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4만 분의 1, '확률'이 아니라 '희망'을 산다.

당신이 이번 주에도 로또를 살 수밖에 없는 이유

by 이시선

토요일 저녁 8시 35분.
대한민국의 수많은 거실에서 동시에 탄식과 안도가 교차하는 시간이다. TV 화면 속에서 공이 하나씩 굴러 나올 때마다, 누군가의 일주일치 꿈은 휴지 조각이 되고, 극소수의 누군가는 인생이 뒤바뀐다.



​로또 1등 당첨 확률, 814만 5,060분의 1.
수학적으로 말하면, 길을 가다 벼락을 맞고 살아남은 뒤 또다시 벼락을 맞을 확률보다 낮다고 한다. 이성적인 '호모 사피엔스'라면 결코 배팅해서는 안 되는 확률이다. 1,000원을 걸면 평균적으로 500원도 못 건지는, 기댓값이 마이너스인 게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매주 편의점 앞에서 줄을 선다.
심지어 지난주에 5천 원을 날리고도, 이번 주에 또다시 지갑을 연다.


​도대체 왜 그럴까? 우리가 수학을 못해서일까? 아니면 어리석어서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는 그저

호모 겜블러(Homo Gambler)의 본능에 충실했을 뿐이다.


​우리는 '확률'을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5천 원을 내고 사는 건, 당첨될 것이라는 수학적 기댓값이 아니다. 우리는 '일주일 동안의 행복한 상상'을 산다.


​월요일 아침, 지옥철에 끼여 출근하면서 우리는 주머니 속 로또 용지를 만지작거린다.
"이거 되면 당장 사표 던진다."
"이거 되면 당장 하와이로 떠난다."


​그 찰나의 상상은 팍팍한 현실을 견디게 해주는 가장 강력한 진통제이다. 5천 원으로 일주일 동안 뇌 속에 도파민을 공급할 수 있다면, 이건 꽤 남는 장사가 아닌가?


​뇌과학적으로 보면, 인간은 결과(보상)가 주어졌을 때보다 '보상을 기대하는 순간'에 더 많은 도파민이 분비된다고 한다. 로또 추첨 직전까지의 그 설렘, "혹시 내가?" 하는 그 착각.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지불한 5천 원의 진짜 대가다.


​하지만 경계해야 할 것은 '중독'이다.


재미로 사는 희망은 활력소가 되지만, 그것을 '유일한 탈출구'로 여기는 순간 비극은 시작된다. 내 삶의 통제권을 내가 쥐지 않고, 고작 45개 공의 우연에 맡겨버리는 태도. 그것은 투자가 아니라 현실 도피이다.


​이번 주에도 로또를 샀는가?
그래도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당신은 그저 인간의 본능인 '불확실성에 대한 기대'를 즐겼을 뿐이다. 다만, 그 종이 한 장이 당신의 인생을 구원해 줄 것이라 믿지는 마라.


​진짜 '대박'은 우연히 굴러 나온 공이 아니라, 당신이 매일 쌓아 올린 선택과 노력 속에 숨어 있으니까.


이 글은 도서 <호모 겜블러>의 본문 중 일부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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