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 강남역 미x컨테이너에 갔다. 나랑 친구들은 양이 좀 적은 편이었기에 평소처럼 4명이서 3인분을 시켰다. 양이 적은 것도 이유지만, 파스타도 먹고 싶고 피자, 샐러드도 먹고 싶었기에 나눠먹는 건 우리에게 참 당연하다. 어떻게 보면 나눠먹는 것은 친밀함을 보여주는 행위다. 남녀가 첫 소개팅에서 음식을 나눠먹거나, 직장 상사와 음식을 나눠 먹는 건 상상만으로도 어색하다.
흔히, 나눠먹는 문화는 한국의 전통이라고 여겨진다. 미국 유학 초창기, 친구들과 프로즌 요거트 가게에서 요거트를 큰 통에 담아 나눠먹은 적이 있다. 한참을 먹고 있는데, 미국인들은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꼬마까지도 각자 한 통 씩을 들고 나가는 걸 보았다. 외국인들은 우리들이 나눠먹는 걸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거니 싶어서 그 후로는 항상 1인 1요거트를 하게 되었다. 한국에 온 외국인들 역시 한국인들이 음식을 나눠먹는 걸 보고 처음에는 굉장히 놀랐다는 말을 자주 한다.
'음식을 한 그릇에 나눠먹는 것'을 한국의 문화라고 부르는 것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의 전통 문화가 아니다. 대개의 경우 한 나라의 전통 문화를 말할 때는, 서민 문화가 아닌 궁중 문화를 말한다. 프랑스 식문화, 러시아의 식문화를 말할 때에는 궁중 문화를 얘기하면서, 왜 유독 한국의 식문화를 이야기할 때에는 개화기 이후 한국 서민 문화를 언급하는 것일까? 그 어느 민족이, 먹거리가 귀하던 시절 각자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었겠는가?
한국의 전통 식문화는 '한상 차림'이다. 한국의 전통 밥상에는 함께 먹는 공용 반찬이 없다. 어떤 사람들은 밥상에 공용 반찬이 오르는 것을 두레상이라 하며 전통이라 생각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우리 전통에는 두레상이 없다. 각자 본인 몫의 음식을 작은 상에서 혼자 먹는 것이 조선의 예법이다. 간혹 잔칫날 음식을 수북이 쌓아 올리는 행사용 교자상은 있다.
조선은 유교 국가로 율법이 매우 강했다. 집안의 가장 큰 남자 어른이 밥상을 받아먹고, 그다음의 남자 어른, 그다음의 남자 어른이 밥을 먹었다. 남자 어른들이 밥을 모두 먹은 후에, 여자 어른과 아이들이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러다가, 일제 강점기에 유교적 식문화가 바뀌기 시작했다.
1936년 동아일보에는, "외상을 절대 폐지.. 가족이 한 식탁에"라는 기사가 나왔다.
"독상 제도를 버리고 온 가족이 한 밥상머리에 모여 앉아서 화기애애한 중에 가치 먹으면 식욕도 증진되고 반찬이 적어도 후정거리지 않고 또 남는 반찬이 별로 없는 만큼 그것의 처치에 곤란한 점이 없을 것이다."
초창기에는 익숙지 않았으나, 산업화 이후 겸상은 점차 자연스러워졌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 상승 또한 문화의 변화에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서열에 따라 차례로 독상을 하다, 온 가족이 동시에 한 상에서 밥을 먹게 되니 각자에게 줄 식기가 부족했다. 따라서, 공용 반찬을 내놓게 되었다. 가정에서야 별문제가 없었지만, 외식 업계에서도 여럿이서 식사를 할 때 공용 반찬을 내놓게 되었다. 1960년 대 당시, 식당 주인들은 위생에 대한 개념이 적었고, 공용 반찬을 내놓는 것에 별다른 문제 의식이 없었다.
공용 반찬 문제는 생각보다 많은 문제를 낳았다. 한국 식문화는 비위생적이라는 비난을 받았으며, 공용 반찬 문화가 한국 전통 식문화라는 오해를 받으며, 한국의 전통이 폄하되기도 했다. 또한, 한국인들이 위장질환이 많은 이유가 반찬을 함께 먹어 서로 헬리코박터 균을 옮기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뿐만 아니라, 한식 세계화를 추친하는데 큰 장애 요소가 되고 있다.
사실, 정작 한국인들은 이에 크게 문제 의식이 없는 듯하다. 아이스크림을 함께 퍼먹고, 찌개를 함께 먹는 것은 지금도 흔한 광경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용 반찬이 한국 전통 식문화라는 오해가 없어지고, 이로 인해 한국 전통 식문화가 비위생적이라고 폄하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