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의 라운지를 지날 때마다 카드게임이 하나둘 늘어나는 것을 보면, 여행이 절반쯤 지나고 있다는 신호이다. 일상의 속도에서 벗어나 조금은 느슨해진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비로소 노는 법을 떠올린다. 그러나 막상 그 순간이 찾아오면 어쩐지 서툴다. 인생을 소풍에 비유한 천상병 시인의 말처럼, 소풍에서는 공부보다 노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했지만 우리는 정작 그 능력을 배운 적이 없다. 어릴 적 소풍에서도 보물찾기를 놓치고 장기자랑 순서에 서지 못한다고 해서 소풍이 의미 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정작 인생이라는 더 큰 소풍에서는 점수 매기듯 살아오느라 잘 노는 감각을 잃어버리고 만다.
삶의 대부분은 해야 하는 일을 하며 흘러갔다. 돈을 벌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키우는 법은 많은 이들에게서 배워왔다. 그러나 이제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시간이 찾아오자 적잖은 혼란이 생긴다. 무엇이 진짜 나를 즐겁게 하는지, 어떻게 시간을 써야 소풍의 의미가 살아나는지를 우리는 거의 배워본 적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어설프게, 그러나 진지하게 잘 노는 법을 찾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마음을 다독이고, 누군가는 술자리를 통해 흥을 깨운다. 어떤 사람은 사람들 속에서 에너지를 얻고, 또 어떤 사람은 소비를 통해 기쁨을 느낀다.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고 나름의 방식이 있다. 정답이 없는 인생에서 각자가 선택한 모습일 뿐이다.
그러나 문득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소풍이 끝나고 돌아가는 날, 정말 즐거웠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남에게 설명할 수 없는 조용한 기쁨, 후회 없이 보내고 왔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그 대답을 얻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돌아보아야 한다. 내가 진정 원하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남에게 보이기 위한 소풍이 아니라 나만의 소풍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 천천히 묻는 시간이 필요하다. 인생의 후반부에 들어선 지금이 바로 그 물음에 답할 적기인지도 모른다.
후회 없는 소풍은 특별한 이벤트나 완벽한 계획에서 나오지 않는다. 어설퍼도 스스로 선택한 순간들, 그리고 그 순간을 온전히 살아냈다는 작은 확신에서 비롯된다. 그 확신을 쌓아가는 일이 바로 지금, 여기서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