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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가 20-30% 떨어진다면

by 라온재

S&P500이 1년에 20~30%씩 떨어지는 상황을 떠올리면 마음이 불안해진다. 은퇴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하락장이 단순히 계좌의 숫자가 줄어드는 문제가 아니라, 생활비를 어디서 마련할 것인지와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극단적인 시나리오를 미리 생각해 보고, 그 상황에서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지 스스로 점검해본다.


우선,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주식을 팔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려 한다. 시장이 크게 떨어질 때 인출을 하면 손실이 바로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깊게 떨어진 시점은 이미 공포가 가장 극심한 때이고, 그 시점에서 팔면 회복할 기회는 멀리 달아난다. 그래서 나는 하락장의 중심에 있을수록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버티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믿는다.


이 버티기는 무작정 버티는 것이 아니라 준비된 버티기여야 한다. 그래서 나는 생활비 2년치 정도를 현금성 자산, 즉 머니마켓 계좌에 미리 확보해두고 있다. 이 돈은 주식과 상관없이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완충 장치다. S&P500이 20~30% 떨어지는 상황이라면 이미 시장은 깊은 침체에 들어간 상태일 텐데, 이런 때 생활비를 주식에서 꺼낸다면 계좌는 순식간에 훼손된다. 반면, 현금 버퍼를 사용하면 주식을 건드릴 필요가 없고, 주식 계좌는 그대로 둔 채 시간이 다시 흐르기를 기다릴 수 있다.


만약 하락이 1년이 아니라 2년, 혹은 그 이상 이어진다면 조금 더 세밀한 조정이 필요하다. 우선 나는 생활비 구조를 점검할 것이다. 여행이나 큰 지출은 잠시 미루고, 꼭 필요하지 않은 소비는 조심스럽게 줄인다. 이런 조정만으로도 주식을 건드리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시간이 꽤 늘어난다. 또 시장이 잠시 반등하는 작은 순간들—5%든 10%든—그런 흐름이 보이면 너무 욕심내지 않고 아주 소량만 인출해 현금 버퍼를 천천히 보충할 수도 있다. 거대한 회복을 기다리려 하지 않고, 작은 숨구멍이 열릴 때마다 조금씩 정리하는 방식이다.


그 사이에도 머니마켓의 이자, 연금, 기타 고정 수입 등이 작은 도움이 된다. 손실을 피하는 데는 큰 금액이 필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돈이 조금이라도 들어오고 있다는 느낌, 그래서 인출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여유다. 만약 정말로 극단적인 상황이 와서 현금 버퍼가 거의 소진된다면, 그때는 주식이 아닌 다른 자산들부터 인출하는 것이 마지막 방어선이 된다. 주식은 결국 회복력이 가장 강한 자산이기 때문에 가장 나중에 건드리는 것이 원칙이다.


이렇게 하락장 시나리오를 가만히 따라가 보면 결국 본질은 하나로 귀결된다. 살아남는 것은 예측 능력이 아니라 구조라는 사실이다. 내가 시장을 맞출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대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을 구축하게 된다. 레버리지를 쓰지 않고, 인덱스 펀드를 장기 보유하며, 생활비 2년치를 따로 떼어두는 것. 이 세 가지가 맞물리면 시장이 아무리 요동쳐도 휘청거리지 않을 수 있다.


하락장은 누구에게나 두렵다. 그러나 두려움이 투자 결과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미리 만들어둔 구조가 나를 지탱해주고, 그 구조가 충분히 단단하다면 20~30%의 급락조차도 결국은 지나가는 날씨처럼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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