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의 공식언어 "아랍어"

붉은 사막, 요르단에서 살아가기 위한 안내서

by Anwar Kim

요르단의 공식 언어는 아랍어다. 이 언어를 읽고 쓰는 한국인은, 아마 몇천 명 안에 들 것이다. 그중 하나가 된다는 건, 중동의 문을 여는 특별한 열쇠를 손에 쥐는 일이다. 중동은 흔히 ‘기회의 땅’이라 불린다. 오일머니가 만든 환상이 사람들을 이끌지만, 막상 발을 디뎌 살아보면 현실은 그렇게 만만치 않다. 사막성 기후와 강한 햇볕, 익숙지 않은 문화도 벅차지만, 가장 높은 장벽은 단연 언어다.

외국인들이 모여 사는 지역에서는 영어만으로도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그러나 긴급한 상황이나 시장·교통 같은 실생활에서는 한마디의 아랍어가 생존을 좌우한다. 능청스러운 상인들 틈에서 바가지요금 없이 물건 하나 사려 해도, 이들의 언어를 알고, 응수할 줄 알아야 한다.

아랍어.png 아랍어 앞파벳

아랍어는 쉽지 않다. 말하는 사람의 성별과 상황에 따라 인칭이 바뀌고, 일상 회화인 ‘암미야’와 문어체인 ‘푸스하’는 문법 구조부터 다르다. 같은 아랍어권 국가라도 발음이나 단어의 쓰임새는 천차만별이다.

모로코나 튀니지 사람들과 아랍어로 대화를 시도해 보면, 낯선 단어들이 먼저 튀어나온다. 프랑스어의 영향을 짙게 받은 북아프리카식 아랍어는, 같은 언어라기보단 전혀 다른 언어처럼 들리기도 한다.

요르단 안에서도 지역에 따라 억양과 표현이 다양하다. 우리나라의 사투리처럼, 지방마다 고유한 단어와 말투가 살아 있다. 특히 유목을 삶의 일부로 여기는 베두인들의 아랍어는, 심지어 같은 요르단 사람들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독자적인 언어체계를 지닌다.

문자체계 역시 복잡하다. 아랍어는 28개의 알파벳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단어 안에서의 위치—어두(단어 처음), 어중(중간), 어미(끝)—에 따라 형태가 달라진다. 하나의 글자가 세 가지 모습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처음 아랍어를 배울 때, 나는 마치 3단 변신 로봇을 만난 것처럼 당황했다. 게다가 한국어에는 없는 독특한 소리가 많다. 혀끝과 목젖, 입천장을 넘나드는 미묘한 차이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면, 전혀 다른 의미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말 한마디가 웃음을 부르고, 또 다른 말 한마디는 실수를 낳는다.


아랍어2.png 아랍어 문제

아랍어는 언어인 동시에 예술이었다. 이슬람 세계는 신에 대한 경외심으로 인해, 그림이나 조각을 금기시했다. 그 대신 글자와 건축으로 자신들의 믿음과 미감을 표현했다. 스페인의 알람브라 궁전, 인도의 타지마할. 이슬람 건축의 정점이라 불리는 이 두 곳에는 화려한 아랍어 문양이 천장과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초기 불교에서도, 불상을 만들 수 없던 시절에는 마찬가지로 건축과 서예로 신앙을 드러냈다. 종교는 형태를 넘어서, 언어로 예술이 되었다. 6세기 칼리프 시대에 아랍어는 코란의 정리와 필사를 통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당시 코란은 인쇄가 금지되어 있었다. 신의 계시로 받아들여진 코란은 필사만이 허용되었고, 그 당시 코란을 필사하던 언어는 푸스하 지금까지 이어진 문어체 아랍어이다. 1,400년 전의 언어를 현대까지 보존한 셈이다. 반면 서양에서는 인쇄술의 발전과 함께 성경이 대량으로 보급되었다. 개인이 성경을 소유하는 것조차 불법이던 시절에서 벗어나, 성경은 활자와 함께 거리로, 가정으로 퍼져나갔다.

종교의 전파에 기술이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보여주는 예다. 만약 코란도 일찍 인쇄되었더라면, 오늘날 이슬람 세계는 또 다른 양상을 보였을지도 모른다.


아랍어3.png 아랍어 켈리그라피 "Anwar"

그럼에도 아랍어는 의외로 간결하다.

“나는 너의 가방을 원한다” 는 말을 아랍어로는 단 두 단어, “비디 산탁(biddi santak)”으로 표현할 수 있다.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 이 간단한 구조는 큰 장점이 된다. 그러나 모든 언어가 그렇듯, 아랍어도 종종 뜻밖의 함정을 품고 있다. 같은 발음이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특히 많아, 의도하지 않은 상황을 종종 만든다.


나는 요르단에서 물건을 살 때마다, “키스”를 요구한다. 남자든 여자든, 어른이든 아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그 누구도 나의 요구를 거절한 적 없다. 심지어 모두가 흔쾌히 “키스”를 건넨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키스’는 한국어 ‘비닐봉지’를 뜻하는 아랍어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귀에는 다소 충격적인 이 단어는, 요르단에서는 일상적인 상점용어다.


요르단에 도착한지 얼마안된 한국 여성에게 내가 그녀 옆에 있는 봉지를 건네 달라고 부탁했을 때였다.
나는 자연스럽게 말했다. “아띠니 키스(봉지 좀 주세요).”
그녀는 순간 얼어붙은 얼굴로 되물었다. “네? 지금 뭐라고요?”
나는 아무렇지 않게 다시 한번 말했다. “키스요”
그제야 내 말의 오해를 알아차리고, 직접 봉지를 가리키며 “이게 키스입니다”라고 설명해야 했다.
미친 사람보 듯한 그녀의 표정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비슷한 예로, ‘까까’는 한국에서는 귀여운 과자를 뜻하지만, 요르단에서는 ‘똥’을 의미한다. 아이에게 “까까 먹자”라고 말했다가는, 두고두고 회자될 사건이 될 수도 있다.

‘파인(fine)’은 영어로는 ‘괜찮은’, ‘좋은’이라는 뜻이지만, 아랍어로는 ‘휴지’를 뜻한다. 요르단의 한 휴지 회사는 실제로 ‘파인’이라는 브랜드명을 사용하고 있다. 처음엔 영어에서 따온 말이라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그것이 곧 일상어였다. 휴지 이름이 ‘좋음’이라니 그야말로 언어유희의 극치였다.


아랍어는 이곳의 문화와 종교, 사고방식이 녹아든 살아 있는 언어이다.
웃기고, 당황스럽고, 종종 내 무지를 드러내지만, 그 모든 순간이 나를 이곳 사람들과 조금씩 가깝게 만들어주었다. 요르단에서의 언어생활은 매일이 작은 도전이며 탐험이다. 그리고 그 탐험은 나에게 하나의 진실을 가르쳐주었다. 언어는 벽이 아니라, 다리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 다리를 건너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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