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디지털 - 기술이 머뭇거리는 사회

디지털 이전의 삶이 여전히 남아 있는 도시에서

by KOSAKA

브런치스토리의 키워드 6

6. 디지털 : 연결 속의 고립, 그리고 소통
키워드 : 디지털 전환, DX, 팩스, 연결, 정보
주요내용 : 기술은 점점 빨라지는데, 사람들의 리듬은 오히려 느려집니다.

디지털이 사회를 바꾸기 전에, 일상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살펴봅니다.


일본, 그리고 오사카에서 살다 보면 이상한 장면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스마트폰 하나면 모든 것이 가능한 시대에, 아직도 팩스를 사용하는 병원과 관공서, 현금만 받는 동네 식당, 오프라인에서만 예약이 가능한 전통시장, 심지어 홈페이지는 있지만 PDF 하나 업데이트되어 있지 않은 상점까지. 디지털화가 전 세계적으로 속도를 올리는 사이, 일본은 그 속도에서 한 발 물러선 듯 보인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도 있는 이 ‘느림’이 이 도시에서는 너무도 당연하게 작동한다. 기술이 충분히 준비되어 있어도, 사회 전체가 그 기술을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라는 걸, 나는 오사카에서 살며 처음으로 체감했다.


일본은 자주 ‘디지털 후진국’이라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그것은 기술 자체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일본은 하드웨어적으로는 강한 나라다. 초정밀 센서, 세계 수준의 제조 시스템, 고속 통신망, 보안 기술. 문제는 그것을 삶의 구조와 연결하는 능력, 다시 말해 ‘전환’(transition)이다. 디지털이 삶을 덜어주는 것이 아니라, 불편하게 만드는 것처럼 느껴질 때, 사람들은 기술보다 종이를 선택하고, 앱보다 수첩을 선호하며, 온라인보다 대면 접수를 고집하게 된다. 디지털 전환의 속도는 결국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심리와 시스템의 설계에서 결정된다. 일본은 바로 그 부분에서 망설이고 있다.


오사카에서도 마찬가지다. 시청의 온라인 민원 시스템은 있지만, 여전히 종이 서류를 출력해 도장 찍어야 하는 일이 많다. 은행 업무는 대부분 창구를 통해서만 가능하고, 전자결제도 한정된 앱만을 지원한다. 한국처럼 ‘모든 걸 스마트폰 하나로 해결한다’는 생각은 이곳에선 아직 현실이 아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 느림은 단지 불편함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어떤 장면에서는 오히려 사람들 사이의 예의나 신뢰, 물리적인 감각을 보존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오사카의 주민센터에서 대기표를 뽑고 줄을 서고 직접 담당자와 마주하는 구조는, 단지 아날로그 방식이라서가 아니라 ‘고민을 직접 전하고, 얼굴을 보고 해결받는다’는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 방식으로서 기능한다.


물론 이 느림이 모든 면에서 긍정적인 건 아니다. 디지털 약자는 늘어가고, 종이 서류의 반복은 행정 피로를 높이며, 기계에 맡겨야 할 단순한 절차들이 사람의 노동을 낭비하게 만든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일본 내에서도 디지털 전환이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지만, 여전히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실패에 대한 책임 회피’가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 기술을 도입하는 것 자체보다, 그 도입이 실패했을 때 누가 책임질 것인가를 더 먼저 묻는 문화에서는, 아무도 새로운 시스템을 쉽게 설계하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오사카 시민들이 디지털에 둔감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젊은 세대들은 자신의 영역에서는 적극적으로 기술을 활용한다. SNS 기반의 정보 교환, 스마트폰을 통한 예약과 결제, 디지털 창작 도구의 사용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문제는 개인의 영역에서 익숙한 디지털 감각이 사회 전체로 확장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직, 행정, 공동체 단위에서는 여전히 ‘모두가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자’는 신중함이 지배한다. 그 조심스러운 균형 감각이 오사카라는 도시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는 동시에, 때로는 변화의 문턱을 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곳에서 디지털은 늘 ‘조금 부족한 상태’로 작동한다. 너무 빠르지도 않고, 너무 느리지도 않은, 중간의 어딘가. 그것은 때로 답답하지만, 때로는 안정적이다. 그리고 나는 오사카의 이 느린 속도에서 ‘기술에 대한 낭만 없는 감각’을 발견한다. 일본은 기술을 믿기보다는 의심하고, 무조건 편리함보다 예측 가능한 구조를 선호하며, 빠른 것보다는 검증된 것을 택한다. 디지털 전환도 그런 시선 아래 놓여 있다. 그래서 여기서는 변화보다 지속, 혁신보다 안정을 먼저 이야기한다.


오사카의 느린 디지털은 단지 기술이 늦어서가 아니라, 속도를 삶에 맞추려는 시도로도 읽힌다. 효율만을 추구하지 않는 도시, 감정을 정리하지 않는 사람들, 말 대신 구조로 설득하는 마케터들. 그들이 만드는 일상은 빠르진 않지만 무너지지 않고, 답답하지만 이상하게 안심이 된다. 결국 디지털도 이 도시에서는 ‘말하지 않아도 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쓰고 있지만 과하게 드러나지 않고, 편리하지만 삶을 침범하지 않는 것. 오사카 사람들은 어쩌면 그런 디지털을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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