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깡촌에서 싱글맘 생존기
머리가 복잡했다. 울다 지친 팡은 그 작은 몸을 웅크린 채 내 침대 한켠에서 잠이 들었지만 나는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좀 더 정확한 얘기를 듣고 싶었지만 그녀가 말하는 단어만으로 나는 문장을 만들어 이해해야 했기 때문에 사실 여부를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예를 들어 그녀가 ' 아들.. 나가.. 돈.. no.."라는 단어를 말하면 나는 "아들이 돈도 없는데 나가라고 했다"라는 식으로 나만의 문장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울음 반, 손짓 반으로 이루어진 그녀의 얘기로 우리는 더 이상의 소통은 포기해야만 하는 지점에 다다른 것이었다. 그녀도 이해를 퍼뜩 못하는 나를 답답해했겠지만 나도 그녀가 참으로 어리석어 보이기도 했다. 어쩌자고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를 덜컥 따라 나서 고향을 떠나 이렇게 말도 통하지 않는 타향에서 버림을 받고, 또 이런 상황에 대비해 아무런 대책도 없었던 건지.. 그녀가 한심스러웠다. 그러나 곧 나는 알게 되었다. 그것은 그녀에게 하던 질타가 아닌 나에게 하는 자책이었고 잠을 자고 있는 저 작은 여자는 팡이 아니라 또 다른 나였다는 것을...
다음 날 나만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팡에게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줘야 할지를 몰랐다.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할지 아니면 다시 그 집에 데려다줘야 하는 건지... 나는 결국 경찰서를 택했다. 경찰서라고 하자 처음에 팡은 펄쩍 뛰며 가지 않겠다 했지만 나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내가 팡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기에 팡의 억울함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누군가가 대신 필요하다 생각한 것이 경찰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친엄마는 아니지만 아버지와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고 살던 여자를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해서 한 푼도 없이 거리로 내쫓았다는 게 나는 생각할수록 그들이 괘씸했기 때문에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그녀를 설득해 그녀를 경찰서로 데리고 갔다. 물론 아이들도 같이였다. 그 사이 우리 작은 아이덕에 활기를 다시 찾은 팡의 아들은 나의 작은 아이와 나를 더욱 정신없게 해댔다. 어딜 가는 거냐 묻는 두 아이들의 반복된 질문에 아이들 눈에 맞춘 설명을 해줘야 했고, 대충 짐작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나의 큰 아들아이의 눈빛은 말없이 진지했다.
집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다소 큰 경찰서를 찾았다. 입구에서 우리가 왜 찾아왔는지를 묻던 경찰은 곧 여경 한 사람을 불러줬고, 다소 영어가 서툰 팡을 대신해 나는 내가 이해한 부분만 여경에게 설명해 줬다. 나는 내가 설명을 해주면 경찰들이 만반의 준비를 하고 팡을 내쫓은 그들에게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가 혼내줄 것 같았는데, 나의 설명을 들은 여경은 너무도 평온했고, 그보다도 더 평온한 목소리로 잠시 기다리라고 하였다. 따라갔던 아이들이 지루해하며 경찰서 이곳저곳을 탐방하기 시작할 무렵 안쪽에서 드디어 나타난 여경은 우리에게 작은 종이쪽지를 건넸다. 그곳은 여성쉼터(Refuge)의 전화번호와 주소가 적힌 쪽지였다. 그리고 그 여경의 말은 팡의 사정은 안 되었으나 지금 현재로서는 경찰이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은 없다였고, 여성쉼터에 가면 팡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했다. 다만 팡이 그 집에서 필요한 그녀의 소지품을 가져오고 싶을 땐 같이 가 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팡은 가져올 것이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경은 그 집에 가야 할 날짜를 그 집 사람들과 상의해야 하니 일단은 돌아가라 하였다. 우리는 일단 집으로 돌아와 여경이 건네준 여성 쉼터에 전화를 걸었다. 그 여성쉼터는 우리 집으로부터 40여분이 떨어진 곳이었고 팡은 그녀의 아들아이의 학교문제로 쉼터에 가지 않고 우리 집에 계속 있겠다며 내게 사정을 했다. 차가 없었던 팡을 나는 이해했다. 나였어도 그런 마음이 들었을 것이기에..... 일단은 다른 방법이 없었다. 여성쉼터에서는 오고 싶을 땐 아무 때라도 좋으니 와도 좋다는 약속을 받아 놓은 상태였기에 나의 마음은 좀 가벼웠다. 그래서 당분간은 팡이 스스로 결정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로 했다.
