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여긴 어디.. 누구세요!??"
"이 우주들을 창조한 신이다."
그는 마치 자신이 신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듯이 하얀 도복을 입고 있었다. 수염은 더 이상 젊은 티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새하얫고 키는 훤칠하니 신선과도 같았다. 보아하니 사이비 종교 단체에 발을 잘못 들인 것이 뻔했다. 나는 상대의 속임수에 속아 넘어가지 않으려 당황한 기색을 감추고 말했다.
"신이면 내 앞에 당장 치킨을 가져다줘요!"
"안타깝게도 난 그런 건 못해. 처음 우주들을 창조하고 나서부터는 자연의 섭리를 지켜볼 수밖에 없어. 그나마 네가 상상했던 신의 능력이라면 죽은 생명들을 무로 보내거나 유로 다시 탄생시키는 능력 정도는 가지고 있지. 그래서 내가 너 앞에 있는 거야. 널 무로 보낼지 유로 돌려보낼지 선택해야 해."
"난 그 말 믿지 않으니까 출구가 어딘지나 알려줘."
난 출구를 찾아 도망치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뒤늦게 둘러본 주변에는 수백 개의 구슬들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배경은 온통 하얀색으로 덮여 있었고 수백 개의 구슬들은 영화에서만 보던 우주와 매우 닮아 있었다. 은하계와 별처럼 보이는 다양한 색감의 실오라기들이 구슬들 속에 갇혀 있었다. 구슬을 보다가 자칭 신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말한 것이 떠올랐다.
"아까 우주들이라고 했지? 저 구슬들을 우주들이라고 부르면서 수집하고 있는 거야? 너랑 말장난할 시간 없어!"
"여기 온 사람들은 전부 똑같은 반응이구먼. 나도 장난칠 생각 없으니 속는 셈 치고 날 따라와 봐. 이 85번 구슬이 네가 살던 우주야. 이 우주 안에는 너의 행성인 지구도 있어."
그가 손가락을 85번 구슬에 대고 화면을 확대하듯이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구슬 속에 은하계들이 점점 좁혀지더니 뭔가 익숙한 별이 보이기 시작했다. 태양이었다. 그는 계속 확대하여 빨간 행성을 가리키며 지구라고 우겨댔다. 난 이것이 현실인지 꿈인지 점점 헷갈리기 시작했으며 조금 속아 넘어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 잠시만. 이 구슬의 정체가 뭐야! 그리고 이 빨간 행성이 지구라고? 내가 살던 지구는 이렇지 않아! 바다와 육지가 파릇파릇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잠시만, 내가 살아왔던 기억이 생각이 안 나!"
"원래 죽으면 이승의 기억들은 사라져. 당황할 거 없어. 내가 너에게 세상의 진실을 알려줄 테니까. 먼저 네가 왜 죽어서 여기로 왔는지, 네가 살던 지구는 왜 피바다가 되었는지 보여줄게."
그는 구슬을 다시 만지작거리더니 나의 어릴 적 모습을 영사기처럼 띄워 내가 살아온 모습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기억이 없는 내가 기댈 곳은 저 영상밖에 없었기에 일단 그를 믿어보기로 했다.
"네가 살던 지구의 저작권법은 수백 개의 지구 중에서 가장 엄격하고 민감했어. 이름이 같으면 뒤늦게 이름을 부여받은 자가 저작권법에 의해 벌을 받기에 무조건 이름이 모두 달라야 했어. 이뿐만이 아니야. 음식의 맛은 성분의 조합, 재료의 종류 등 매우 절대적인 기준에 의해 분류되었으며 맛이 똑같다면 저작권법에 의해 벌금을 내야 하기도 했어. 그나마 다행인 건 메뉴가 같아 보여도 소금의 양이 0.1g만 차이가 나면 85번 지구 기준에서는 맛이 다르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벌을 받진 않았어. 같은 이유로 너는 태어나자마자 각종 검사를 받았어. 이미 존재하는 인간들과 하나라도 같은 점이 있는지에 대한 검사였지. 점의 위치, 신장, 치아 배열, 심지어는 동공의 색깔마저 달라야 했어. 만약 같은 부분이 하나라도 발견된다면 수술로 변화를 줘야 하지. 그런데 너의 뇌신경 줄기, 뉴런들의 수와 배열이 기존에 있던 사람하고 똑같았던 거야. 나도 처음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 걸 보고 놀랐어. 의사들은 널 곧바로 신경 절제술을 통해 하나의 신경을 제거했어. 하지만 수많은 신경 중 제거한 하나의 신경이 역린이었다는 것은 아무도 몰랐던 거였지."
