속에서 그렇게 울었으니까.... 서서히 울음을 그친 그녀의 얘기는 믿을 수가 없었고 차라리 그녀와 내가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 내가 잘못 이해했기를 바랐었다.
그녀의 남편은 두 어달전 심장마비가 와서 구급차로 병원에 실려 갔고 그것이 그녀가 본 남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했다. 그는 그렇게 허망하게 심장마비로 돌아가셨고, 몇 주전 갑자기 찾아온 남편의 장성한 전처소생 자식들이 찾아와서 이제는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이 집을 처분해야 하니 나갈 곳을 찾아 보라고 했다 한다. 그러나 오 갈 곳이 없던 팡은 그 집에서 버텼고 오늘 이렇게 강제로 그 집에서 밀려 나오게 된 것이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얘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