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지막 삶의 존엄

by 라온재

미국의 너싱홈은 생각보다 훨씬 크고 체계적인 산업이다. 도시마다 같은 이름의 시설이 체인처럼 퍼져 있고, 외관만 보면 호텔이나 리조트와 다를 바 없는 곳도 많다. 그러나 그 안의 하루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이곳에서의 삶은 단순히 거주가 아니라 결국 마지막 시간을 관리받는 곳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가족이 직접 간병하는 문화는 거의 없다. 부부간에도 마찬가지이다. 가끔 면회를 올 뿐이다. 기족에게 간병을 기대한다는 것은 지나친 이기적 욕구인 것 같다. 대신 면허를 가진 간호사와 CNA가 모든 기본 케어를 담당한다. 치매, 낙상, 암 등 다양한 이유로 입소하지만 퇴원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부분은 상태가 악화되기 전까지, 혹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시설에 머문다. 내가 간호사로 일하던 곳은 월 비용이 8천 달러가 넘었다. 상담을 받으러 오면 제일 먼저 확인되는 것은 경제적 능력이다. 재정이 불안하면 대기자 명단에조차 올리기 어렵다. 이 모든 과정에서 너싱홈이 결국 영리 사업이라는 사실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입소자들의 표정과 행동은 초반에 거칠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조직의 속도와 규율에 맞춰 조용히 적응해 간다. 기저귀를 차는 이도 많고, 스스로 실수를 처리할 수 없으니 반복되면 직원들에게 미안함과 위축이 동시에 쌓인다. 하루 일정은 늘 같고, 루틴은 거의 군대식이다. 아침에 세수와 양치, 기저귀 교체, 건강 체크, 약 복용이 순서대로 진행된다. CNA가 여러 명의 환자를 돌보는 구조라 속도는 늘 빠르다. 식사 시간엔 모두가 식당으로 모여든다. 혼자 먹기 힘든 사람들은 계속해서 누군가의 손에 의해 숟가락이 입에 들어간다. 자원봉사자가 있는 날이면 분위기가 조금 부드러워지지만 그렇지 않으면 식사는 효율을 기준으로 진행된다.


간호사는 침상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G튜브 피딩을 하고, 증상 변화가 있으면 온콜 닥터에게 전화해 오더를 받는다. 대부분의 시설엔 의사가 상주하지 않는다. 의료적 판단의 무게를 간호사가 실시간으로 떠안아야 하는 순간들이 많다. 정신없는 오전이 지나면 액티비티 시간이 이어진다. 환자들을 이동시키는 데만 한참이 걸리고, 풍선을 주고받는 정도의 간단한 활동이 전부다. 많은 환자가 멍하니 한곳만 바라보며 시간을 보낸다. 점심 후에도 음악 치료, 재활치료 등이 스케줄에 따라 이어지지만 참여하는 이들보다 참석했다는 기록이 더 중요한 경우도 있다.


아무 일 없는 평범한 날이면 저녁 식사 후 바로 잠자리에 든다. 방에 TV를 켜놓기도 하지만 시선은 화면을 통과해 어디론가 빠져나가 버린 것처럼 보인다. TV에서는 지역 로펌의 너싱홈 피해 소송 광고가 끊임없이 나온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광고조차 이곳의 현실을 비추는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이런 시설에서 전문적인 케어를 받으며 지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운이 좋은 경우다. 경제적 여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선택이다. 월 8천 달러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노후가 기다리고 있을지, 나 또한 확신할 수 없다. 다만 미국의 너싱홈에서 보내는 환자를 가까이서 지켜본 경험은 인간의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에 대해 깊은 질문을 남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블랙비어드 캐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