"그 신경이 역린이었다니? 무슨 소리야?"
"이 많은 구슬 속에 있는 지구들은 제각기 다른 역사와 모습들을 하며 존재하고 있어. 각 지구의 저작권법의 정의는 각 지구에 첫 인류가 탄생할 때 정해져. 난 그걸 자유의 나침반이라고 정의했어. 네가 살던 85번 지구인들의 자유 나침반의 크기는 매우 작아서 왜 자유를 갈망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도 잘 모르는 거야. 한마디로 그렇게 태어난 거지. 하지만 너의 신경이 하나 절제되고 나서 너의 자유의 나침반은 85번 지구인들보다 조금 더 커지게 됐어. 뇌의 방향성이 인위적으로 조금 바뀐 거지."
그는 또다시 영사기처럼 내가 20대 때 세상의 흐름을 띄워주었다. 85번 지구인들은 인터넷과 무기들의 발달로 국가 간의 기술 저작권 분쟁이 심각해졌고 소규모 전쟁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 속에서 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너무 엄격한 저작권법에 대해 70억 명 인구들 사이에서 혼자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표현의 자유가 조금 더 확대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아무도 나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서로 전쟁하고 피바다가 되고 인류가 멸망한 거야? 그래서 난 여기로 오게 되었고?"
"사실 난 85번 지구에 인류가 처음 탄생하고 처음 법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봤을 때 느꼈어. 이 행성의 인류는 오래 못 가고 멸망할 것이라고. 하지만 너라는 돌연변이가 탄생해서 희망을 가졌지. 실제로도 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아니야. 넌 남들과는 다른 너만의 생각을 책으로 써서 남겼어. 그리고 지구가 피바다가 된 것처럼 보이지만 생존한 소수의 인류가 존재해. 너의 목소리를 지지했던 사람들도 꽤 생존하고 있어. 그들이 너의 책을 보관해 주고 있어. 너의 생각을 유전적으로는 이해 못 했지만 너의 생각이 좋아 보였던 모양이야."
"그렇다면 다행이네. 극단적인 저작권법이 지구를 이렇게 피바다로 만들다니. 다른 지구들은 내가 살던 곳보다는 자유롭겠지?"
"꼭 그렇지만은 않아. 저작권법이 약해도 문제가 심각해지거든. 이 수백 개의 지구 중에서 가장 저작권법이 약한 지구를 보여줄게."
신은 324번 구슬로 가더니 나에게 그들이 사는 모습들을 보여줬다. 324번 지구인들의 경제관념은 무너져있었고 무질서했다. 또한 저작권법이 사람들의 표현과 자유를 막는다고 생각한 이들은 급기야 범죄까지도 일종의 표현의 자유로 보기 시작했다. 자유의 나침반이 매우 크게 형성된 이들에게 질서는 없었다. 신은 85번 지구의 한 여인을 보여주며 말했다.
"너무 놀랄 것 없어. 가장 극단적인 예시니까. 그리고 이 임신한 여인은 너의 아내야. 태아는 바로 너의 아들이고. 너에게 주어진 선택권은 두 가지야. 너의 아들로 태어나 인류를 구할 것인지, 너의 나침반을 이어받은 아들에게 맡기고 무로 돌아갈 것인지 결정해 줘."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까지의 기억은 모두 사라지는 거지?"
"당연하지. 여기서 나누는 대화도, 저 아내가 너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는 사실도."
"다시 태어날게. 그리고 아버지, 아니 나의 의지를 이어받아서 균형 잡힌 저작권법을 재정립할 거야."
"네가 죽기 전에 쓴 책을 꼼꼼히 읽어보도록 해. 어차피 내가 한 조언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네가 이곳에 또 오면 그때 모든 것을 다시 알려줄게. 응원할게."
그렇게 나는 신의 손짓에 맡겨져 85번 지구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조금 컸을 무렵 처음 아버지의 책의 첫 문장을 소리 내 읽었다.
"표현의 자유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