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광대한 영토는 어떻게 형성되었나?

-22,000개에 가까운 섬으로 구성된 세계 최대 군도 국가, 인도네시아

by Yan

지도를 펼쳐 보면 마치 대륙처럼 뻗어 있는 이 나라의 현재 영토는, 처음부터 그렇게 넓었던 것이 아니다. 수마트라, 자바, 보르네오, 술라웨시를 중심으로 한 고대 왕국들이 흩어져 있었을 뿐, 지금처럼 '하나의 나라'였던 적은 거의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거대한 군도가 하나의 정치 공동체로 묶이게 되었을까?


스리위자야, 해양 제국의 원형

7세기부터 13세기까지 수마트라 팔렘방을 중심으로 번영한 스리위자야(Srivijaya) 왕국은,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먼저 '해양 제국'의 형태를 갖춘 정치 공동체였다.
스리위자야는 말라카 해협을 장악하며 말레이 반도, 자바 북부, 보르네오 서부, 심지어 타이 남부까지 무역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불교 문명 중심지로서 중국, 인도, 아라비아와의 교류도 활발했다.

스리위자야의 통치는 마자파힛처럼 느슨한 조공 체계였지만, '바다를 기반으로 한 통합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오늘날 인도네시아가 "바다로 연결된 나라"라는 정체성을 갖게 된 뿌리는 이 시절에 닿아 있다.


마자파힛, 섬의 세계를 그리다

13세기 말, 자바섬 동부에 자리한 힌두-불교 왕국 마자파힛(Majapahit)은 스리위자야의 해상 유산을 계승하며 인도네시아 통합의 가장 넓은 범위를 시도했다. 이 왕국은 지금의 인도네시아 대부분, 말레이 반도, 필리핀 일부까지 영향력을 넓히며, "Nusantara(누산따라)"라는 ‘섬들의 세계’ 개념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역시 문화적 영향력과 조공 중심의 네트워크에 가까웠고, 실질적인 정치 통합은 이뤄지지 않았다.


식민지가 만든 '통합 인도네시아'

오늘날 인도네시아 영토의 실질적 기초는 19세기 후반 이후 네덜란드 식민지배기에 형성되었다.
처음에는 무역회사를 가장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VOC)가 자바와 몰루카 제도에 진출했지만, 1800년 VOC가 파산하면서 네덜란드 정부가 직접 통치에 나섰다.

이후 각 섬의 독립 왕국들을 하나씩 병합해가며, 자바, 수마트라, 보르네오, 술라웨시, 발리, 롬복, 몰루카, 그리고 서부 뉴기니(지금의 파푸아)까지 포함하는 '네덜란드령 동인도'라는 단일 식민지가 완성되었다.

이 시기의 경계 설정이, 훗날 인도네시아라는 국가의 영토적 기반이 되었다.


일본 점령기: 민족 통합의 가속기

1942년부터 1945년까지의 일본 점령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인도네시아의 민족적 통합을 촉진시켰다. 일본은 군사 효율성을 위해 식민지 전역을 자바 중심으로 통합 관리했고, 현지인 관료를 적극 등용했다.

이로 인해 '하나의 인도네시아'라는 국민적 의식이 확산되었고, 1945년 수카르노와 하타가 독립을 선언하게 되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독립과 영토의 재확인

독립 직후,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와의 4년 전쟁(1945~1949) 끝에 옛 식민 영토를 계승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몰루카, 술라웨시, 발리 등 일부 지역에서는 연방제 또는 독립을 원하는 움직임이 있었고, 중앙 정부는 이를 강제로 진압하며 중앙집권적 통합국가를 확립해 나갔다.


파푸아, 동티모르: 경계의 마지막 변수

1963년, 유엔 중재 아래 네덜란드령 파푸아가 인도네시아에 이양되었고, 오늘날까지 분리 독립운동이 지속되고 있다. 1976년에는 동티모르를 병합했으나, 1999년 주민투표를 통해 독립하면서 현재의 국경선이 확정되었다.


인도네시아는 ‘바다의 유산’ 위에 세워진 국가다

인도네시아는 단일한 민족, 문화, 언어의 국가가 아니다.
스리위자야의 무역망과 마자파힛의 영토 비전, 네덜란드의 행정 경계, 그리고 독립 이후 중앙정부의 통합정책이 층층이 쌓이며 오늘의 인도네시아를 만들었다.

이 국가는 섬과 섬을 연결하며 정체성을 유지해야 하는 구조적 숙명을 안고 있으며, 그 역사적 배경은 오늘날의 지역 갈등, 분리 움직임, 그리고 다문화 정책의 핵심 이해 기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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