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수영장에서 특별한 공연. 이름 새긴 춘자

by 필이

춘자는 자신의 핸드폰을 원이에게 내민다. 수영장이 있는 사진이 보인다.


“원아, 여 함 봐라. 우리 자는데 바로 앞에가 수영장이란다. 그때 생각나나? 필리핀 갔을 때. 해지도록 수영하고 타월 한 장 두르고 숙소 들어오고. 얼매나 좋더노? 하루는 밤늦게 수영하는데 비가 와가지고. 쌍무지개도 봤다 아이가. 거 조명에 비친 건데. 그래도 우리 예쁘다고 안 그랬나. 우리 그때 생각하면서 하루 푹 쉬는 거제. 솔도밴드 공연도 보고.”


“그러기엔 하루 숙박비가 좀 많이 세다.”


“그렇긴 하다. 하룻밤 자는데 오십만 원이면……. 그래도. 이럴 때 아이면 언제 우리가 이런 사치를 누려볼끼고? 우리가 날마다 이라는 것도 아이고. 하루다 하루. 하루만 우리를 위해서 비싼 데 자보자.”

이리하여 거리만 440km! 도착하는 데만 7시간이 넘게 걸려 강원도 양양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솔도밴드 공연이 있다. 가까우면 입장권만 끊어서 공연을 다녀와도 좋겠지만 춘자가 있는 곳에서는 어림도 없다. 게다가 스탠딩 공연이란다. 앉아서 하는 공연도 긴 시간 다리가 괜찮을지 걱정인 판에 서서 공연을 함께 하다니!


처음 춘자는 강원도 공연 소식을 듣고 갈 엄두도 내지 못한다. 거리도 거리지만 스탠딩 공연이라는 부담이 크다. 하지만 부산에서의 첫 직관을 잊을 수가 없다.


‘가고 싶다. 그런 황홀을 또 경험할 수 있다면……. 솔도밴드 분들을 직접 볼 수만 있다면……. 스탠딩만 아이면 어찌……. 아이다. 아이다. 스탠딩이라 더 가깝게 본다잖아? 더 재밌다는데. 이번 기회 아이면 언제 경험해볼끼고. 가는 기다. 서서 보다가 힘들면 숙소로 들어오면 되고. 아무래도 안되겠다. 원이를 꼬셔봐야겠다. 보디가드로 같이 가자고. 흐흐흐흐흐’


춘자의 간절함이 이기는 순간이다.


“아직 시간이 안 됐는데 들어가도 되예?”



“네, 3시가 입실이긴 한데 방이 다 정리가 돼서 들어가셔도 됩니다. 멀리서 오셨는데 특별히 체크인 해드릴게요.”


“하이고마, 친절하네예. 고맙십니더. 아참, 오늘 여 솔도밴드 공연있지예? 그거 보러 왔어예.”

“네? 그럼. 그 먼곳에서 오신 게 솔도밴드 공연을 보러 오신 건가요?”

“네, 맞십니더. 솔도밴드 공연 볼라꼬 이래 멀리서 왔어예. 새벽같이 출발해갖고예.”


춘자는 자랑스럽다는 듯이 웃는다.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는 듯이.


“대단하십니다. 아, 그럼 좋은 소식이 되겠네요? 솔도밴드 공연이 고객님 숙소 바로 앞 수영장에서 하거든요.”

“야? 뭐라고예? 지가 놀라니까는 사투리가 막 더 튀어나와갖고 마. 그라이까. 공연을 내가 잠자는 방 바로 앞에서 한다고예?”


“네, 원래 공연 장소가 이쪽 야외 라운지였는데요. 지난 주에 공연하는데 해가 져도 너무 덥더라구요. 그래서! 수영장에 무대를 설치했어요. 고객님 숙소 바로 앞이죠.”

마지막 ‘고객님 숙소 바로 앞이죠’라고 말할 때는 좀 더 강조하며 한 음절씩 끊어서 말하는 것 같은 건 춘자의 착각일까. 아니다. 카운터 직원은 이 소식을 전하게 되어 기쁘다는 듯이 환하게 웃는다. 엄마에게 칭찬을 바라는 아이처럼 기대하는 눈빛으로 춘자를 바라보면서.


“잠깐만예. 거 좀 있어보소. 지가 좀. 거시기요. 진정이 안되갖고예. 그라이까. 솔도밴드 분들이 지가 있는 방 앞에서, 바로 코 앞에서. 그래 공연을 한다~ 이말입니꺼?”

