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언제나 다른 얼굴을 가진다
대서양을 건너와 카리브해에 들어서는 순간, 물빛이 달라졌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어디서부터 색이 바뀌는지 경계는 모호하지만, 낫소에 다가갈수록 물속에서 스스로 빛을 내는 듯한 청록색이 시야를 채웠다. 애메랄드라나 뭐라나 하여간 바다의 색깔이 기분 좋다. 지중해의 묵직한 파랑, 대서양의 검은 바다, 그리고 이곳의 밝고 가벼운 색은 모두 바다이면서도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닌 존재들이다.
기항지 투어를 하며 선선한 바람을 맞았지만, 낮과 밤의 기온은 거의 차이가 없다. 22도 부근에서 머무는 온도는 체온처럼 안정적이고, 몸은 이 편안함을 금세 기억한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조심스러웠는데 이제는 먹고, 걷고, 잠시 누워 쉬고, 다시 먹는 일상에 제법 익숙해졌다. 크루즈 생활이란 결국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맡기는 법을 배우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이틀 후면 템파로 돌아가고, 같은 날 다시 마이애미로 이동해 또 다른 일주일의 항해에 오른다. 이렇게 이어지는 여행이 꿈결 같기도 하고, 사는 게 원래 이런 흐름이었나 싶기도 하다. 배라는 공간은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거대한 수면 위의 호텔이고, 그 안에서 나는 매일 띵가띵까라는 단어의 깊은 의미를 새롭게 체험하는 중이다.
바다는 계속 움직이고, 배도 흔들리지만, 그 위의 삶은 오히려 고요하다. 그리고 그 고요가 주는 안도감이 점점 마음을 넉넉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