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가볍게 스쳐 지나가는 아침, 카리브해 마지막 기항지인 Great Stirrup Cay는 작은 산호섬답게 빛이 먼저 반긴다. 바다 위에 떨어진 햇빛이 에메랄드빛으로 번져 나가며 섬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자연 그대로의 섬이라기보다, 철저히 설계되고 운영되는 하나의 거대한 리조트에 가까웠다. 바하마의 주권 아래 있지만 실질적인 운영권은 Norwegian Cruise Line에 있고, 크루즈 승객만 출입할 수 있다는 점이 그 분위기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섬 전체는 마치 하나의 테마파크처럼 구성되어 있었다. 선착장 대신 텐더보트로 오가는 과정부터 이곳이 아직 완전히 개발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러나 미완성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이미 섬 곳곳에는 수상 액티비티, 스노클링 공원, 전용 카바나, 해변 레스토랑 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얕은 바다는 눈이 부실 정도로 맑았고, 발을 담그자 차갑지만 기분 좋은 물살이 발목을 감쌌다. 모래사장은 산호가 오랜 시간을 거쳐 부서져 만들어진 것이라 발걸음마다 사각거렸다. 해변 곡곳에 드러난 암석화된 산호석들은 이 섬의 본래 얼굴을 조용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혼자 여행하는 이에게 이 모든 구성은 어딘지 모르게 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섬 어디서나 바베큐 냄새가 진동하고, 하늘을 가르는 집라인 소리, 물 위를 가르는 모터의 굉음이 끊임없이 들렸다. 방 번호만 알려주면 되는 구조 속에서, 무엇이든 소비로 귀결되는 흐름이 자연스레 몸에 스며들었다. 지갑을 꺼낼 일은 없지만, 어딘가에서 계속 계산되고 있다는 느낌이 선명했다. 휴식과 여유를 판매하는 방식이 이렇게 명료한 곳도 드물 것이다.
해변을 천천히 걸었다. 조개와 산호 모래가 뒤섞인 사장을 지나며, 이 섬이 가진 가장 솔직한 모습은 화려한 시설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순간도 길지 않았다. 저 멀리 또 다른 크루즈 회사가 보유한 상업용 섬이 보였다. 서로 다른 색의 깃발을 달았을 뿐, 구조와 운영 방식은 비슷해 보였다. 크루즈 산업이 만들어낸 전형적인 자본 구조가 그대로 복제된 작은 세상 하나하나가 바다 위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셈이었다.
마지막 기항지를 떠나는 길에, 이 섬에 남아 있는 것은 맑은 바다나 하얀 모래뿐만이 아니었다. 리조트화된 낙원을 소비하는 방식, 자연을 리조트의 일부로 편입시킨 구조, 그리고 여행이라는 경험마저 자본 흐름 속으로 흡수되는 과정이 유난히 또렷하게 보였다. 크루즈 여행의 끝자락에서 마주한 이 작은 산호섬은, 카리브해의 아름다움보다는 자본주의의 단면을 더욱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자연 위에 세운 인공적 paradise, 그리고 그 위를 조용히 스쳐 지나가는 한 사람의 발자국만이 바닷가에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