며칠 후 경찰에게서 연락이 왔고 우리는 경찰 네 명과 팡이 살던 집 아니 팡의 집을 찾았다. 우리 두 아이와 팡의 아들은 이웃에게 잠시 부탁을 하고, 나와 팡은 경찰차를 얻어 타고 그 집으로 향했다. 집은 내가 예상했던 대로 넓은 대지위에 지어진 큰 규모의 오래되어 보였지만 벽돌로 단단히 지어진 주택이었다. 팡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마당 한편에 있던 수도에 연결되어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얽혀있던 물 호스를 천천히 풀은 후에 마당에 나무로 만들어진 직사각형 모양의 두 개의 커다란 야채 밭에 물을 주기 시작했다. 거기엔 모닝글로리와 내가 알지도 못하는 각종 야채들이 싱그럽게 자라 있었다. 정성스레 물을 주기 시작하던 팡의 얼굴은 이해하지 못할 아이 같은 미소로 가득했다. 그녀의 미소로 나는 혼자 짐작을 해 보았다. 이 야채밭을 만들어 주던 죽은 남편을 떠 올리며 무엇을 심을지 서로 얘기를 나누며 행복해하던 어느 날을 떠 올렸던 건 아닐까... 이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집이 될 테인데 그녀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던 일이 겨우 야채밭에 물 주기라니 나는 괜히 시간을 내서 따라와 준 경찰들에게 미안한 생각마저 들었지만, 나는 그녀의 야채 물 주기는 이 집과 그녀가 마지막으로 나누는 작별인사인걸 알기에 그들의 말없이 치러지는 그 고별식에 먹먹해졌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잠시 멍해 있던 나를 팡은 큰 손짓으로 부른 후 야채들을 가리켰다. 나와 경찰들은 서로 바라보며 우리들은 그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겠단 듯 그렇게 잠시 서 있었다. 그러자 그녀는 모닝글로리와 다른 야채들을 능숙하게 한 움큼씩 꺾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물기 가득한 그것들을 몇 번씩 허공에 뿌리며 툭툭 물기를 털어낸 후에 한아름씩 내게 안겼다. 모닝 글로리에서 올라오던 그 진하고 향긋한 풀 냄새는 지금도 기억한다. 그리고 또 다른 방향의 마당 한편에는 집안에서 내놓은 듯한 가구들과 살림살이로 늘어져 있었는데, 팡의 남편 가족들로 보이던 몇 명의 남자들이 어느새 나와 팡이 야채 밭에 물 주던 장면을 보면서 서 있었다. 경찰들이 그들에게 다가가 문 앞에서 떨어져 있어 줄 것을 부탁하자 그들은 흔쾌히 마당으로 나와 늘어놓은 살림살이 옆에 서 주었다. 야채에 만족할 만큼 물을 준 팡은 수도를 잠근 후 호스가 서로 얽히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벽돌벽에 걸린 고무가 빠져 둥그런 녹슨 차바퀴 휠만 남은 그것에 천천히 감기 시작했다. 그 장면이 너무나 진지해 보였고, 그녀는 마치 무슨 신성한 의식을 치르는 신녀처럼 보였다. 어느 누구도 소리를 내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그녀를 조용히 지켜보기만 할 뿐...
호스 감기를 끝낸 팡은 그다음으로 집안으로 들어가 그녀가 원하던 그녀의 소지품을 챙길 것이란 우리들의 예상과는 달리 마당에 늘어놓은 살림살이 옆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그녀는 가장자리에 금칠을 덧댄 커다란 사진 액자 하나를 들어 올렸다. 키 작은 그녀의 몸만 하던 그 액자는 그녀가 들고 있기에는 다소 힘들어 보일 만큼의 크기였다.. 그 사진에는 죽은 그녀의 남편이 나비넥타이를 한 검은색 정장을 입고 한 살 정도로 보이는 그들의 아들을 무릎에 앉혀 놓고 세상 환하게 웃고 있었고, 아들아이 역시 정장을 차려입고 있었다. 그들의 오른쪽에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는 팡이 그녀의 남편 어깨 위에 양손을 얹고 너무나도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그녀의 가족사진이었다. 한때는 집안 거실 중앙에 걸려 이들이 행복하게 살았던 시절을 내려 다 보았을 그 액자가 마당에 버려진 채 놓인 것이 마치 팡의 신세와도 같았다.
나중에 들어 안 사실이지만 그들은 태국에서 아이를 낳은 후 늦은 결혼식을 올렸다했다. 그 사진 액자를 든 팡은 경찰들에게 "Let's go!!" 라며 힘 있게 말했다. 경찰은 그게 다야? ( That's all?)라고 물었고 팡은 그렇다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자리에 있던 경찰과 남편의 가족들, 그리고 나는 그녀가 진짜로 무얼 원했었던 건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무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가장 먼저 경찰차 뒷자리에 올라타 허리를 곧게 펴고 당당히 앉아 있던 팡이 무척 단단해 보였고,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하였다. 경찰들은 그녀에게서 받아 든 그 사진 액자를 너무도 정성을 다해 다른 경찰차 뒷 좌석에 실었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나와 팡을 데려다준 경찰이 말을 해 주었다. 사실 팡이 살던 그 집과 땅은 팡의 남편과 남편의 큰 아들 둘의 공동 명의로 되어 있었고, 집을 수리하고 처분한 뒤 법적인 정식 절차를 걸친 후 팡과 아들에게 그 몫이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말을 큰 아들에게서 전해 들었다 한다. 팡이 나오던 날도 큰 아들이 집수리를 하기 위해 당분간은 자신의 집에 가서 머물기를 청했는데 팡은 오로지 그 집에서 나가야 한다는 그 사실 하나만이 서러워 나에게 울며 전화를 한 것이었다. 팡은 남편과 추억이 가득한 그 남편 집에서 아니, 그들의 집에서 평생 살 것이라 생각을 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