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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쓸쓸함은 오천 원을 넘지 않아

그럼 얼마야?

by 김성수

가끔 웃고 싶을 때 찾아보는 광고가 있다. 한 카드사의 광고인데, 제작사는 '돌고래 유괴단'이다. 개인적으로 웬만한 코미디 프로그램보다 더 웃기다고 생각한다.


광고는 이렇게 시작한다.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표정을 한 남자가 바(Bar)에 들어와 말한다.

"여기, 쓸쓸함 한 잔 주시오."


바텐더가 값비싼 위스키를 권하자, 남자는 나지막이 답한다.

"난... 조금 저렴하게 쓸쓸하고 싶은데."


바텐더가 조금 더 싼 술을 내밀지만, 남자는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 마침내, 이 광고의 역사에 길이 남을 명대사를 뱉어낸다.

"내 쓸쓸함은, 오천 원을 넘지 않아."


결국 그는 5천 원짜리 생맥주 한 잔으로 자신의 쓸쓸함을 달랜다.


https://youtu.be/UrEHWclh7Co?si=EwJrJExT3mO_co1v


2022년에 나온 이 광고를 2025년인 지금도 찾아보는 이유는, 단순히 웃기기만 해서는 아닐 것이다. 나는 이 광고를 볼 때마다, 이 기발한 문장 앞에서 잠시 생각에 잠기곤 한다.

'쓸쓸함에 가격을 매길 수 있을까?'


처음에는 생각했다. 어쩌면 쓸쓸함의 진짜 정체는, 멋진 바에서 비싼 술 한잔 시킬 여유가 없는 '주머니의 가벼움'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나는 안다. 텅 빈 지갑보다 더 시린 것은, 텅 빈 마음이라는 것을.


사전에서는 '쓸쓸함'을 "홀로 있어서 외로운 상태"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 정의를 조금 바꾸고 싶다. 쓸쓸함이란 홀로 있는 물리적인 상태가 아니라, 마음속 채워지지 않는 빈 공간의 크기일 것이다.


광고 속 남자는 그 거대한 허전함을 고작 오천 원으로 채우려 했다.

그 모습이, 어쩌면 나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나의 쓸쓸함 역시 '주머니'가 아닌, '마음'의 허전함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무엇으로 나의 빈 공간을 채워야 하는가?


현재, 나는 글쓰기로 쓸쓸함을 채우고 있다.


당신의 쓸쓸함의 가격은 얼마인가?
그리고 그 쓸쓸함을 채우기 위해서는,
얼마가 필요한가?
아님 그 무엇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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