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_칼세이건
“광막한 공간과 영겁의 시간 속에서 행성 하나와 찰나의 순간을 당신과 공유할 수 있음은 나에게 커다란 기쁨입니다 - 칼 세이건이 아내 앤 드루얀에게 ”
중학생이었던 어느 날, 버스정류장 앞 작은 서점에서 우주를 만났다. 칼세이건의 『코스모스』이다.
책에 가득한 화려한 우주 사진들도 매력적이지만, 칼세이건이 세상을 보는 시선은 사람을 매료시키기 충분했다.
뭐랄까. 낯선 곳에 발을 내디딘 순간, 시간조차 닿지 않는 어딘가에서 신성한 무언가가 나를 슬쩍 건드리고 간 것 같았다.
내가 이 책을 구입한 건, 1984년쯤, 가격은 3,500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_ 하여튼 내게는 500원짜리 동전 7개가 필요했다.
당시 노동자 평균 임금이 24만 원 정도였다고 하니, 감히 내가 넘볼 수 있는 가격은 아니었다.
문제는 이 책이 좀처럼 나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는 거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나는 서점 문을 밀고 들어가, 혹시 누군가 먼저 데려가 버릴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책을 확인했다.
결론을 말하면, 결국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나의 것이 되었다. 그러나 그 안에는 결코 작지 않은 범죄가 숨겨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잔뜩 풀 죽어 집으로 돌아온 나는 거실 장식장 위에 놓인 저금통을 발견했다. 부모님이 태국여행 후에 사 오신 화려한 안장을 두른 코끼리 모양의 저금통이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날따라 아주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처음 동전을 넣던 날, 아버지께서는 이 저금통에는 꼭 500원짜리 동전만 넣자고 하셨다. 당시 500원짜리 동전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 어머니는 500원짜리 동전으로 저금통이 가득 차면 상당한 금액일 거라고 기대하셨다.
'500원짜리 동전...이라고..?'
순간, 나쁜 생각이 슬금슬금 기어올라왔다. 딱 7개만 있으면 된다. 돼지저금통처럼 배를 따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들킬 염려도 없어 보였다. 게다가 저금통을 여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동전을 저금통 뒷면의 작은 홈에 끼워 넣고 조심스레 돌리는 방법으로 간단하게 돈을 빼낼 수 있다.
어쨌든... 드디어 그 생각을 현실로 만들고 말았다. _당시 나는 저금통의 무게를 맞추기 위해서 100원짜리 동전을 여러 개 넣었다. 그게 말이 돼? 지금 생각해 보아도 진짜 나쁜 아이가 아닌가.
일은 저질러졌고, 에라 모르겠다. 그 길로 곧장 서점으로 달려갔다.
"드디어 사는 거냐."
서점 주인은 나의 범죄를 다 아는 듯한 표정으로_그 당시 내 생각에는 그렇게 보였다. 내게 책을 건네주었다. 그렇게 꿈에 그리던 『코스모스』를 품에 안았다.
물론, 나의 범죄를 들키기까지 엄청난 죄책감도 함께 안아야 했다.
『코스모스』는 단지 별과 은하를 나열하는 책이 아니다. 칼 세이건은 과학을 도구로, 철학자의 언어로, 시인의 심장으로 말했다.
우리 모두는 별의 먼지로 만들어졌다고. 우리 DNA의 질소, 우리 이빨의 칼슘, 우리 혈액의 철분, 우리가 먹는 사과파이의 탄소까지, 모두 오래전 붕괴한 별들의 심장에서 태어난 것이라고.
The cosmos
is all that is or ever was or ever will be.
코스모스는 존재했던 모든 것이며, 존재하는 모든 것이며, 존재할 모든 것이다.
We are a way
for the cosmos to know itself.
우리는 우주가 스스로를 이해하려고 만들어낸 하나의 방법이다.
우주 안에서 질서가 태어나고, 질서 속에서 생명이 탄생한다. 그 생명은 단순한 생존의 기계가 아니라, 의식이라는 불가사의한 창을 열었다.
우리는 단순히 우주 안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우주가 스스로를 바라보기 위해 스스로 빚어낸 통로이다.
We are made of star-stuff.
우리는 별의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Reading is a means of time travel.
책을 읽는 것은 시간을 여행하는 것이다.
Science is more than a body of knowledge;
it is a way of thinking.
과학은 단지 지식의 집합이 아니라, 하나의 사고방식이다.
우리는 원자들의 집합체지만,
그 원자들은 별의 죽음으로부터 태어났고,
별빛은 우리의 세포와 기억 안에 살아 있다.
우리가 하늘을 올려다볼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우리의 뿌리가 땅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에 닿아있다는 것을.
2025.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