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elicity Mar 31. 2022

#.13.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여성으로 다시 태어나는 이야기

#13.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눈을 뜨다

내가 여성 관련 책을 읽기 시작한 건 아마도 2015년 이후. 증권 회사를 나오고 나서는 도통 느낄 수 없었던 남자의 향기(아니 냄새)를 다시 스믈스믈 맡게 된 이후부터였다.


소싯적 증권회사에서 일할 때 잠깐 느끼긴 했지만 도대체 정체를 알 수 없고 설명하기 어려웠던 그 불편하고 싫었던 느낌, 뭔가 여기서는 도저히 더 일할 수 없겠다라는 한계에 부딪쳤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회사를 옮기는 이유를 적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던 이유.

IT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잠시 잊고있던 세계들.. 회사 밖의 공무원 세계, 정치의 세계, 대기업 부장님들의 세계는 여전히 남성 위주로 돌아가는 사회였다. 조용히 잡일부터 주 업무까지.. 일을 맡아하고, 일잘러들이 보이는데도 그림자처럼 행동하고, 남자 어르신들을 보좌하는 역할은 오로지 나이가 좀 적은 여성 회사원들의 몫이었다. 물론 내부에서 그 세계를 대응하는 조직도 남자들 위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세계에 첫발을 디뎠을때 그 세계에서의 부적응자는 오로지 나였다.

읭? 나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왜 때문에 나(만) 이렇게 힘든거냐!? 도저히 사람들과 잘 못 어울리겠는데. 나이 들더니 입만 살아서 생각한 말이 머리를 거치지 않고 나도 모르게 바로 입 밖으로 뿜어져 나가는 일도 일상 다반사. 읭? 나 잘 참고 웬만하면 얘기 안하고 조용하지 않았니. 왜 때문에 나 지금 생각하기도 전에 이야기하고 있니?

외부 세계와 내부 세계의 충돌은 나를 혼란으로 이끌었지만, 그 혼란 덕분에 여러가지 책을 읽고 세미나를 나가며 하나하나 배울 수 있었다. 다행히 그 시절 여러가지 페미니즘 컨텐츠들이 하나둘씩 쏟아지기 시작했다.(전부터 쏟아지고 있었는데 내가 몰랐을지도..) 어떤 책은 읽어보고 가끔 주변 여성들에게 대량 살포도 했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합니다"
"여성의 일, 새로고침"
"엄마는 페미니스트"
"남성성과 젠더" ->어려워서 읽다 말긴 했지만..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 이 아이도 생각보다 재미가..


읽고 싶지만 못 읽은 책들도 있다. 최근에는 더 다양한 콘텐츠들이 쏟아지고 있다.


"악어 프로젝트"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질의응답"


나처럼 자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던걸까. 아니면 이런 다양한 콘텐츠가 사람들을 자각시킨걸까. 책 외에 웹툰(며느라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성을 다루는 콘텐츠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6년 82년생 김지영 이라는 소설이 나온 뒤에 이 목소리는 모두에게 퍼지며 대부분 여성의 목소리가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올해 드라마가 나왔다.



세상 이런 드라마를 봤나

올해 내 최고의 드라마를 고르라면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검블유)라 하겠다. "모건타임(여주 남친 이름이 모건..)"이라고 부르는 오글거리고 비현실적인 연애스토리는 차치하더라도, 회사에서 일하는 여성들만 드글드글하게 나오는 드라마 콘텐츠가 어디 있었나? 게다가 배경은 포털사이트다. 이런 설정은 미드에도 거의 없었다구..  tv 손자병법(들어는 봤나 옛날 kbs에서 하던 드라마 손자병법;;), 미생, 회사가기싫어 스타일의 회사 배경 일하는 사람들의 스토리를 좋아해왔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단연 남자들이다. 어디 여자가 일을 했니.. 그냥 한 두 명 구색 맞추기 조연 아니면 에피소드 한 두 개의 주인공으로 나오면 다행이지. (아 그리고 드라마에서도 주로 남자들은 회사에서 화를 내거나 연애를 했지, 일은 안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검블류의 조연은 남자다. 주연은 다 여성. 검블류는 나의 고정관념을 계속 깨나가는 드라마였다. 나는 계속 남주를 찾았다. 남주가 더 나오겠지, 분량이 더 있겠지 했지만 남주는 조연급으로만 출연하고 사라졌다. 남주가 사라진 분량은 여성들이 일로 채웠다. 하지만 가면 갈수록 그게 전혀 이상하지 않고 모험적이고, 아름답고, 건강했다. 뭔가 다른 스타일의 우정, 다른 스타일의 업무 스타일, 다른 스타일의 태도들이 드라마 내내 보여졌다. 그리고 여기 역시 너무 좋은 대사들이 많이 나온다.



[배타미]

"그쪽이 게이일지 바이일지 스트레이트일지 몰라서 배려한건데"


"나만 해명하고 있잖아 지금. 네가 결혼을 하고 싶어하는 건 해명할 필요가 없잖아. 근데 나는 결혼을 안 한다는 이유로 지금 너한테 이렇게 많은 걸 해명하고 있잖어"


“새벽 한시인데 차들이 참 많지 않니? 저런데 위로가 될 때가 있어.

 나만 이 시간에 깨어 있는 건 아니구나. 나만 치열한 건 아니구나. 나만 힘든 건 아니구나,

 저 사람들도 나를 보면서 그렇겠지? 서로의 학대로 위로를 받네, 이 도시는”


"유니콘은 제 20대였고, 30대였고, 청춘이었어요.

 13년 동안 미친듯이 사랑했고, 미워했죠.

 모두 말할 순 없지만 지금 같은 위기 속에서도 저는 유니콘에서 일하고 싶어요.

