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말은 잘못이 없다
대학 입학 때,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초면에 반말을 날리는 선배들이 많았다. 친해지기 위해 말을 편하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별로였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선배들이 이해가 된다. 지금은 반말이 지닌 특수성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반말은 내 기준에서, 상대와의 가까운 거리감을 상징한다. 반면 사람들에게 반말은 친분을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반말은, 나는 친해진 뒤에 듣고 싶지만 상대는 편해지기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초면에 반말을 듣는 이는 불편하지만 사용하는 이는 편한 관계를 만드는 것이 반말이다. 여기에 반말의 강제성을 잘 이용하는 사람일수록 그 효과는 더욱 커진다.
사실 반말은 잘못이 없다. 문제는 순서에 있을 뿐이다. 친구가 되기 위한 유쾌한 대화와 조심스런 예의가 바탕된 태도로 차근차근 관계의 안정감을 쌓아야 하지만, 이 앞선 것(귀찮은)을 스킵하고 (내가) 편한 친구가 먼저 되려는 욕심에 반말로 만들어진 편함을 악용하고 있다. 아마 모두 알고 있음에도 어느 순간부터 순서가 뒤바껴 버린 것을 모른 체 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우리나라는 급격한 발전을 이룬 기적 같은 나라다. 하지만 기적과 같은 발전에 따른 부작용이 사람들을 바꿔놓은 것이 아닌가 싶다. 동방예의지국[東邦禮義之國]이라던 과거의 명성은 온데간데없고 지하철에서부터 삶 곳곳 어디에서든 반말을 싸지르며 서로를 욕하는 동영상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는 이기적인 인간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수백 년간의 노력으로 어렵게 얻은 예의지국의 이미지가 퇴폐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정의하는 것이 우선이다. 알아야 한다. 우리가 지금, 친구는 만들어야겠고, 인싸도 되어야겠고, 필요할 때 도움은 요청하고 받아야겠어서 순서 없이 아무나를 친구로 오해하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나이, 수직적 문화를 이용해 남을 쉽게 대하고 반말하는 버릇을 고쳐야 한다. 나 편하기 위해서가 아닌 상대방을 위해서, 그와의 관계에서 적절한 타이밍에 반말을 등장시켜야 한다. 반말, 그 자체는 잘못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