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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licity Mar 31. 2022

#14. 아들이 돌아왔다!

넓은 세상 보고 왔니?


#14. 아들이 돌아왔다!


아들아, 넓은 세상을 보겠니?

방학 내내 학원을 다니는 것보다는 나을거란 생각 반, 좀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느껴지는 것이 좀 있었으면 하는 마음 반으로 별로 내켜 하지도 않는 아이 등을 떠밀어 미국/캐나다를 둘러보는 프로그램에 신청하여 3주간 보내기로 했다. 보내기 전에 잘 몰랐는데, 가기 1주일 전 프로그램 설명회에 가보니 기간 내내 캠핑장에 텐트 치고 침낭에서 잠을 자는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캠핑장 가고 싶다고 여러번 얘기했는데 형편상 그런 거친 캠핑을 할 가족 구성원이 안되어서 아쉬움이 있었던 터라, 한편으로는 잘되었네, 질리도록 하고 오겠네의 마음과, 아니 20일 동안 밖에서 자면 몸이 힘든거 아닌가 걱정을 (아주잠깐)하다가, 정신없이 시간은 흘러서 드디어 떠나는 날이 되었다. 떠나기 바로 전날 밤 함께 가는 60여명의 아이들의 부모들 단톡방이 만들어졌고, 아! 서울 경기에만 사람 사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산에서 울산에서 대구에서 멀리서 아이들이 새벽차, 비행기, 기차를 타고 공항으로 몰려들었다.


아들의 뒷모습에 하트를 날리며

올해 들어 최고의 무뚝뚝함과, 시니컬함을 뽐내고 있는 아들인지라, 떠나는 것도 어쩜 그리 쿨한지.. 살가운 자식들을 둔 부모들은 입국장 들어가기 전 물고 빨며 난리가 났는데, 난 두터운 손등 한번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잘 다녀와~~건강하게!!", "엄마가 원하는 건 단 하나야, 꼭 일기 써서 그 일기 보면서 나중에 여행 얘기해줘!" 라는 말을 무심히 돌아보지도 않는 아들의 뒷통수에다가 외칠 수 밖에 없었다. 프로그램 성격 상 아이들은 핸드폰을 두고, 아이들의 소식은 단톡방에 하루 한 번 올라오는 사진과 하루 리뷰 글로만 확인할 수 있는 상황. 다른 애들은 카메라 렌즈를 잘만 보고 V를 날리고 막 공중으로 뛰고 하트를 날리고 있는데, 어쩌다 건진 아들의 사진은 뒷모습이거나 옆모습이거나, 귀하게 앞을 본 사진은 표정하나 없거나 찡그린 모습.... 제대로 나온 것이 별로 없다. 화가 나려다가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어머님~ (남자)아이들은 사진 안 좋아해요. 잘 안 찍을려고 해요, 하지만 저희가 노력할께요. 하지만 노력하는데 안 되는건 안 되는거에요! 사진은 노력한 결과도 이렇게 알아주세요"

그래.. 그런 말씀을 괜히 하신 것이 아니겠지.... 뒷통수에 배웅을 했으니까..


아들이 없는 집은 빈집 같았다. 집에 와도 무언가 굉장히 허전하고, 남편이랑 둘이 있는 것도 뭔가 어색하고, 새벽에 눈뜨게 했던 이유가 사라지니 어쩜 나는 게을러도 그렇게 게으른 인간이었나!? 아침형 인간이 아니라, 아들형 인간이었던 것인가?! 회사에는 10시 간신히 도착하고, 아이가 있을 땐 밥까지 차려주고 나가던 아침 걷기 운동도 다 끊고 소파와 한 몸이 되어 누워만 있었다. 의욕이 마구 사라지니 살은 더 찌고, 기운은 더 없고, 회사도 가기 귀찮고.. 모든 것이 귀찮아지면서 아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날에 맞춰 긴 휴가를 냈다.


넓은 세상은 네가 본 걸까? 내가 본 걸까?


역시나 나의 기대를 깨지 않고, 배웅하러 나온 나를 무슨 낯선 사람마냥 쳐다보는 아들.. 보낼때 물고 빨던 부모 자식들은 여전히 꺅, 엉엉.. 옆에서 난리가 났지만 역시나 예상한 아들의 반응...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아주아주 찰라였지만 아들의 얼굴에 스쳐지나간 반가움을 나는 읽었다.(나는 분명히 봤다! 반가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 키도 더 컸다.


돌아오는 차에서 여행 얘기를 하다가 마지막에는 방학 숙제는 있는 것은 아니, 너 학원을 좀 바꿔야 할 것 같은데.. 등등의 일상의 이야기로 돌아가게 되었다. 다시 얼굴이 일그러지는 아들을 보면서,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 하자! 하고 부글부글 끓어오름을 누르며 내일부터 일상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리고선 근데 일기는 썼어? 했더니 한 4일 쓰고 안 썼단다. 캐나다에서는 돈도 잃어버렸다고.. 뭐? 그..그래 돈은 괜찮아. 건강하게 잘 다녀오면 되지 그런데 엄마가 그냥 딱 그거 하나, 일기만 잘 써와 했는데 왜 도대체 왜 안썼어? 응?!! 무언가 확 치밀어 오르다가,, 아 우리 3주간 헤어졌다 좀 전에 만났지 하고는 간신히 참고 넘긴다.. 휴.

그래 드디어 익숙함으로 돌아왔다. 내가 그리운 것은 이 부글부글이었던가. 기뻤다가 부글부글했다가, 좋았다가 화났다가, 막 안아주고 싶어 죽겠다가 신경질나 죽겠다가... 나의 온 신경을 들었다 놨다 하는 존재. 나의 감정 소모를 절반 이상 차지해서, 삶의 의욕까지 줬다 빼앗는 존재.

나도 잘 몰랐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3주간 아들과 떨어져보니 새삼 아들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중학교 들어가고 목소리 굵어지면 이제 이별해야하는 연습을 시작해야 한다는데, 이별은커녕 더 꼭 끌어안고 싶어지니 큰일이다. 뭐가 되었던 이별은 절대로 쉬운 것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아들 엄마(라고 쓰고 시어머니라고 읽는다)를 조금 이해도 해본다.. 하지만 노력해야한다. 이별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아들은 게임 삼매경이다.(참을인 여러번 쓰고..) 아마도 내일부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사랑과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우선 싸랑한다 아들!

2019. 8. 12.
아들 보고 좋아 죽다가 갑자기 화나 죽을 것 같은 것을 여러 번 반복중인 엄마의 월요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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