 거기에 제 삶이 있거든요."

 (회사에서 오래 일한 우리 회사의 많은 사람들이 약간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하지만 다른점은 바로 대표님이 나를 스카웃하지 않는다는 것? -_-)


"20대는 돈이 없잖아요. 그런데도 사회 초년생들이 왜 무리해서 명품백을 사는지 알아요? 가진게 많을 땐 감춰야하고, 가진게 없을 땐 과시해야 하거든요. 나도 이런 세상이 아니었음 좋겠는데 세상이 그래요. 그러니 투쟁할 수 없으면 타협해요. 그리고 이런 세상 만드는데 내가 어른으로 가담한 것 같아 미안해요."


[정치인과 타미]

- 난 너 같은 년들이 제일 싫어.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고 꿇지도 않고 대들지도 않고 지 욕망에만 눈 멀어서 지 살 길만 강구하는 개 같은 새끼들


- 왜 그럼 안돼? 내가 개새끼면 안돼? 내가 욕망에 눈이 멀면 왜 안되는데?


- 뭐가 널 이렇게 만들었을까?


- 뭐 부모님 원수를 갚거나 전 남편에게 복수하거나 그런 이유 기대하는거야?

  내 욕망엔 계기가 없어.내 욕망은 내가 만드는거야 상상도 못했겠지만.

  근데 니 욕망은 불법이야. 부디 단 하루도 행복하지 않길 바래.


[현자 브라이언과의 대화]

타미 : 어릴때요. 서른 여덟살 정도 먹으면 완벽한 어른이 될 줄 알았어요. 모든 일의 정답을 알고 옳은 결정만 하는 그런 어른요. 그런데 서른 여덟이 되고 뭘 깨달은 줄 아세요? 결정이 옳았다 해도 결과가 옳지 않을 수 있다는 거. 그런 것만 깨닫고 있어요.


브라이언 : 마흔 여덟 정도 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옳은 건 뭐고 틀린 건 뭘까. 나한테 옳다고 해서 다른 사람한테도 옳은 것일까. 뭐 나한테 틀리다고 해서 다른 사람한테 틀린 걸까.


내가 옳은 방향으로 살고 있다고 자부한다 해도 한 가지는 기억하자. "나도 누군가에게 개새끼일 수 있다"


타미 : 그래도 전 아직 어려서 그런지 항상 옳고 싶어요. 내가 맞았으면 좋겠어요.


브라이언 : 좋네요. 그 간절함이 타미를 좋은 곳으로 데려갈겁니다.


[찰떡궁합 타미와 차현]


배타미 - 그래도 우리 해냈네

차현 - 해냈지 그래서 행복하냐? 배타미?

배타미 - 잘 모르겠어. 노력한 시간은 긴데 너무 잠깐이네. 이런 순간들은 너무 잠깐이야.

차현 - 그치. 아마 성취를 위해 사는 건 아닌가봐

배타미 - 그럼 뭘 위해 사는 거지?

차현 - 글쎄,아휴 근데 뭐 그런거 알고 살았냐.그냥 사는 거지. 살아지고 살아내는거지.



[업계 이야기]


이슈라는건 항상 타이밍에서 나오는거죠. 그니까 결국 시대와 가치 사이에 흥정을 우린 이슈라고 부르는거죠. 우리 업계를 예로 들면, 시대가 결국 선택하게 될 것을 미리 선택하는 것. 시대가 결국은 버리게 될 것을 미리 버리는 것. 근데 그 미리가 문제죠. 타이밍. 결국 타이밍이 이슈를 만드는 거니까요.



[으른의 사랑 송가경과 진우]

가경 : 생각보다 너무 간단하네. 허무하게

진우 : 배려겠지. 과정이 간단할리 없으니까. 10년을 정리하는 말로 뭐가 좋을지 모르겠어. 미안해는 너무 가볍고, 고생했어는 너무 무책임해서

가경 : 나는 하고 싶은 말 있어.그동안 함께 불행해줘서 고마워


[으른 송가경]

제 꿈은요 때가 되면 제가 스스로 이룹니다.

이제 똑바로 보이세요? 이게 제 욕망의 생김새입니다.


ps 1. 모건 엄마의 편지(나도 아들에게 이런 멋진 말 해주는 엄마 되고 싶은데.. -_-)

너의 생각을 아름다운 단어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낯선 길도 용감하게 달려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ps 2.

모건 타임

"스물여덟은 이래요. 열정은 무한하고, 지금 내 열정의 주인은 나예요."


검블류가 끝나고 핑클의 "캠핑클럽"이 진행중이다. 그동안 익숙하지 않았던 그림과 대화와 이야기들은 여성의 이야기임에도 낯설다. 하지만 좋다. 더 많아지면 좋겠다. 다양한 여성들만큼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넘실 넘실 넘쳐나면 좋겠다.


ps 3. 자아가 뭔가요..

"너는 왜 자아가 있니"

"아버지 망하세요. 10년간 자식 팔아먹었으면.."



상상을 현실로

최근 시작한 캠핑클럽은 4명의 20년만에 뭉친 핑클 멤버들의 예능이다. 기존 1박 2일과는 다른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약간의 눈물, 과거의 복기, 삶을 대하는 태도.. 낯선 공식의 예능이지만 기분 좋은. 나는 드라마 끝까지 고정관념을 버려야 했다. 기자회견을 끝낸 송가경을 데리러 온 건 남편이 아니라 친구들이었다. 난 왜 남편이 차에 타고 있다 생각했을까... 나의 고정관념이 깨어지는 경험이 계속 이어지길 바래본다.

2019. 8. 5.
오랜만의 월요레터











작가의 이전글 #12. 알고 보면 제일 재밌는 그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