“네, 그렇죠. 아, 3시부터는 리허설도 할 거예요. 고객님 계신 곳 바로 앞에서 말이죠. 리허설도 보실 수 있어요. 고객님 바로 코 앞에서 말이죠. 아하하하하”


이번에는 ‘코 앞에서’가 강조된다. 마치 음표 위에 스타카토 점이라도 있는 듯 ‘코! 앞!’을 똑똑 끊어서 말한다. 손가락도 들다가 얼른 내리는 것이 아마도 춘자 코를 ‘콕!’하고 짚으려던 게 아닌가 싶다.

카운터 직원은 자랑스러운 소식을 전한다는 듯 이번에도 춘자를 바라본다.

“옴마야, 이게 무시기고? 가만 있어보소. 그라이깐. 조금 있으면 우리 솔도밴드 분들 리허설도 볼 수 있다 이말이네예? 그것도 지가 있는 숙소 바로 코! 앞!에서예?”

춘자도 직원을 따라 ‘코! 앞!’을 똑똑 끊어서 말한다. 검지 손가락으로 자신의 코를 짚으면서.

“그렇죠. 고객님!”

“얼른 들어가서 옷부터 갈아입고예. 아이다. 우예야 되노. 원이야, 원이야.”


춘자는 갑작스러운 소식에 어쩔 줄을 모른다. 또다시 심장이 펌프질을 요란하게 하기 시작한다.


“엄마, 일단 좀 쉬라. 리허설 시작하면 소리가 날 거니깐. 그때 깨울게. 새벽부터 운전해서 왔잖아. 좀 쉬야 나중에 공연도 보지. 좀 자라.”


“그래야겠제? 나중에 공연까지 다 볼라카면 좀 자야되겄제? 리허설 시작하기 전에 깨아도. 내 쪼매만 자께.”

자려고 침대로 가던 춘자가 갑자기 생각난 듯 원이를 바라본다.

“그란데 안있나. 있다가 리허설 보러 갈 때 솔도밴드 굿즈 티 요고 입고 나가도 되겄나? 요 팔찌하고. 슬로건은 들고 있으면 좀 웃기겄제?”

“그렇게까지 하면 너무 티 내는 거 같지 않을까?”


“그렇겠제? 부끄럽기도 하고. 안 보이는 데서 살짝 봐야겄다. 부끄러버서.”


심장이 뛰어서 잠이 올까 싶었건만 어느새 춘자는 코를 골며 잔다. 새벽같이 출발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잔 데다 7시간이 넘는 운전이 피곤했나 보다. 길이 막혀 아침밥을 먹는다고 휴게소 잠깐 들린 것 말고는 논스톱으로 왔으니 피곤 할만하다.


둥둥

팅팅

웅~~~


춘자는 바로 옆에서 들리는 요란한 소리에 눈을 번쩍 뜬다. 아들 원이도 피곤했는지 옆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춘자는 살짝 문을 열고 내다본다.


진짜다! 있다! 진짜 있다!

솔도밴드 멤버들이 악기를 세팅하고 있다. 찍~ 소리도 나고 쿵쿵 소리도 나고, 띠~~잉~~ 소리도 나고 갖가지 소리가 들린다.


잠잠하던 춘자의 심장이 또 난리가 났다. 고속 펌프질이 시작된다. 춘자는 소리에 이끌리듯 바깥으로 나간다. 문 하나만 열면 바로 수영장이다. 수영장 바로 앞이 무대다. 춘자가 있는 방 바로 앞이 무대라는 말이다. 춘자는 살금살금 걷는다. 솔도밴드 멤버들이 더 잘 보이는 곳으로 간다 무대 전체가 바로 보이는 곳으로!


‘잠깐만 있어봐라. 저게 누꼬? 무대 위에는 우리 솔도밴드. 도님, 미님, 라님, 파샆님. 어라? 우리 솔님이 없네? 가만 있어보자. 여 앞에 있는 기 솔님이가? 솔님 맞는가베. 옴마야, 우야노. 우야노. 가만 있어봐라. 뒤로 돌아보면 안된께 쪼매 내가 더 뒤로 가야겄다. 옴마야, 우짜노. 완전히 마 리허설을 나를 위해서 하네. 나를. 이 춘자를 위해서! 내밖에 없다. 우째 이런 일이. 옴마야.’


춘자는 뒷걸음으로 살짝 더 뒤로 물러난다. 솔도밴드 굿즈 티를 입니 팔찌를 끼니 슬로건을 들고 있느니 야단이더니. 막상 혼자만 리허설에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에 얼굴이 붉어진다. 솔도밴드 멤버들이 당연히 자신을 알리 없건만. 혹시라도 자신을 알아보기라도 할까 부끄럽다.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야단이다.

