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 거처를 찾는 여정
은퇴 이후의 삶을 그려보면, 일터에서 물러난다는 해방감보다는 수입이 고정된 채로 물가는 올라가는 현실이 먼저 떠오른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생산적인 활동에서 직접적인 수입을 올리진 않겠다고 결심한 이상, 남는 것은 연금과 자산소득뿐이다. 물론 사회보장연금에는 COLA라 불리는 물가상승 보정 제도가 적용되지만, 체감 물가를 온전히 따라가지는 못한다. 세월이 지나면 연금의 실질 가치는 점점 낮아지고, 자산 수익 역시 인플레이션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구매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것이 내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걱정만 할 수는 없다. 나는 내 방식대로 이 리스크에 대응하고자 한다. 우선 은퇴 후 15년에서 20년간은 세계를 여행하며 살아갈 계획이다. 일회성의 짧은 여행이 아니라, 몇 개월씩 체류하며 살아보는 방식이다. 이 기간은 단순한 유람의 시간이 아니라, 내 삶의 다음 거처를 탐색하는 여정이기도 하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여러 대륙을 직접 경험하고, 그 중에서 내가 가장 평안함을 느끼는 도시를 찾아 장기 거주지로 삼을 생각이다.
대략적인 윤곽은 이미 잡혀 있다. 미국은 삶의 기반이지만, 은퇴 후의 장기 체류지로는 비용과 기후, 의료 접근성 등을 고려할 때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그래서 멕시코의 메리다, 콜롬비아의 메데인처럼 따뜻하고 물가가 낮으며 외국인에게 개방적인 도시들을 1순위 후보지로 생각하고 있다. 남미에서는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 유럽에서는 몰타나 터키도 후보군에 넣고 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태국 치앙마이도 매력적인 옵션이다. 이 도시들은 모두 의료 접근성이 좋고, 비자 조건이 유리하거나 외국인의 장기 체류에 우호적인 곳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도시가 내 마음에 편안함을 줄 수 있는가다.
은퇴 후 여행은 단지 눈이 즐거운 것이 아니라 삶의 구조를 재설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각국의 문화와 시스템, 생활비, 의료 환경을 직접 경험해보며, 나의 late life 즉 80대 이후의 안정된 거처를 천천히 찾아 나가는 것이다. 여행은 목적이 있는 탐색이다. 나는 그 목적을, 노년의 평안한 삶을 위한 최적의 장소 찾기로 설정했다. 덕분에 인플레이션의 불안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상대적으로 생활비가 낮고 삶의 질이 높은 곳을 찾는다면 그 걱정도 훨씬 줄어들 것이다.
결국 인플레이션을 이기는 방법은 단지 수익률 높은 자산에 투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내 삶을 구성하는 방식 자체를 조율하는 것이다. 삶의 속도를 늦추고, 지출을 현명하게 줄이며, 내가 원하는 삶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찾는 것. 그것이 내가 그리는 은퇴 후 삶의 전략이고, 오늘도 나는 그 전략을 실현하기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