“아, 투숙객이시죠? 오늘 저녁 공연이 있는 거 아시지요? 그 리허설 한다고 조금 시끄러울 거예요. 양해부탁드립니다.”


직원이 춘자에게 고개를 까딱하며 친절하게 이야기한다.

“아입니더. 괘안십니더. 지가 솔도밴드 분들 볼라꼬 왔는데예. 리허설도 보고 더 좋십니더.”


“아, 그러세요? 솔도밴드 공연보실려고 투숙하신 거예요?”


“네, 집이 쪼매 멀어갖고예. 당일로는 다녀갈 수가 없어갖고…….”

“실례가 안되면 어디서 오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아, 예. 지는 저짜 경상도 저짜 산골짝에서 왔어예.”


“예? 그 먼 곳에서 여기까지 오셨다고요? 솔도밴드 공연을 보실려고요?”

“예…….”


춘자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직원이 누군가를 향해 손짓한다.

“솔아, 여기 와봐라. 너희 보려고 저 멀리 경상도 산골에서 오셨단다.”

솔님이다. 솔님을 부른 것이다. 직원분 말에 솔님이 이쪽으로 돌아본다. 그리고 이쪽으로 걸어온다. 춘자에게로! 춘자 바로 앞으로!

이 순간 춘자 얼굴이 하얗게 질리지 않았을까? 숨이 멈추었으니 말이다. 아니다. 벌겋게 타올랐을지도 모른다. 심장이 초고속으로 펌프질을 해댔으니. 뜨거운 피가 얼굴로 쏠려 불이 났을지도 모른다.

“어머, 저희를 보러 오셨다구요?”


“네. 닐리리입니더. 닐리리 춘이라꼬예. 팬 카페 가입한지는 얼마 안됐십니더. 지난 번에 부산 공연이 너무 좋아갖고. 지가 또 이렇게…….”


갑자기 수줍은 처녀가 되었는가. 춘자는 소개팅에 나온 소녀라도 된 듯 수줍다. 묻지도 않은 말까지 다 하며 자기 소개다.

“아, 춘이님?”

“예. 지가 춘입니더. 아십니꺼? 지를 어찌 아십니꺼?”

“춘이님! 역사여행. 너무 재밌게 보고 있어요.”

“아, 솔님도 그거를 보십니꺼? 솔도박물관에 들어오시는 거라예?”

“그럼요. 춘이님! 솔도박물관도 자주 들어가고 춘이님 글도 다 읽었어요. 글을 참 재밌게 쓰시더라구요.”

“…….”


춘이는 말을 잃었다.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다. 이순간 영혼이 빠져나가 저~~어기 먼 우주로 가버렸다. 어찌 제정신을 갖고 서 있겠는가.

“너희들 본다고 그래 먼데서 왔단다. 고마운 분이다. 가만 있어봐라. 저, 춘이님이라고요? 완전 찐팬 같은데……. 솔이랑 같이 사진 한 장 찍으실래요? 기념이 될텐데요.”


“네? 네. 네?”


“춘이님. 원래 제가 메이크업 전에는 사진을 안 찍는데 특별하시니깐 같이 찍어요.”

“아, 고맙십니더.”


꿈인가 생신가. 리허설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것도 바로 코 앞에서. 관객은 오롯이 춘자 혼자인 리허설! 춘자를 위한 리허설이라며 좋아한 것도 모자라 이제 솔님과 같이 사진을 찍다니. 춘자의 영혼은 우주에서 돌아올 줄 모른다.


“지가 솔도밴드 굿즈 티랑 팔찌랑 거 뭐시기고 슬로건 하고 다 갖고 왔는데예. 옷하고 갈아입을라카니깐 울 아가 너무 티 내는 것 같다고. 그래가 안 입었더만. 아쉽네예. 그거 입고 찍으면 더 좋을긴데…….”

“아이랑 같이 오셨어요?”


“야, 아, 저기 나오네예? 자고 있더만 어찌 지 이야기하는 줄 알고 나오는지……. 아하하하하”


“아드님 멋지네요. 아드님이랑도 같이 찍을까요?”


“야?”


춘이는 놀란 나머지 사투리가 심하게 튀어나온다. 솔님 앞이라 최선을 다해 사투리를 안 쓰려고 하건만 놀란 마음에 사투리가 더 나온다.


솔님을 가운데 두고 원이와 춘자가 양옆으로 서서 사진을 찍는다.

찰칵!

이 순간의 행복이 영원히 기록되는 찰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